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인호 Oct 31. 2017

디자인 회사의 물리적 규모는
중요치 않다.

Part3. 1인 디자인 기업으로 10년 먹고살기-5

독립을 준비하는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마인드 중 하나가 자신감이다. 실력면에서는 아마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실력이 없다면 독립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문제점 중 1번은 아마도 규모일 것이다.


1인 디자인 기업은 회사의 규모가 작다. 아니 최소다. 회사에 잉여인력이라는 게 없다. 사장이 곧 영업팀장이고 디자인실장이고 기획팀장이다. 


하지만 회사의 규모 때문에 자신감을 잃지 말자. 

클라이언트가 디자인 회사를 선택할 때 첫 번째 고려사항은 '규모'가 아닌 '실력'이다.




실력의 규모를 키워라.


규모의 경제라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카페 운영을 겸하고 있다 보니 공간의 물리적인 규모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작은 규모의 개인 카페들 주변에 큰 규모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면 마치 청소기처럼 주변 상권을 다 빨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디자인판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규모의 경제라는 말이 적용된다. 비즈니스의 기본은 상호 간의 신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신뢰감이 규모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같은 1인 기업이라 할지라도 프리랜서보다는 개인사업자를, 개인사업자보다는 법인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규모만으로 디자인 회사를 평가한다면 아마 우리 같은 1인 디자인 기업은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좌절하지 말자. 실력과 전문성은 규모의 약점을 충분히 커버한다. 잘 나가는 1인 디자인 기업가들이 그저 그런 디자인 회사보다 유명하고 돈도 잘 버는 이유가 바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실력'일 것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브랜딩랩 '라이크어브루스'의 모토.


나는 프로젝트를 의뢰받을 때 수의계약으로 수주받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가끔 경쟁 PT를 통해 수주받을 때도 있다. 그런데, 프리랜서나 1인 디자인 기업들과 경쟁해본 경험은 드물다. 대부분 나보다 규모가 큰 회사와 경쟁했다. PT에서 이긴 경우도 있고 진 경우도 있지만 회사의 규모 때문에 진적은 없다. 오히려 규모가 큰 회사가 내가 낸 견적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입찰해 수주받아간 경우도 있다. 


회사의 규모에 연연하지 말고 실력을 키우자. 실력의 규모를 키우면 물리적인 규모가 작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비밀유지, 유연성 등)



가격으로 경쟁하려 하지 말자.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내 디자인의 가치는 내가 결정한다. 물론 고객이 최종 결정을 하지만, 고객에게 공이 넘어가기 전에는 내가 최종 결정권 자이다. 경쟁 pt나 입찰 등 경쟁상황에서는 가격이 중요하긴 하다. 


그런데, 클라이언트가 디자인을 구매하는 상황에서 가격만으로 디자이너를 평가할까? 어쨌든 가격은 2순위다. 내 크리에이티브가 먼저 선택되어야 내가 작성한 견적서가 보이는 것이다. 꼭 경쟁상황이 아니더라도 먼저 내 포트폴리오가 고객 맘에 들어야 견적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시장에 갓 진입한 디자이너들이 가장 큰 실수를 하는 것이 가격으로 경쟁하려 하는 것이다. 유수의 디자인 회사에서 엄청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퇴사했지만 단지 회사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내 디자인의 가치를 나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가격정책을 잘못 세워서 고생한 이야기는 앞선 글에서도 몇 번씩이나 언급했다. 한번 잘못 만들어진 가격정책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디자이너의 경쟁력은 가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1인 디자인 기업이 규모가 큰 기업에 비해 견적의 효율화 면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격에서 경쟁력을 찾으려 하는 순간부터 내 디자인의 가치는 끝없이 낮아질 것이다.


큰 회사의 10분의 1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큰 회사가 10개의 프로젝트를 할 때 나는 1개만 하겠다.


작은 단가의 10개 프로젝트를 시간에 쫓겨 아등바등거리며 쳐내는 것이 아니라, 높은 단가의 한 프로젝트를 정성을 다해 처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을 하려면 절대 가격을 낮춰서 수주받을 수 없다. 가격을 높게 받는 대신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수정을 한다던가, 배리에이션을 무료로 해준다던가 하는 등 용역을 더 제공하는 쪽으로 나름의 기준을 세워 두면 고객의 만족도가 오히려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혼자가 아니다.


1인 기업은 상시 근무자 없이 사업자 혼자 일하는 영업의 형태이다. 법적으로는 5인 이하의 사업장까지는 1인 기업으로 보고 1인 기업 관련 혜택을 볼 수 있게 해놓았지만, 어쨌든 최소 규모의 기업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많은 일들을 혼자 처리하지 않는다. 사실 디자인 관련 일 중에 혼자 다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포스터 디자인을 예를 들어보자. 포스터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를 받는다. 디자인 '만' 해달라며 디테일한 원고를 던져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포스터의 주제가 되는 행사나 제품 등의 개요 정도만 넘어온다. 


먼저 기획자와 카피라이터는 포스터의 뼈대와 카피 등을 정하고 아트디렉터가 합류해 디자인 콘셉트와 key 비쥬얼 등을 기획한다. 디자이너는 기획안에 따라 디자인을 시각화하고 시안을 제작한다. 디자인이 완료되면 인쇄소로 넘겨져 각 인쇄 단계를 거쳐 인쇄되고 고객에게 납품된다.


각 단계별로 한 명씩만 투입된다 해도 10명 안팎의 인원이 필요하다. 규모가 큰 회사라면 각 단계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분업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프로젝트를 만들어갈 것이다. 


1인 디자인 기업은 분업 대신 협업을 한다. 각 단계나 과정에 필요한 업무를 해당 분야의 다른 전문가와 함께 협업해 처리한다. 너무 간단해서 협업이 오히려 불편한 경우에는 디자이너가 1인 다역을 맡아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협업은 프리랜서나 1인 디자인 기업 등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에게는 필수조건이다. 내가 가장 많은 수익을 만들고 있는 일은 홍보영상인데, 만약 협업을 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촬영감독, cg디자이너, 음향기사, 녹음 오퍼레이터, 성우 등 홍보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적어도 4~5명 정도와 협업을 한다. 


협업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기본이긴 하지만 프로젝트의 성과가 좋다거나 구성원끼리의 합이 잘 맞는다면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처리하며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일하기도 한다. 나와 함께 협업하는 구성원들도 대부분 5년 이상 함께 일해온 파트너들이다.


협업의 장점은 단순히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처리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를 점점 넓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깨너머로 배운다'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원이나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일하는 것을 보며 눈치껏 배운다는 뜻인데, 협업을 하다 보면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일하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보며 함께 의견을 나눌 기회가 많아진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는 해당분야의 지식이 쌓인다. 어느 순간이 되면 작은 일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준전문가가 될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처리할 수 있는 분야를 넓혀가는 것이다.


또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해당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프로페셔널들이 뭉쳤는데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 오히려 일반적인 디자인 회사에서 만들어낸 산출물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이 만들어질 것이다. 


협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학생들(중,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은 의아해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 때는 팀을 이뤄 과제를 수행하는 일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팀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일을 하는 사람만 일을 하게 되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놀거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생 때 팀작업을 했던 기억이 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그건 학생 때 일이다. 필드에서 만난 프로페셔널들은 태생 자체가 다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의 비율이 40%~50%에 육박할 정도로 1인 기업은 세계적인 흐름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처럼, 협업을 통해 더욱 멀리, 오랜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을 무기로 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회사의 물리적 규모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일하는 공간과 일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머리를 오픈하고 생각의 크기를 조금 넓혀보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다.



지난 글 보기

Part3-4. 공부하는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는다

Part3-3. 영업은 고객에게 맡겨라

Part3-2. 타짜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는다

Part3-1. 돈 잘 버는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Part2-4. 디자이너의 관계 관리

Part2-3. 디자이너의 셀프 브랜딩

Part2-2. 좋아하는 디자인과 잘하는 디자인

Part2-1. 디자이너의 퇴사력 키우기

Part1-5. 왜 독립하지 못하는가

Part1-4. 디자이너의 월급은 왜 이모양일까?

Part1-3. 디자이너의 본질은 무엇인가

Part1-2. 디자이너에게 출근은 어떤 의미일까?

Part1-1. 피 터지는 경쟁의 전쟁터 속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