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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n 14. 2022

이번 주말은 '용산'

서울 용산구 |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국립중앙박물관은 회사와 무척 가깝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에는 퇴근 후에 서빙고역까지 걸어가 버스를 탔던 날도 꽤 있었다. 그럴 때마다 국립중앙박물관 앞을 자주 지났는데, 박물관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따릉이를 빌려 집까지 타고 가거나, 날씨가 좋은 날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박물관 못에 앉아 밤 시간을 즐기며 보냈었다. 이만하면 이곳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몰랐다. 


 일요일 오후의 이곳은 평온했다. 대부분 아이와 함께 나들이 온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곳곳마다 놓인 벤치에는 뛰고 또 뛰어 땀을 뻘뻘 흘리는 지친 몸을 쉬는 아이들도, 유모차를 밀며 앞서 가는 아이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부부의 모습도, 거울못에 풀어진 비단잉어들을 구경하기 위해 물가에 쪼그려 앉아 턱을 괴며 연못 속을 구경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표정이 지어진다. 

 초록의 색을 띠는 생명체는 계절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초록의 나무는 스카이라인을 들쭉날쭉 다양하게 꾸미고 있었고, 곳곳에 보이는 소나무는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나무 그늘이 못을 바라볼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늘 아래서 어느 여름날을 그리며 걷다 보니 다다른 연못의 끝에는 연꽃이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양빛이 작열하는 한여름이 되면 연못마다 초록잎 위로 피어난 연꽃이 자태를 드러내며 우아함을 뽐낼 것이다. 전주 덕진공원, 양평 세미원 같은 연꽃 명소가 떠오른다. 연꽃 군락지만의 고결함을 자아내는 분위기는 사진에 채 다 담기지 않아 늘 아쉽다.  

 조금 더 깊이 나무숲으로 들어가 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실내만 박물관이 아니라 실외도 박물관 그 자체다. 세월의 풍파를 잊은 듯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고고하게 서 있는 석탑들이, 나무와 풀과 함께 어우러져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다. 잘 정돈된 지면을 따라 걸으니 촉촉하게 젖은 잔디를 밟고 싶어지는 충동이 든다.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풀 숲이었다면 아스라이 잊혀진 한 왕국이 한때는 번성했음을 상징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도심 속 작은 숲은 고요했다.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가득 찬 거울못과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지만 두 장소에서 하는 생각은 그 갈래가 달랐다. 거울못에서는 '내가 바라보는 군중'에 초점을 맞춰 생각했다면, 이 숲 속에는 오롯이 '나' 그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 '지금의 내 기분', '내가 담고 싶은 무엇' 같은 것들을.

 서울이라는 곳은 한 해, 두 해를 더해 살아갈수록 더 떠날 수없게 만든다. 몇 걸음 차이로 세상 속의 나를 잊게 하는 작은 숲이 도처에 있다. "요즘 사진에 다시 취미가 붙었어요."라고 했을 때 주로 사진에 담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묻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라고 대답했었는데 촬영한 사진을 정리해보면 대부분 자연을 많이 담았다. 자연에서 얻는 안정감과 불규칙한 배열이 상반되면서 얻어지는 심적 상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서울에서 이런 자연을 만나면 횡재한 기분이 든다. 이곳도 역시 그랬다. 

 초록으로 가득했던 공간을 벗어나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짝을 지어 뛰어노는 어린아이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지금 이곳에서의 추억을 나눠가질 남녀,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공유하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온전히 좋아하는 것들로 방전된 정서를 충전했더니 눈가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주말을 맞이할 사람들 누군가는 서울은 곳이 없다며 이런 키워드를 검색할 것이다.  


'주말 데이트', '서울 출사', '아이와 함께 나들이 가기 좋은 곳'.


서울은 무한한 매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조금만 걸어보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갈 곳은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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