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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May 22. 2024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9장

전투적인 교회: 12세기

"연대(年代)는 역사라는 태피스트리를 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못과 같은 것이다."


곰브리치는 9장을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연대는 역사라는 긴 시간을 고정하는 기준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태피스트리를 역사라고 이해해도 괜찮다. 역사는 직물을 짤 때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여 온전한 면을 만들어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이러한 교차점에 의해 역사라는 직물로 드러난다.


생활의 중심 '교회'

12세기의 미술사를 '전투적인 교회'라고 칭한다는 그 나름의 이유가 분명하다. 교회는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전달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이자 비물리적 공동체이다. 교회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특정한 건축물을 이야기한다. 파리의 노트르담,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 등등 우리는 특정 종교 건축물을 '교회'라 부른다. 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 교회는 이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 다시 말해 신앙공동체 자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교회'는 이러한 믿음을 지키고 전파하려는 믿음과 그것을 공유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위해  남겨놓은 신앙의 증거와 결과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 혹은 교회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더라도 교회는 이미 당시 사람들의 의식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교회는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여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공급하고 빈민구제활동과 의료서비스의 공급 등의 권력 공백 상태의 땅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 다양한 지역에서 각종 건축재료, 장식품 등의 무역활동이 일어났고 상인들과 장인들이 이동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교회는 이미 당시 사람들에게 생활의 중심이었다.


교회가 세속에 까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필요했다. 교회는 여러 사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다졌는데, 지금도 독일의 맥주 이름에 수도원(Kloster)이 들어가는 이유도 그 흔적 가운데 하나이다.

교회는 대성당이나 다른 부대시설을 짓기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벌어들인 수입의 10%를 기부받는 십일조의 형식으로 자본을 순환시키는 역할도 했다. 또한 군주들이 민심을 얻기 위해 기부활동을 하거나 전쟁의 승리나 권력의 정당성을 위해 교회의 인정을 받기 위한 각종 수입원으로 민중들에게 구휼활동을 하는 등의 복지국가의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교회가 수입을 얻는 방식 중 하나는 부동산을 통한 임대수익이다. 교회 주변의 광장은 주기적으로 장이 열리는 장소이다. 교회는 이 광장의 일부를 상인들에게 임대하여 임대료와 수익의 일부를 받아가는 방식을 통해 이익을 얻고, 이 이익의 일부는 주교와 교황청에 나머지는 지역사제들이 갖는다. 십일조와 이렇게 만들어진 경제적 이익을 또 다른 건설사업이나 카리타스(Caritas, 자선활동)를 통해 다시 민중에게 되돌려주는 순환구조를 만든다. 교회 없이 중세의 도시들은 작동하지 않기에 교회는 생활의 중심으로 작동한다. 교회는 세례를 통해 생의 시작을, 성인식과 혼인 그리고 죽음, 매장에 이르는 생의 마무리를 책임지는 중세인의 삶과 죽음 그 자체였다.


전투적인 교회

교회는 다양한 측면으로 전투를 벌였다. 종교적으로 교회는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 1094년 공존할 수 없는 적과의 전투를 시작한다. 교회는 이슬람에 대항하는 빛의 세력의 선봉장이었다. 교회는 새로운 지역으로 퍼져나가 그 지역의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이제 교회는 어둠의 세력들에게 빛을 비춰 지상의 승리를 이끄는 최전방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교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얼마 전에 개종한 농민과 전사들의 땅에 세워진 이 강력하고 거의 도전적인 석조 건물들은 바로 '전투적인 교회'라는 관념, 즉 이 지상에서 최후의 심판날 승리의 여명이 밝을 때까지 암흑의 세력과 싸우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는 관념을 표현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또 다른 적은 내부에 존재했다. 그들은 이슬람은 아닐지라도 약간의 다른 교리를 가진 자들 혹은 믿음이 약한 자들이었다. 마녀사냥의 대상 가운데 상당수는 이단이라기보다는 공동체에 불편을 끼치는 자들이었고, 공동체의 규율을 강화하고 일체감을 만들기 위한 희생양이었다.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교회가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세속 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데까지 관심을 두는 순간 교회는 세속과의 전투에 돌입한다. 이 과정에서 교황은 세속의 군주와 성직자 임명권인 '서임권'을 두고 노골적인 권력다툼을 벌인다. 교황은 아비뇽 유수 사건으로 세속 군주에게 패배를, 세속군주는 카노사의 굴욕을 통해 교황에 대한 패배를 경험했다.


교회의 전투적인 면모는 건축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이러한 전투적 면모, 즉 폐쇄성과 견고성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름처럼 그러한 특징은 로마의 건축적 특징에서 비롯된다.


로마적인 너무나도 로마적인

로마가 남긴 건축적 업적은 아치(Arch)이다. 아치는 이차원적 구조형태이지만 삼차원적 응용을 통해 파생된 구조형식으로 발전한다.

볼트(vault, 궁륭)는 아치를 길이 방향으로 연장한 것이고, 볼트와 볼트가 직각방향으로 만난 것이 교차볼트(cross vault)다. 그리고 아치를 한 바퀴 돌리면 돔이 된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볼트와 교차볼트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축이다. 그리고 이 구조체는 이후 고딕 건축에서 보다 높은 구조체로 진화한다.

아치는 기본적으로 세로 방향으로 주어진 힘을 가로와 세로로 분산시켜 개구부를 만들어내는 구조체이다. 여기서 아치의 가운데 쐐기모양의 부분을 머릿돌(key stone)이라고 하며 아치를 시공할 때 마지막에 끼워 넣어 마무리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머릿돌을 놓는다'는 말이 일의 마무리를 뜻하는 것이 여기에서 파생된 관용적 표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럴볼트(궁륭)는 가로 방향으로 분산된 힘을 버텨줄 두꺼운 벽체를 요구한다. 따라서 생겨난 개구부에 비례한 거대한 벽이 육중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교차볼트는 그림과 같이 거대한 사각기둥을 네 쌍으로 만들어 내어 볼트와 볼트의 교차 부분을 마무리한다.

슈파이어 대성당, 1106

슈파이어 대성당은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로 사진에서 보이듯 둥근 아치형의 개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서쪽의 입면은 해가 지는 서쪽이 상징하는 악을 막는 방패와 같이 견고하게 서있다.

대성당의 가운데 통로는 네이브(nave, 주랑)라 부르며 아케이드 위에 창을 두고 전체 벽체를 마주 보게 배치하여 볼트로 연결한 구조이다. 내부를 이루는 구조체는 아치와 그것을 연결한 아케이드, 그것을 연장시킨 볼트와 다시 볼트를 교차한 교차볼트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로마적인 아치를 극단적으로 응용하여 조합한 건축물이 로마네스크 건축이다.

평면도에서 양옆으로 늘어선 부분을 아일(aisle, 측랑)이라 부르며 상부의 창이 위치한 클레어스토리(clerestory)가 없어서 주랑보다 낮고 어둡다.

독일을 보름스(Worms)에 위치한 대성당의 경우에도 주랑은 높고 밝으며 측랑은 낮고 어둡다. 로마네스크의 건축가들은 아직 주랑에 더 많은 빛을 부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보름스 성당 남측 입면

보름스 성당의 남측부를 보면 왼쪽의 쌍탑과 우측의 쌍탑이 보인다. 우측 쌍탑은 아래 세단까지 같은 형식으로 지어지다가 나머지 위의 두 단은 약간 다른 개구부의 위치를 보여준다. 이것은 아래와 위 사이에 약간의 시간적 차이가 생겼거나 건물을 계획하는 건축가가 바뀌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재료를 살펴보면 아래 네 단까지는 검게 그을린 돌인 반면 위의 한단은 붉은색을 유지하고 있다. 성당의 돌이 검게 변하는 이유는 화재의 가능성이 있다. 왼편의 쌍탑은 아래에서 네 단까지 같은 형식과 창문위치를 유지하고 있다가 나머지 두 단이 그와 다른 패턴을 보인다. 이 사이에 시간적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형식과 패턴뿐 아니라 재료에서도 보다 붉은 돌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건물을 짓기 위해 공급되는 석재는 같은 시기에 같은 채석장에서 구해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색과 무늬가 다른 돌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쌍탑에서는 네모난 창이나 동근 아치가 주로 사용되었고 건물의 익랑(트란셉트) 역시 둥근 아치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옆에 돌출된 측랑은 위층의 클레어스토리의 아치와는 다소 다른 형태를 띤다. 이 아치는 이후 고딕에서 주로 사용되는 첨두형 아치(pointed arch)이다. 둥근 아치에 비해 젊은 나이인 첨두아치에 아래에 위치한다는 것은 아랫부분이 나중에 보수를 통해 다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옆에 돌출된 부속건물은 그 시기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로마네스크의 많은 건물들은 훼손과 오랜 공사기간을 통해 단일 양식으로 지어지기보다는 복합적인 양식을 띠는 경우가 많다.

캉의 성삼위일체 성당

프랑스의 캉(caen)에 위치한 성삼위일체 성당은 보다 밝은 석재를 사용하여 한정된 빛을 보다 효율적으로 내부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랑의 아케이드와 클레어스토리까지의 조합을 자연스러운 아치의 형성으로 세 개의 기둥 사이의 두 아치를 상단은 큰 아치로 통합하는 하나의 모듈(module)을 형성한다.

프랑스의 아를(Arles)에 위치한 성 트로핌교회는 건물의 정면에서 보더라도 주랑과 측랑의 높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후 르네상스에 만들어지는 교회건축에서 건축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는 내부 공간에 따른 입면의 일치성과 입면을 층층이 구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한다. 건물의 주입구 위편에 생기는 반원형 혹은 삼각형의 부분을 팀파눔(Tympanum)이라고 하는데 주로 부조들이 만들어진다. 트로핌교회의 경우 그리스도가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손가락을 펴고 다른 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천사(마테우스), 독수리(요하네스), 사자(마르쿠스), 황소(루카스)가 둘러서있으며 이들은 각각 4대 복음서인 마태오, 요한, 마르코, 루카 복음서를 지니고 있다. 교회는 하나의 캔버스처럼 성경의 내용을 새기는 거대한 성경과 같다. 이후 고딕 성당에서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풍부한 빛, 그리고 높은 첨탑과 주랑이 탈물질화하는 신성을 느끼게 해 준다.


의식용 도구

교회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많은 도구를 필요로 한다. 대표적으로 촛대는 어두운 성당 내부를 밝히는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다.

영국의 글로스터(Gloucester) 성당의 촛대는 도금 청동 촛대인데, 당시 금속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였음을 보여준다. 십자군 원정과 잦은 전쟁으로 유럽은 이미 무기를 만들던 대장간에서 금속 제련기술이 발달했고, 이를 기반으로 제례용 도구들의 수준도 동반상승했다. 글로스터 촛대의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는 당시 장인들의 세밀한 기술력을 보여준다. 또한 촛대 상단부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는 제례와 교회의 역할을 알려준다.


<+ lvcis. on [us] virtvtis opvs doctrina refvlgens /
 predicat vt vicio non tenebretvr homo>
 - 미덕의 결과물인 이 빛의 홍수는 눈부시게 성스러운 가르침으로 인간이 악덕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한다. –


구조적으로 로마네스크 건축은 로마의 뛰어난 건축기술을 다시 이어받아 고딕으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한다. 세련됨으로 로마네스크 건축이 고딕 건축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있을지 모르나 견고하고 투박한 로마네스크의 건축 역시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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