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직전 호기롭게 수영장에 등록하다. 나, 물에 뜨긴 뜰까?
지금 생각해도 처음엔 분명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히 뜨고 싶었을 뿐인데.
퇴사를 일주일 남겨두고, 반차를 썼다. 무려 택시도 불렀다.
수영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수영장엔 매달 신규 회원이 등록할 수 있는 날짜가 정해져 있다.
이 생각이 든 것도 어제 늦은 오후였다. 이 즈음 아닌가, 하고 찾아봤더니 마침 어제부터였다. 전화를 걸었더니 다행히 아직 마감은 되지 않았단다.
여유가 있다는데도 원하는 것이 생긴 자의 마음은 급해진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그 수영장에 등록을 하러 갈 것만 같은 마음.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2시가 되자마자 후다닥 뛰어나와 호다닥 택시에 오른다. 두근거린다. 직장인에게 반차야 늘 두근거리지만 그 모양새가 좀 달랐다. 수다 떨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예약해 놓은 영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아늑한 침대와 티비로 향하는 것도 아닌데 긴장이 되면서도 막 설레는 거다. 두근두근. 목적지까지 25분. 비도 오고 거리는 한산했지만 나만 부산하게 도착했다. 우리 동네 실내수영장.
나보다 연식이 오래된 동네 수영장이다. 오래전 ‘뱃살 언저리에 레이스가 달린 주황색 수영복’을 입은 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유치원 시절 여기에 왔던 모양인데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마구잡이로 수모를 탈출한 머리카락까지 정확히 기억난다. 희한하게 그날에 대한 기억은 없는데 그 사진을 본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 뒤로도 몇 번이야 왔겠지만 수영장 앞 나무벤치에서 먹던 컵라면이 마지막 기억이다. 젖은 머리로 컵라면 뚜껑을 접어 담아 먹던 육개장 맛이 아직까지 이렇게나 생생하다니. 기억 속 그 벤치가 너무 여전해서 한번 놀라고 수영장 입구에 있던 작은 수영복 가게가 똑같아서 두 번 놀란 채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초급반 등록하러 왔어요.
-혹시 완전 처음이세요?
-네. 완전.
-그럼 신규 기초반이 있어요.
쓸데없이 비장한 내 얼굴이 그들에게도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인게 분명하다.
사진*을 한 장 찍고 신분증*을 한번 보여주고 카드 결제 알림음이 띵하고 울리자 회원등록도 끝났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벼르고 별렀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아주 순식간에.
손에 들린 파란색 회원카드를 보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그리고 그제야 밀린 메시지에 답을 해본다.
-아니 대체 어디가길래 반차를 썼대.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가냐!
-와 배신감 반차 쓰고 잠수 탔어 얘.
수영장이야. 나 수영장 등록했어. 나 다음 달부터 수영해.
내 사전에 무턱대고, 홧김에-란 없다. (없다가 방금 생겼다)
그래서 일단 저질러버려!라는건 딴 세상 이야기다. (방금 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니 나는 무엇이든 사기 전에, 하기 전에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알아보고 따져보는 시간 말이다. 물건은 이게 나은지 여기가 싼 지, 일이라면 과정과 결과가 대충 어떻겠는지 혼자 점쳐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신중하고 꼼꼼하다했지만 이런 완벽주의와 조바심 때문에 놓치거나 시작도 못한 일이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망친 일이 많은 건 아니다. 말했듯이 꽤나 오래 알아보고 따져보다 망칠 것 같으면, 아예 시도를 않거나 바로잡다 지쳐버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기어이 적당히 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모르는 일에 무작정 덤비는 일은 거의 없다.
분명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올 겨울, 나답지 않은 일을 두 가지나 저질렀다. 그것도 연타로.
하나, 홧김에 라기보단 내친김에 퇴사.
둘, 퇴사한 김에 무작정 수영 등록.
나, 괜찮을까?
그리고 나, 뜨긴 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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