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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황 Jun 05. 2024

코드 그레이: 분노와 슬픔 사이

공감으로 완화시켰어야 할 감정

그날 아침, 나는 신생아중환자실 중 초미숙아만을 돌보는 구역 담당교수 셋 중 하나로 출근했다. 어찌 된 일인지 전날까지 나름 잘 지내던 소피아Sophia의 상태가 범상치 않았다. 밤새 산소포화도가 곤두박질치기를 반복하다 소피아는 숨을 멈췄다. 결국 소피아의 작은 입을 열고 기도 삽관 튜브를 내려보내야 했다. 한동안 소피아를 떠났던 인공호흡기가 다시 돌아와 곁을 지켰다.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푸르스름한 빛을 띠다 시푸르뎅뎅한 색으로 변했다. 세 번째 찍은 엑스레이에서 가장 염려하던 일이 극명하게 보였다. 장이 터져 장 안에 있던 공기가 배 안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엑스레이에는 컴컴한 공기가 소피아의 내장을 한쪽으로 쭉 밀어내고 있었다. 당직을 서던 외과의가 급히 달려와 배에 작은 구멍을 두 개를 뚫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소피아의 배가 조금 가라앉았다. 외과의사는 살색빛 고무 튜브를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터질듯히 부풀어 오른 배 안에 압력을 줄이고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한창 수술 중, 소피아의 부모가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은 무탈하게 끝났다. 그런데 소피아의 상태가 급작스럽게 악화되었다. 이미 소피아의 중한 상태를 충분히 들은 부모는 흐느껴 울기만 했다.

“몇 시간 남지 않았어요. 소피아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요.”

최대한 침착하게 중한 상태 전했다. 초미숙아를 자주 괴롭히는 괴사성 장염necrotizing enterocolitis의 경과와 소피아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했다. 워낙 상태가 위중한 데다 현재 최대치의 치료가 들어감에도 나아지지 않는 소피아의 안타까운 상황도 알렸다. 고통 완화 치료의 가능성도 논의했다. 울면서도 눈을 맞추고 대화를 이어가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턱을 덜덜 떨다 울기만을 반복했다. 더 이상이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생각할 시간을 좀 주기로 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이쯤이면 소피아 부모도 진정되었으리라 생각했다.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경비 둘이 뛰어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따라 들어갔다. 신생아중환자실 한복판에서 소피아 아빠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발악하며 악을 쓰는 그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너 이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우리 소피아 죽기만 해 봐. 너부터 내가 죽여 버릴 거야!”


아까까지 말 한마디 안 하던 소피아 아빠가 맞나 멍하니 바라보다 ‘개새끼’가 내 동료 의사임을 알고 자지러지게 놀랐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날 밤 당직을 서는 동료 의사가 소피아 부모에게 완화 치료를 권했다. 한데 인생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소피아 아빠에게 내 동료의 어조가 의도치 않게 강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방어 기제일까. 그는 갑자기 잠에서 깬 불곰처럼 돌변해 의자를 던지고 그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사태를 지켜보던 수간호사는 바로 경비를 호출했다. 금시초문 신생아중환자실 코드 그레이(폭력적인 환자 또는 보호자 발생)가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내 담당 환자의 가족이, 방금까지 나와 함께 상담을 했던 그 가족이 내 동료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쳐 신생아중환자실을 울리고 있었다.  


경비 둘은 그들보다 키가 훨씬 큰 그를 가뿐히 제압했다. 그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날려도 경비 둘이서 그를 가뿐히 들었다. 엄마가 두 살배기 말썽쟁이를 통제하듯 그를 데리고 아니 들고 중환자실 밖으로 사라졌다. 곁에서 숨 죽여 울기만 하던 엄마는 아빠를 대신해 연신 사과의 말만 간신히 토했다. 갑자기 돌보아야 할 아기가 둘이 되어버린 엄마의 모습이었다. 비통, 걱정, 당혹, 민망, 그리고 미안이 뒤섞인 표정으로 울음이 멈추지 않는 엄마 때문에 나도 울었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는 나 밖에 없어서, 해가 진 고속도로가 어두워서 울었다. 그것은 아이 둘을 가진 엄마만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이었다.


소피아의 부모에게 완화 치료를 권한 내 동료는 아이가 셋이나 되는 아빠였다. 그중 한 아이가 많이 아파 부모로서의 아픔이나 괴로움을 몸소 겪어 잘 알고 있는 아빠였다. 아마도 과도한 공감으로 소피아의 고통의 시간을 빨리 끝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공감은 지나침을 넘어 사람을 냉소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하다 보니 가족의 마음까지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예상치 못한 혼란스러운 상황 앞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가족들의 마음을 말이다.


의사이자 심리학자로 유명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저서 <아들러의 인간이해>에서 개인의 행동은 동료 인간과의 관계나 입장과 큰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우리는 모두 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고 설파했다. 슬픔을 인간 본질 안 뿌리 깊게 박혀있는 감정으로 보았다. 슬픔이 과도해지면 주변에 적대적이고 유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분노와 슬픔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에게 공감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다른 사람의 염려와 관심은 대부분 감정을 완화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슬퍼하는 사람은 누군가 옆에서 자신을 돌보고 공감해 주고 지지해 주면 그 감정을 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피아의 아빠도 슬픔과 절망에 빠져 그 안에서 혼자 버둥대고 있었으리라. 어느 누구의 공감도 받지 못해 그 강력한 감정을 분노로 표출했을지도 모르겠다. 급박한 상황에서 상담을 했지만 내가 조금 더 공감하려 노력했다면, 그 마음을 표현하고 그의 마음도 보살펴줬다면 코드 그레이 같은 상황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나의 소중한 아기가 아프고 곧 죽을 상황에 놓였다면 이성적인 사고는 불가능하다. 당황, 놀람, 슬픔, 간절함, 절망, 그리고 분노가 갑자기 찾아와 그를 짓눌렀을 때, 우리 의료진의 공감으로 그의 감정을 완화시켰어야 했다. 우리의 치료 대상은 아기이지만 아기와 함께 온 가족도 우리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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