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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호 Dec 13. 2017

인하우스 디자이너 때는 몰랐던
경영관리업무

Part3. 1인 디자인 기업으로 10년 먹고살기-8

1인 디자인 기업을 이제 막 시작한 디자이너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의외로 엉뚱한 부분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디자인 업무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디자인 외인문제, 즉 인하우스 디자이너였다면 경영지원팀이나 구매팀, 총무팀 등 회사의 다른 팀들이 대신해주었던 경영관리 업무의 문제다.


디자인은 일을 의뢰받고 일을 해주면 끝이 아니다. 디자인이 시작되기 전, 디자인이 끝난 후의 다양한 업무들이 산적해있다. 다른 팀들이 대신해주던 경영지원업무들을 이제는 디자이너가 혼자 처리해야 한다. 디자인 자체의 업무량보다 디자인 외적인 서류 작업의 업무량이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만큼 1인 기업일지라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려면 디자인 외적인 업무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번 글에서는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가 꼭 챙겨야 하는 디자인 외적인 업무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디자인 업무의 첫 단추는 무엇일까? 포토샵을 열고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 아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지 상의한 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계약서는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 매우 간단하지만, 법적 인문제가 생겼을 경우 내 권리를 찾아주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 독립한 디자이너들과 이야기할 때 계약서를 항상 작성하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계약서의 중요성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지만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B2B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발주하는 회사에서 알아서 계약 진행을 해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케이스라면 계약서 작성 없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특히 알고 지내던 지인의 부탁으로 일할 때는 계약서를 쓰자고 말을 꺼내기가 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계약서는 최후의 보루이다.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아 납품을 한 이후에 일에 대한 비용을 청구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입금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입금을 못 받는 케이스가 생각보다 꽤 많다. 계약서를 작성했다면 계약에 명시한 대로 청구를 진행하고, 계약이행을 하지 않을 경우에도 계약서에 따라 법적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이때 계약서는 법적인 증거자료가 되는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클라이언트와 주고받은 문자, 메신저 대화, 이메일 등이 계약을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증빙자료가 될 수 있는데, 계약서 작성을 했다면 계약서 하나로 끝낼 수 있는 증거자료를 일일이 꼼꼼히 챙겨야 하니 매우 힘든 일이 되어버린다. 계약하는 과정을 귀찮거나 민망한 과정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을 시작할 때 당연히 해야 하는 첫 단추로 생각하자. 계약은 그만큼 중요하다.


디자인 표준계약서

계약서에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할지 몰라서 계약을 못한다는 디자이너도 있는데,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한국 디자인진흥원에서 제작해 배포하고 있는 디자인 표준계약서를 다운로드보자. 디자인진흥원에서는 디자이너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는데, 표준 계약서 외에도 디자인 관련 법률자문, 디자인분쟁에 대한 조정 등도 도움받을 수 있다.


http://www.kidp.or.kr에 접속 후 '디자인권리보호' 클릭


표준계약서는 제품 디자인, 시각디자인, 인터렉티브 디자인, 제품 디자인(성과보수) 등 4가지 유형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실내건축과 주얼리 디자인 계약서는 자료실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고, 4가지 기본 유형 외에도 타 기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계약서 양식도 링크되어 있으니 편하게 나에게 맞는 계약서를 찾을 수 있다.


표준계약서를 다운로드으면 찬찬히 잘 읽어보길 바란다. 단어나 어휘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용어라서 그렇지, 그렇게 어려운 내용들은 아니다. 잘 읽어보면서 내가 맡은 프로젝트와 클라이언트에 맞게 수정하면 된다. 계약서의 작성은 발주처 혹은 디자이너가 일방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가 각 문항에 대해 협의하고 합의한 내용들만 담으면 된다.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계약서를 작성한 이후 변호사나 변리사를 통해 계약서에 대한 법률 검토를 받는 것도 좋다. 계약서는 계약 당사자들 간의 약속이지만 사실문제가 생겼을 경우 판사나 검사 등 법률가들의 해석과 검토를 받게 되므로 그들의 언어로 작성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계약서의 공증제도

계약서에 강력한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공증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사서증서의 인증제도).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에 의하여 작성되었다는 것을 공증인이 확인하고, 그 증명문을 써주는 것이다. 다만, 공정증서와 달리 강제 집행력은 없다. 공증은 인가를 받은 공증인이 있는 법무법인이나 공증인가 합동 법률사무소에서 진행한다.


계약 및 하자보수의 이행증권

공기업이나 공공 프로젝트에 대한 일을 할 경우 클라이언트 측에서 각종 이행보증보험을 원할 때도 있다.(계약이행, 하자보수 이행 등) 이행보증보험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사이에 보증보험사를 두고 일정 금액을 보험사가 보증을 해주고, 그것에 대한 보험증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계약이나 하자보수 등의 이행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보험사가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이너 대신 금전적인 보상을 해주고, 그 후에 보험사가 디자이너에게 그 보상비용을 반환 청구하는 구조이다. 이것 또한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계약서와 사업자등록증, 신분증을 갖고 가까운 보증보험사로 찾아가면 아주 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



납품이 끝이 아니다. 수금이 끝이다.


1인 디자인 기업을 운영하면서 어떤 것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대답하는 것이 바로 수금이다. 수금은 정말 어렵다. 분명히 내가 일을 해준 대가를 받는 것뿐인데, 뭔가 죄지은 것 같고, 부탁해야 하고, 사정해야 한다. 그만큼 수금이 잘 안된다. 이상하게 클라이언트들은 일할 때는 급한데, 일이 끝나면 느긋해진다. 돈을 하루라도 더 통장에 넣어두어야 행복한가 보다.


수금은 나에게도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업무였다. 창업 초기에는 입금해달라고 전화하는 것이 민망해서 와이프를 대신시켜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실제로 기업에서는 총무팀이 입금을 종용하지 않는가? 우리 집에서는 와이프가 총무팀이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무뎌져서 입금 예정일이 하루만 지나도 하루에 두, 세 번씩 전화한다.


입금을 종용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청구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입금을 종용할 때까지 처리를 안 해주는 거래처다. 1인 디자인 기업으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클라이언트사의 내부 사정을 알 길이 없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라면 회사의 재정상황이 어려운지, 어렵지 않은지 눈치로라도 알 수 있겠지만 그걸 모르니 우리는 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입금받기를 원하는 것뿐이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 입금 일정을 미뤄야 해서 사전에 조율을 한다면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OK 할 것이다.


그런데 간혹 아무런 조율도 없이 입금을 일방적으로 미루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거래처 담당자들이 있다. 거래처가 지근거리에 있다면 달려가서 어떤 상황인지 보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디자이너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전자소송-지급명령 활용하기

수개월 이상 입금이 지연됐다던가, 고의로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법의 힘을 빌려 처리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법무사나 변호사 등을 찾아가 소송업무를 의뢰할 수도 있지만 받아야 할 금액이 소액이라면 전자소송을 통해 할 수 있는 ‘지급명령’을 활용하면 된다.


대한민국 법원 전자소송 사이트 http://ecfs.scourt.go.kr


먼저 내용증명을 발송한다. 내용증명이란 최종적으로 한번 더 입금해달라고 종용하는 내용으로 일종의 편지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그 내용에 대한 증명을 공공기관인 '우체국'이 해주는 것이다. 내용증명의 양식도 정해진 것이 없다. 나도 내용증명을 두 차례 정도 보내본 적이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으로 작성했다.


본인은 귀하에게 이러이러한 용역을 제공했는데, 계약상 귀하께서 지급하기로 한 00원을 지급일인 00년 00월 00일 이후 00일이 지나도록 지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수차례 전화나 문자를 통해 입금을 부탁했지만 귀하께서는 응답하지 않았고, 이에 본 내용증명을 통해 최고하는 바입니다.

00년 00월 00일까지 계약금액인 000원을 아래 계좌로 입금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당일까지 입금이 되지 않을 경우 계약에 의거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여기에 계약서 사본과 세금계산서 등을 첨부서류로 동봉해 가까운 우체국에 가서 내용증명을 보낸다고 하고 접수했다. 내용물은 총 3부를 만들어가야 하고, 한부는 보내는 사람(본인) 용이고, 한부는 수취인 용, 한부는 우체국 보관용이다.


내용증명은 법적인 효력은 없다. 다만 민사소송 등 법적인 절차에 들어갔을 때 참작할 증빙자료가 된다. 물론 이때에도 문자나 이메일 자료, 통화한 내용을 녹취한 녹취록 등 다양한 증빙자료를 첨부할 수도 있는데, 가장 쉽고 정확한 자료가 내용증명이다.


내용증명은 최소 2회 정도 발송하는 것이 좋고(시간을 두고) 내용증명 이후엔 '전자소송'을 통해 소를 제기한다. 소송절차가 잘 마무리되면 지급명령이 떨어지는데 이때도 입금을 받지 못한다면 물품이나 은행계좌에 가압류를 진행할 수 있다.


사실 내용증명까지 보낼만한 상황이라면 해당 거래처와는 더 이상 다른 일을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엎어진 관계이니 냉정하게 판단하고 실행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디자인 회사의 업무는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다. 디자인만 하던 인하우스 디자이너일 때는 상상도 못 하였던 업무들을 하나둘씩 만나며 여기저기 도움도 많이 청했고 인터넷 검색도 많이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해결해 가며 1인 디자인 기업가로서 조금씩 성장해 왔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좀 더 오래 생존한 1인 디자인 기업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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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7. 1인 디자인 기업의 수익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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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5. 디자인 회사의 물리적 규모는 중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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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1. 돈 잘 버는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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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3. 디자이너의 셀프 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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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1. 디자이너의 퇴사력 키우기

Part1-5. 왜 독립하지 못하는가

Part1-4. 디자이너의 월급은 왜 이모양일까?

Part1-3. 디자이너의 본질은 무엇인가

Part1-2. 디자이너에게 출근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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