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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드레아 Oct 04. 2016

삶의 위도이자 경도인 그대들  

여행으론 잘 안 가는 미시간 여행기 (3) - 미시간 주립대학교

9월 MSU (미시간 주립대) 캠퍼스의 자유로움


There is nothing more precious
as to have friends at a far distance.
They are latitudes and longitudes to me.

먼 곳에 있는 친구를 갖는 일만큼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위도이자 경도입니다.


 외화번역가로 유명한 이미도 씨는 그의 저서 '독보적 영어 책 (영어 명문장/명대사의 문학적 재구성)'에서 친구와 관련해 이런 명문장을 실었습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 문장이 미국 작가 Ralph Waldo Emerson이 쓴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검색을 해보아도 그의 글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이 글을 읽고 처음엔 '그럼 가까이에 있는 친구를 가지는 일은 그만큼 소중하지 않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가 잘 되질 않아 읽고 또 읽으며 음미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이 또 들더군요. 친구가 멀리에 있든 가까이에 있는 그 거리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다만 제 짧은 생각으로는, 먼 곳에 살고 있는 친구와 교유하는 일이, 나와는 다른 환경에 놓여 있고 다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이들과 안부를 묻고 서로 소통하며 이따금 만나는 그 일이,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일임을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내 삶의 위도이자 경도입니다.' 


 아, 이 얼마나 멋들어진 말인가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의 위치는 어디에 놓여 있는 것인지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그런 친구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전주행 KTX에 무작정 몸을 실었습니다.


 이제 막 1년이 지났습니다.

여행으론 잘 가지 않는다는 미국 미시간주로의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말이죠.


 중학교 2학년 때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을 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연락이 닿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랬던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은 우연한 기회에 초대받아 들어간 중학교 동기동창 밴드였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습니다. 장장 25년 만이었죠.


 중학교 1년, 고등학교 1년 도합 2년이나 같은 반을 했고 6년간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청소년기를 함께 했던 친구였지만 정작 그때는 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25년 만에 그것도 밴드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어린 시절 가까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미국에 저는 일본에, 각기 멀리 떨어져 삶의 터전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미 성인이 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조우하게 된 그와 나는 밴드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지나온 서로의 시절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때론 시시껄렁한 친구들의 농담들 사이에서, 때로는 진지하고 심각한 모드로, 친구들이 올려준 사진과 글에 대해 댓글을 달며 그렇게 어린 시절과는 다른 친밀함을 쌓아가게 되었지요.


 같은 반을 했던 그 시절에는 정말 친한 친구의 범주에 들지 않았던 우리는 어느새 중년이라 불리는 나이가 돼서 전에 없던 우정을 느끼게 되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25년 만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안타깝게도 친구의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시어 급히 귀국을 했던 때였습니다. 그때 마침 저도 서울 출장을 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친구의 귀국 소식과 전주에서 상을 치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당일 일정을 마치고 KTX에 무작정 몸을 실었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그 친구와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기약 없이 긴 시간이 지난 다음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의 돌아가신 장인어른께서 소중한 친구와의 우정을 이어 주신 게 아닐까 하고 그때의 일을 떠올려 봅니다. 수십 년간 서로 너무다 다른 환경 속에서 연락도 닿지 않은 채 살아왔던 두 사람. 그것도 둘 다 고국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가 없었더라면 그냥 또 그렇게 서로 남남이 되어 살아갔을지 모릅니다.



  장인어른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는 어릴 때의 통통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약간 마른 체형에 키도 나보다 훌쩍 커져 있었습니다. 얼굴은 오랜 세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서로 안부를 자주 묻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해서인지 많이 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한편 제수씨는 하얀 소복을 입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보기에도 애처로웠습니다. 이제 100세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데 우리 나이에 부모를 여의는 일은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수씨는 딸로서 오죽했을까요..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평화의 안식을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미시간에 와서 평상시 모습으로 재회한 제수씨의 모습은 역시 상을 치를 때와는 많이 다르더군요. 아버지를 여읜 딸의 초췌한 모습에서 회복되어 있었고, 아름답고 밝은 웃음을 머금은 채 친구들을 기쁘게 맞아 주었답니다. 미국에서도 어찌나 우리 음식을 잘 해서 먹고 있는지, 친구가 머나먼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부인 덕에 호강하며 우리 입맛을 잘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시간 주립대학교 MSU (Michigan State University)


 일전에 '여행으론 잘 안 가는 미시간 여행기 (1),(2)편'에서 맥킨나 아일랜드/ 미시간 호수/ 슬리핑베어듄 등을 방문한 이야기를 소개했었습니다. 이번엔 친구가 졸업한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모습을 실으며 제가 느꼈던 것들을 회상해 봅니다.


 9월의 미시간 주립대 캠퍼스는 초록빛으로 물든 곳이었습니다.


 미국의 대학 캠퍼스들이 다 이렇게 잔디와 수풀의 녹음이 우거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MSU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그냥 걷고만 있어도 눈이 편안해지고 쉬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미시간이 좀 위쪽에 있어 금세 날씨가 추워지는 곳이라지만 9월의 날씨는 그야말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환상적인 상태였죠.


  잔디밭은 어느 곳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아무 데나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서울에서 함께 갔던 또 다른 친구 Y와 저 그리고 미시간 친구 J는 평화롭게 흘러가는 개천 옆 잔디에 엉덩이 자국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마흔이 넘은 아저씨 셋은 마치 대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여유와 낭만의 냄새가 가득 풍기는 미국의 대학 캠퍼스라니요.

아무도 우리들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우리 세 친구들은 뭐가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고

애들처럼 연신 낄낄대며 셀카를 찍고 주변의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학교 안에는 개천이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선명하고 깨끗하게 나오는지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며 작은 감탄을 하곤 했습니다.

캠퍼스 안을 거닐다가 청설모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까만 녀석도 보였고, 회갈색빛이 나는 녀석도 발견했습니다.

그 녀석들을 보면서 속으로 ' 야, 너희들 사는 데가 천국이다! '

이런 깨끗하고 평온한 곳에서 노닐고 있는 녀석들이 조금 부러운 기분마저 들더군요.



 우리는 J가 머물던 기숙사 건물 근처까지 갔습니다.

피부와 머리카락 색깔이 다른 이들과 대학 생활을 하며 미래를 준비했을 젊은 날의 친구의 모습이 마음속에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이런 곳에서 학교를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러움 섞인 마음도 함께 들었지요. 뭔가 아등바등대지 않으면서도 젊음을 불태우고 낭만을 구가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자유로움이 피부로 느껴지는 캠퍼스. 순간 아쉬움의 칼날이 살짝 스쳐가며 아주 작은 생채기를 내었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건물 안으로도 향했는데 알고 보니 경영대 강의가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9월이라 개강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학교의 각 교실들은 여기저기 강의가 한창이었습니다. 한 계단식 강의실에서도 강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뒷문이 열려 있어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계단 아래 강단에 한 동양인 교수님이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에게 경영 관련 한 과목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친구가 그분을 보더니 한국 교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학창 시절 선후배 사이로 지내던 형이라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말 세상 좁다고 무릎을 탁 칠 일은 그분이 친구 J와 저의 고등학교 선배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일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학교에 남아 세계 각 곳에서 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배님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더군요. 잠시 열린 문을 통해, 담담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의 모습과 강의를 경청하던 동서양 학생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미시간 주립대 강기원 교수 경영대 강의 모습


어느 프랑스 여대생 에피소드


 친구가 미시간에 오기 전 뉴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구는 태권도 유단자인데 동양인 남자로서 제대로 태권도를 한다는 것이 미국에서도 상당히 어필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남학생들한테도 센세이셔널하게 인기가 있었던 프랑스 여학생이 있었답니다. 언제나 그녀 곁에는 백인 남자들이 바글거리고 있었지요. 외모가 모델급이었다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갑니다. 미국 남자들에게도 유럽에서 날아온 이국적인 소녀의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었을까요?


 친구도 그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동양인 남자와 서양인 여자 사이의 썸씽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었지요. 아,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겁니다. 유단자였던 J가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행사에 그녀가 나타났습니다. 꽤나 선 굵은 이목구비에 동양인 치고는 엄청나게 긴 다리를 가진 J.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더 젊고 강인한 모습으로 옆차기, 앞차기, 돌려차기를 바람 펄럭이며 거침없이 해대던 낯선 동양 남자. 생전 직접 접해 보지 못한 절도 있는 동작과 품세에 프랑스 요정은 넋을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결국 시범이 끝난 후 둘의 만남은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브라보!!!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로맨틱하고 설레는 느낌이었습니다.  J 만세 !! 태권도 만세!!


Go! Spartan!!


 친구를 알기 전에는 미시간 주립대의 상징과 구호가 고대 유럽의 스파르타 혹은 스파르타인인 줄도 몰랐습니다. 미시간에는 두 개의 대학교. 바로 미시간 주립대와 미시간대가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고려대와 연세대가 좋은 라이벌로 성장해온 것과 같이, 일본으로 치면 게이오대와 와세다대가 서로를 자극하며 명문 사학으로 커온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곳 미시간도 미식축구에 대한 사랑이 뜨겁다고 합니다. 특히 MSU와 MU가 맞붙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두 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풍덩 빠져 버린다고 합니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수많은 관중이 드넓은 관중석을 메우고 뜨거운 열기 가득한 미식축구 경기장을 보고 있으면 해리포터에서 묘사된 '퀴디치' 게임이 떠오릅니다. 최근에는 가상의 이 게임을 현실로 옮겨와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MSU의 캠퍼스에 들어서자 말자 초록빛에 매료되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이 대학의 상징이 Spartan인데 로고가 초록색 바탕에 투구를 쓴 스파르타 전사의 하얀 옆얼굴 실루엣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J는 모교를 언급하면 "Go! Spartan!!"이라고 외치곤 했지요.  이 구호 하나만으로도, 미시간 주립대 학생들은 재학생이든 졸업생이든, 경기장에서건 학교를 떠나 각기 흩어져 어디에서 살고 있든, 피가 끓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Go! Green!
Go! White!!
Go! Spartan!!!


 하나는 서울에, 하나는 키타큐슈에, 또 다른 하나는 미시간에 살고 있다가 만났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은 마흔이 넘었지만 셋이 뭉치니 중고등학생과 크게 다를 바가 없더군요. 회사에서 혹은 다른 지역 사회에서 약간은 점잔을 빼며 중년 남자의 모습으로 살다가 우리는 다시 장난기 많고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히죽대는 남자아이들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친구들은 누군가 표현했던 것처럼 제 삶의 위도가 되고 경도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잘 살아가는 듯하다가도 뭔가 갸우뚱하게 될 때, 길을 잘 찾아 걸어가다가도 갑자기 미로에 빠져 방향을 잃었을 때 이들이 옆에 있다면 더 이상 헤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만나기 전 25년이라는 세월은 공백으로 지났지만, 앞으로의 25년, 아니 남은 모든 인생길은 이들과 함께 꽉꽉 차고 넘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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