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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n 12. 2022

실물로 꼭 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서울 용산구 |  국립중앙박물관 (실내)

 푸른 잎이 곧 절정을 이룰 것 같다. 이맘때 즈음이면 늘 향하는 곳. 국립중앙박물관이 바로 그곳이다. 이번에는 확실한 방문 목적이 있었다. 지난 4월에 [어느 수집가의 초대]와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통합권 예매에 성공해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던 게 가장 큰 이유였고, 상설 전시관 [사유의 방], [예산 수덕사 괘불] 감상이 두 번째, 세 번째 이유였다. 


 전날 낮잠을 겨울잠처럼 푹 자서인지 컨디션이 괜찮았다. 이런 날이라면 오래 서 있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박물관에 갈 채비를 해 집 밖을 나섰다. 가로수가 풍성하다 못해 곧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기세로 잎이 돋아나 있다. 예민한 피부 탓에 여름에도 대부분 긴팔을 입는 나에게는 오늘 날씨 정도만 되면 여름도 꽤나 버틸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품고 버스를 타러 간다.  

 도착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벌써 수국이 펴 있다. 오늘이 가장 만개한 날일 것 같아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나 말고도 수국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여름이 되니 장미가 아름다움이라는 왕관을 수국에게 넘겨주었다. 조금 있으면 수국도 능소화에게 왕관을 넘겨주겠지.

 파릇파릇한 작은 대숲을 지나면 이곳의 포토 스폿인 남산 서울타워 액자 뷰가 나온다. 밤에는 남산 서울타워에 조명이 들어와 더 아름다운 곳이다.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전시된 남산 서울타워를 관람하는 갤러리 같은 느낌이 들어 생동감이 더해진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그림자에는 괜스레 웃음이 지어진다. 

 드디어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특별 전시실로 들어선다. 어린 시절 만화로 된 세계사 책을 보며 중앙아메리카와 남미 문명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다. 마야, 잉카, 아스테카와 관련한 내용을 보며 멕시코, 페루 등과 같은 나라 여행을 언젠가는 꼭 해봐야지 마음먹었던 그때의 내가 생각이 나 더 흥미로웠다. 

 

 아스테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나 '인신공양'이다. 누군가는 미개하다, 누군가는 잔혹하다고 평가한다. 전 세계 모든 문화가 동일할 수 없기에 민족 고유의 문화를 쉽게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그때와 지금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정도가 다르다. 반대의 문화권에서 누군가는 부여의 순장 문화를 미개하다, 잔혹하다고 평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스테카가 멸망한 AD 1,500년대는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인데 같은 1,500년대이지만 이렇게 다른 생활과 문화, 문명을 가지고 있다는 건 늘 세계사를 볼 때마다 흥미롭다. 

 박물관이나 전시에서 유럽 세계의 작품은 접하기 쉽지만 중남미나 간다라 미술은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어 특별 전시가 있을 때는 되도록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 전시는 접근성도 좋았고, 높게 책정되지 않은 입장료 덕에 진입 장벽도 낮다. 거기에 전시 품목도 많으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가능하다면 [어느 수집가의 초대]와 묶음으로 판매하는 통합권으로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현재는 전시가 종료된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이중섭의 작품과 십장생도 병풍을 볼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피켓팅(피 튀기는 전쟁과도 같은 티켓팅)은 필수지만 가치가 있다.   

  그다음은 너무나도 기다렸던 [사유의 방]을 향해 간다. [사유의 방]은 반가사유상 두 점만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다. 반가사유상은 단어 그대로 '사유'하며 미소를 짓는다. 6, 7세기에 제작됨이 믿어지지 않는 하체의 옷 주름과 상체의 간결한 액세서리는 정제 속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단연 돋보인다. 유리로 제작한 쇼케이스에 담기지 않아 더 생생하게 전달되는 미소는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보통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라고 많이들 표현한다. 이날은 확실했다. 온화했다. 금동의 불상은 소재적 냉기를 미소로 그 온도를 중화한다.  


 처음 방문한 [사유의 방]은 완벽히 정면을 보지 않기에 이동하며 보면 아름다움이 배가 된다. 특히 사람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고 해서 후면을 보지 않으면 후회한다. 후면도 정면만큼 섬세하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입구부터 전시관, 출구까지 조명의 색감이 정말 곱다. 침착하고, 선했다. 


 [사유의 방] 하나만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할 이유는 충분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입장객 수를 제한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점이다. 온전히 그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15명 이내가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인원은 관람에 방해가 되었다.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예산 수덕사 괘불]을 담기 위해 서화관 불교회화실로 향한다. 나의 경우 여행지를 가면 그 지역의 절을 꼭 방문한다.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의 교리를 존중하고 불교 미술을 좋아한다. 특히 탱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2 괘불전 [빛의 향연 - 예산 수덕사 괘불]이 열리는 것을 보고 꼭 가야겠다, 무조건 가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이렇게 다녀왔다. 


 괘불은 대형 불화다. 보통 법당 밖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 시에 사용되는데 이 예산 수덕사 괘불은 먼저 크기가 정말 압도적이고, 색감은 화려하고,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신비롭다. 손끝까지 섬세함이 살아있고, 옷매무새, 옷감의 문양까지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괘불 전시관에 들어가기 연화대좌도 전시되어 있는데 고려 시대 제작된 목조 형태의 연화대좌는 조각된 연꽃잎의 문양이 고귀하다. 


 불교 미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이 괘불탱과 연화대좌는 짜릿하다. 불교 미술은 서양 종교 미술과는 매력이 너무나도 다르다. 풍겨오는 Aura 자체가 다르다. 아직도 사천왕문을 지나고 사천왕 그림을 볼 때마다 무섭지만 불교 미술은 끊임없이 바라보게 하고, 찾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안료 자체가 주는 선명함과 화려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크기에서 오는 거대한 아름다움이 이렇게 내게 스며들고 있다.

 소개한 두 작품은 꼭 실물로 봐야 한다. 모바일 또는 PC 모니터로 보면 감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는 행운을 꼭 누리기를. 

 
 박물관은 고루한 공간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학예 연구사들은 오래된 유물을 '낡은 것'으로 표현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사유의 방]을 통해, 새로운 기획으로 같은 유물을 보다 새롭게 보이도록 한 것을 보면 말이다. 또한 
젊은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굿즈 상품이 출시와 동시에 품절이 되는 것을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좋은 전시는 많은 관람객을 박물관으로 이끌고, 관람객이 많아질수록 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것이고, 그렇다면 많은 유물을 환수하고, 지키고, 보존할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찬란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 시작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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