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1인 디자인 기업으로 10년 먹고살기-6
우리나라는 일반 회사원과 디자이너의 근무시간이 기본적으로 같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나도 회사에 다닐 때에는 9시 출근을 기본으로 일을 했다.( 물론 퇴근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어차피 오늘도 야근할 것 같은데... 좀 늦게 출근하면 안 될까?'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이 생각부터 했다.
일이 잘 되는 시간에 일하고,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면 근무시간이더라도 리프레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꿈꾸는 근무의 형태일 것이다. 퇴사 후 혼자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나만의 일하는 시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이번 글에서는 일하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가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근무시간이다. 회사를 나오고 프리랜서가 된 직후에는 일하고 싶을 때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워낙에 자는 걸 좋아해서 아침잠도 많이 자고 밤엔 늦게까지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했다.
어느 순간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바로 사무실을 얻어 계약하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퇴사하고 1주일 만이니 나도 그새 회사원의 시간에 적응이 되어 있었나 보다. 출근을 다시 하면서부터 일하는 시간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 일하지만 엄연한 기업이니만큼 출근시간을 정해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에 붐비는 출퇴근 시간을 피해 10시 출근 7시 퇴근으로 정했다.
그런데, 회사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큰 의미가 없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밤낮없이 일했으니까, 정해놓은 출퇴근 시간 자체가 무의미했다. 회사 다닐 때처럼 월요일에 출근해 철야-사우나에서 쪽잠을 반복하다 금요일에 퇴근하기도 했다. 물론 사무실에 출근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 동안 계속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의미 없는 웹서핑도 많이 했고, 잡생각도 많이 했다. 눈치 주는 상사도 없으니 굳이 나 자신을 타이트하게 다그치며 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 일이 가장 잘 될까? 일이 잘되는 시간에만 일하면 안 될까?
디자이너마다 집중이 잘 되는 시간대가 다를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저녁 시간대가 편했다. 저녁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한 후 새벽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내가 일하는 패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과시간에는 업무 관련 미팅이나 전화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많았다. 집중이 잘 안되니 결과물의 실수도 많았고, 미팅이라도 나갈라치면 시간에 쫓기며 작업하기도 했다. 아마도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일이 가장 잘되는 시간은 저녁부터 밤까지이니 나머지 시간에는 속 편하게 쉬기도 하고, 영업활동을 하기도 하며 일하는 시간과 그 외의 시간을 분리했다. 업무시간을 분리하는 것은 나만의 방식은 아니고 필드에서 만난 많은 1인 기업가들이 택한 방식이기도 했다.
저녁~밤의 시간대는 감성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업무시간이다. 예술계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밤에 일하는 생활을 했지만 감성적인 업무가 많았으니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은 저녁형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지금은 아침 시간을 많이 활용한다. 업무의 시작을 새벽 5시나 6시쯤부터 시작하는데,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시간이고, 어디서 전화가 올리도 없는 조용한 시간대이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할 때 아주 좋다.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내방의 책상으로 출근한다.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씻고 아침식사를 하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고스란히 작업시간으로 바꿨다. 그렇게 시작한 아침 작업을 오전 10시쯤 마무리하고, 그 이후에 업무 관련 미팅이나 클라이언트 보고를 처리한다.
새벽시간이 집중이 잘 되는 이유는 조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고객이 출근하고 나면 전화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 그 시간이 되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 처음에는 그 압박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거나 실수를 하게 되기도 했는데, 익숙해지고 나서는 압박감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1인 디자인 기업은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디자인 업무 외의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업무시간을 유동적으로 분리하자. 집중이 가장 잘되는 시간을 찾아 디자인팀으로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운영지원팀으로 일하자. 어차피 다 자신이 해야 될 일이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수주하다 보면 장기간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홍보영상은 보통 2개월 정도가 소요되고 제안서나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업무는 길게는 4개월까지 일할 때도 있다. 이렇게 장기간 투입되는 프로젝트를 할 때에는 클라이언트의 시간에 맞추는 편이다.
클라이언트가 출근하는 시간에 나도 업무를 시작하고 퇴근하는 시간까지 맞춘다. 고객사로 직접 출근하는 프로젝트라면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출근하지 않더라도 고객의 시간에 맞추는 것이 좋다.
고객은 8시 출근인데 디자이너가 10시부터 일을 시작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급하게 처리해야 될 수정사항이 발생했을 때 고객은 2시간을 기다려서 수정사항을 전달하고 수정된 파일을 전송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간단한 수정이라 할지라도 아마 점심시간 이후에나 수정된 파일을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객이나 디자이너나 모두에게 마이너스다.
늘 그렇듯 여기에도 문제가 생기긴 한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고객이 하루 종일 회의해 만들어진 수정사항을 다음날 아침까지 요구하는 경우. (사실 이런 일은 꽤 자주 있었다.) 13년을 일했지만 이런 요구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케이스를 못 봤다. 대부분 울며 겨자먹기로 맞춰준다. 나도 그래 왔다.
마감날짜가 임박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맞춰야겠지만, 일정의 여유가 많이 남아있는 상황이라면 적당히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중간보고 일정 맞추다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면 정작 중요한 일정을 못 맞출 수도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년 전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갑질 논란' 이슈가 붉어지고 나서는 무리한 일정의 작업을 요청하는 케이스는 확실히 줄어들고 있다.
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스케줄링을 먼저 한다. 근무시간을 정해놓고 업무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특성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몇 시까지 일하고 몇 시부터 쉬는 일일계획표가 아닌, 프로젝트 전체를 각 업무별로 시간을 할당해 스케줄링하는 것이다. 기획 00일, 제작 00일, 회의 및 피드백 00일, 이런 식으로 자세하게 할당해 놓고 일을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스케줄을 먼저 잡아놓으면 고객과 이야기할 때도 편해진다. 데드라인만 정해놓고 세부일정은 공개 안 하는 것보다는 고객 쪽에서도 '디자이너가 지금쯤이면 어떤 일을 하고 있겠구나.' 하고 유추할 수 있으니 쓸데없는 참견이나 확인이 불필요해진다.
나는 기획업무에 할당하는 시간을 실제 디자인 제작 시간보다 더 많이 할당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전체 구성이나 디자인 콘셉트 등 아이데이션 하는 과정을 최대한 길게 잡는다. 그 시간 동안은 자료 서칭도 하고 책도 찾아보고 사색도 하면서 머릿속으로 정리를 한다. 이렇게 확실하게 정리된 아이디어는 제작 시간 자체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프로젝트에 따른 업무 스케줄링을 먼저 해 놓으면 일이 겹쳐서 들어왔을 때 일정에 대한 조율이 쉬워진다. 일은 손에 손을 잡고 들어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일이 없을 때, 혹은 하고 있는 일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서 다른 일이 들어온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포기하게 되는 일이 많이 생긴다. 업무 스케줄이 미리 짜여 있다면, 크리에이티브한 작업(기획, 디자인)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일정만 겹치지 않게 조율해 동시 수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은 무리하게 하면 안 된다. 13년간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로써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건강하게 처리해야 한다. 특히 1인 디자인 기업이라면 더욱 중요한 것이 시간관리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효율적으로 쉬자. 그래야 지치지 않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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