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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호 Dec 08. 2017

1인 디자인 기업의 수익관리

Part3. 1인 디자인 기업으로 10년 먹고살기-7

수익관리는 사업을 영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일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입금을 못 받는 경우도 있고, 일의 가치보다 너무 작은 비용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독립한 디자이너 각자의 기준에 맞는 수익목표를 잡아놓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사실 수익관리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기업에서는 재무팀이나 총무팀 등 수익과 지출을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으니 디자이너는 열심히 일만 하면 되지만 1인 디자인 기업이라면 수익관리도 꼭 해야 하는 일의 하나다.


이번 글에서는 수익관리의 방법과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수익관리의 기본은 거래처 관리

내 클라이언트는 과연 우량 클라이언트인가?


자신의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디자이너가 아닌 외주나 수주를 통해 사업을 하는 디자이너라면 정기적으로 일을 의뢰받는 클라이언트가 한두 업체쯤은 있을 것이다. 


클라이언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과연 어떤 클라이언트가 좋은 거래처가 될 수 있을까?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과연 좋은 거래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창업 초기에 어떻게든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잡고 싶었다. 퇴사하기 전 회사에서는 정부부처나 공기업 등 관공서의 외주업무가 많았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한 작업보다는 무난한 작업이 많았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너무 심플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디자인. 그래서인지 혼자 일하기 시작 이후부터는 세련되고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반기업, 그중에서도 큰 비용을 디자인에 투입할 수 있는 대기업 거래처를 더 원했던 것 같다. 


또한 내 홈페이지의 클라이언트 메뉴에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기업들의 로고가 올라가 있으면 뭔가 있어 보이는 효과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기업과 거래할 수 있는 1인 디자인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작은 기업(스타트업, 소상공인, 중소기업)들 위주로 클라이언트를 만들다가 어느 정도의 포트폴리오가 쌓였을 때 큰 기업과 일할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다른 디자이너들도 거의 비슷한 수순으로 대기업의 협력업체가 되었다. 


하지만 대기업은 그리 안정적인 클라이언트는 아니다. 대기업과 일하려면 많은 경쟁자를 이기고 선정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선정이 되었다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대기업과 거래를 원하는 디자이너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들과 끝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 한 프로젝트 한 프로젝트마다 신경 쓸 것도 많고 관공서만큼이나 결제라인도 복잡했다. 디자인 업무 자체에 소요되는 리소스도 엄청난데, 다른 업체들과 경쟁도 해야 하고, 결제라인을 올라갈 때마다 달라지는 의견도 반영해야 했다.


대기업도 대기업 나름이고 작은 기업도 작은 기업 나름이겠지만 작은 기업과 일을 하다 보면 협업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을 때가 많다. 성장이 완료되었거나 속도가 굉장히 느린 대기업에 비해 작은 기업은 성장 속도도 빠르고 일의 프로세스도 비교적 심플하다. 일방적으로 하청을 주고 일을 처리해주는 관계가 아닌 서로의 성장을 위해 win-win 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훨씬 안정적인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대기업이 지불할 수 있는 디자인 비용이나 작은 기업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의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으니, 작은 회사와 거래하려면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확보하는 것이 좋다. 



돈나올 구멍을 여러 개 파라.


옛말에 '우물을 파려면 한우물을 파라'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한 분야를 꾸준히 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를 수익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니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대기업 한 곳의 하청업체로써 한우물만 주야장천 팠다고 가정해보자. 가격 경쟁에서 밀렸다던가, 낙하산을 타고 다른 외주업체가 나타났다던가 하는 위기가 생기는 순간, 수익도 제로가 된다. 튼튼한 클라이언트가 있다는 것은 1인 디자인 기업으로써 사업을 영위하는 데 있어 아주 좋은 상황이지만, 한 클라이언트에 너무 많은 의지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사업을 하는 셈이 된다. 아울러 협업관계의 파트너십이 아닌 '갑을'로 대변되는 종속적인 관계가 될 확률이 높다.


한 우물만 깊게 파라는 말그대로 옛날말이 아닐까?


주식이나 펀드 등 투자를 할 때 항상 강조하는 투자방법이 있다. 분산투자. 수익도 마찬가지다. 분산투자가 아닌 분산 수익을 해야 한다. 돈 나올 구멍 여러 개를 파 놓아야 하나의 돈 구멍이 막히더라도 다른 구멍에서 지속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이 돈나올 구멍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거래처 이야기뿐이 아니다. 직업의 다각화와도 일맥상통한다.


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써 할 수 있는 다양한 디자인 업무 외에도 홍보영상 PD로써 홍보영상도 만들고 있고, 작은 카페를 오픈하는 것을 돕는 창업컨설팅도 겸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부터 팟캐스트에 패널로 참여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기획을 통해 새로운 팟캐스트를 론칭하는 팟캐스트 PD의 역할도 도모하고 있다.


이렇게 직업면에서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둠으로써 다양한 수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다른 디자이너보다 뛰어나서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난 내가 하는 작업들이 모두 큰 의미에서 디자인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예쁘게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편리하게 하는 다양한 것들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직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디자이너로써 홍보영상도 찍고, 카페도 만들며, 팟캐스트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 중 몇몇은 단순 수주영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회사의 디자인팀의 역할을 대신해주며 여러 곳에서 월급을 받는다. 물론 해당 회사로 출근은 직접 하지 않고 이슈가 있을 때만 들어가서 회의를 한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일반 디자이너보다 훨씬 높은 연차의 팀장급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업무를 맡기면서도 많지 않은 연봉으로 계약을 할 수 있으니 좋고,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고정수익이 생기는 것이니 좋다. 이렇게 1인 디자인 기업을 활용하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방식으로 연간 계약으로 일하는 '출근하지 않는 디자이너'도 늘어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바뀌는 것이다.



반드시 돈을 받고 일하자.


몇 해 전부터 디자인판에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바로 재능기부라는 명목 하에 벌어지는 재능 착취, 재능 강요다. 재능기부의 처음은 아주 바람직하고 좋은 취지였다.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공익의 목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언젠가부터 재능기부를 대놓고 원하는 곳들이 너무 많아졌다. 구인 사이트나 커뮤니티에 심심치 않게 재능기부할 사람들을 모집한다. 내가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내 재능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재능기부라는 명목으로 공짜 디자이너를 '구인'하고 있는 것이다. 재능기부를 받아야 할 만큼 어려워 보이는 기관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공짜로 디자인을 얻으려는 글을 보았을 때는 '재능 기부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망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도 재능기부로 디자인을 의뢰하고 싶다는 제안이 꽤 있었지만 대부분 거절했다. 나는 아주 작은 비용일지라도 비용이 책정되어 있지 않는 한 일을 의뢰받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그 일에 비용이 책정되어 있던 아니던 최선을 다해 디자인할 수밖에 없다. 디자인 자체가 디자이너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흰 배경에 점을 하나 찍더라도 디자이너의 생각과 시간이 들어가 있다. 그 점 하나를 찍기 위해 디자이너는 수년 동안 디자인이라는 학문에 대해 공부를 한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을 제공받는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그만큼 책임감이 낮아진다. 어차피 비용지불을 하지 않았으니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버리고 다른 디자이너를 찾으면 된다. 고객이 디자인에 대해 책임감을 갖으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공짜로 일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나만 갖고 있는 생각은 아니다.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공유되고 있는 '내가 공짜로 일하지 않는 7가지 이유'라는 글이 있다. (원문 7 Reasons Why I Can’t Do “Free" ) 이 글을 쓴 Sharon Hayes가 말하는 것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공짜로 디자인을 해주는 순간 나는 공짜 디자이너가 된다. 물론 고마운 디자이너일 수도 있겠지만, 추후에 정말 중요한 일은(페이가 있는) 맡기지 않는다. 공짜로 일을 해준 그 순간부터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간혹 이제 막 독립한 디자이너들이 포트폴리오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공짜 일을 의뢰받곤 하는데, 굳이 일해주고 상처받지 말고 그냥 혼자 연구작을 만들자. 연구작을 페이스북이나 커뮤니티에 공개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아보자. 이 방법이 디자이너로서의 인생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독립해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가 수익을 관리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일이다. 월급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말이다. 꼭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익에 대한 관리를 해야 한다. 수익이 있어야 디자이너도 살 수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지난 글 보기

Part3-6.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의 시간관리

Part3-5. 디자인 회사의 물리적 규모는 중요치 않다.

Part3-4. 공부하는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는다

Part3-3. 영업은 고객에게 맡겨라

Part3-2. 타짜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는다

Part3-1. 돈 잘 버는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Part2-4. 디자이너의 관계 관리

Part2-3. 디자이너의 셀프 브랜딩

Part2-2. 좋아하는 디자인과 잘하는 디자인

Part2-1. 디자이너의 퇴사력 키우기

Part1-5. 왜 독립하지 못하는가

Part1-4. 디자이너의 월급은 왜 이모양일까?

Part1-3. 디자이너의 본질은 무엇인가

Part1-2. 디자이너에게 출근은 어떤 의미일까?

Part1-1. 피 터지는 경쟁의 전쟁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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