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인호 Jan 08. 2018

1인 디자인 기업의 위기 극복

Part3. 1인 디자인 기업으로 10년 먹고살기-9

나는 13년째 1인 디자인 기업으로써 일하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사업을 해왔다. 사실 힘든 순간도 많았고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사업을 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위기가 찾아왔고, 위기를 돌파해가며 지금껏 일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가 찾아오면 일을 그만두고 쉬는 사람도 있고, 이직을 통해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일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위기가 찾아온다. 꼭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1인 기업가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위기.


이번 글에서는 여러 유형의 위기와 그에 대한 극복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인 디자인 기업에 찾아올 수 있는 첫 번째 위기


창업판에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3년을 버티면 5년까지 갈 수 있고, 7년을 버티면 10년 이상 갈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사업을 지속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라는 디자이너가 시장에 알려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3년 정도가 걸리는데, 일단 시장에 어느 정도 알려지고 나면 함께 일하는 고객사가 어느 정도 쌓인다는 말이다. 그전까지는 힘든 것이 어찌 보면 정상적인 것이니 조금만 더 버텨보라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독립한 디자이너가 가장 힘들어하는 시간은 독립 후 3개월이 아닐까 생각된다. 먼저 독립한 선배들이 누구나 처음엔 힘드니까 조금만 더 버티라고 하지만 3개월쯤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를 찾는 클라이언트가 생기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는 직업의 특성상 '영업'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힘들다. 필드에서 만난 디자인 회사의 대표들 중에는 디자인 실무를 아얘 하지 않는 비 디자이너 출신 대표들이 꽤 많은데, 디자이너 출신 대표들이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운영을 한다. 영업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기에 디자이너에게 신경 쓰는 것 이상으로 영업자나 고객관리에 힘을 쏟는다.


디자이너는 그 어디에서도 먼저 손내미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영업은 모든 업무의 시작이다. 고객을 유치해야만 사업이 시작되고 돈을 벌 수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퇴사하기 전 다니던 회사에서 영업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퇴사자들이 배워야 하는 여러 가지 창업지식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생각하기엔 영업방법이다. 영업에 대한 확실한 플랜이 없이 사업을 시작하니 3개월이 채 되기도 전에 불안해지고 어떤 걸 해야 할지 모른 채 시간만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나도 퇴사 후 3개월 정도는 일을 거의 못했다. '나'라는 디자이너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나한테 일을 줄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시간이었지만 영업이라는 활동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일종의 적응기를 보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시간 동안 홈페이지와 연구작을 만들었다. 내가 하려는 사업에 대해 기획하고 정리해 서비스 상품을 만들고,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후 키워드 광고를 시작했다. 


당시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 영업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에 내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을 해온 고객들과 한두 건씩 일을 해가며 클라이언트를 늘려나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신규 클라이언트를 유치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3개월째 찾아오는 첫 번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최대한 나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사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어떤 디자인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 가까운 지인들에게 먼저 알리고 소개를 유도하면 작은 일 몇 가지 정도는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일들이 모여 굵직한 일이 되는 것이다.



3년 차, 7년 차... 사업은 위기의 연속


독립 후 3년 차, 3년을 버텼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고정적인 매출을 일으켜주는 클라이언트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2년 차 정도 되었을 때부터 대기업 클라이언트 한 곳과 학원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한 곳에서 고정적으로 일을 받기 시작했다.


두 곳 모두 그 당시 운영하던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해 온 클라이언트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자 재의뢰로 이어졌고, 1년 이상 꾸준히 일을 받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운영하는 비즈니스라면 이렇게 고정적으로 일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가 생기면 사업에 큰 도움이 된다. 별도의 영업활동을 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프로젝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자사의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디자이너와 일할 수 있으니 서로 win-win이다. 


3년 차의 위기는 이 고정 클라이언트가 있다는 자신감에서 시작되었다. 고정적인 수익이 생기자 회사의 규모를 확장하고 싶어 졌다. 비슷한 시기에 독립했던 다른 친구들도 3년 차 정도 되었을 때 확장을 고민하는 것을 보니 나도 어느 정도의 규모까지는 확장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논현동에 큼지막한 사무실을 구하고 인테리어까지 했다. 혼자 그 큰 공간을 사용할 수 없으니, 동업할 파트너를 먼저 구했고, 디자인을 서포트해줄 디자인팀장까지 데려다 앉혔다. 그리고 잡사이트에 구직공고를 올려 신입직원까지 구했다. 


처음엔 괜찮았다. 신규로 수주받는 프로젝트의 규모도 사업의 확장에 맞춰 더 커졌고, 들어오는 수익도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도 함께 시작되고 있었다. 혼자 일할 때는 얼마 안 되었던 고정비가 생각보다 커져서 수익 대비 지출의 효율이 너무 안 좋았다.


나는 내 사업역량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 고정적인 클라이언트가 있었지만 혼자 일할 때는 많아 보였던 고정 수익이 더 이상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학원 프랜차이즈에서 나와 컨택하던 담당자가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냥 퇴사를 한 것이 아니라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퇴사했단다. 나랑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었지만 그 담당자와 친했던 거래처들 대부분이 잘려나갔다. 독립 후 3년 동안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클라이언트가 없어지자 회사 자체가 흔들렸다.


사무실도 작은 곳으로 다시 옮겼고 직원들과도 헤어졌다. 그렇게 버티다가 동업까지 해지하며 다시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돌아왔다. 3년 차가 시작되며 사업을 확장했는데 그 후 3년을 헤매다 다시 1인 기업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겪은 위기는 무리한 확장과 소극적인 신규 클라이언트 영업, 몇몇 거래처에 국한된 의존적 영업방식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사업 확장에 '실패'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사업을 확장하려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규모가 필요해서 확장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사무실이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아울러 사업이 커지면 디자이너의 역할보다 경영자의 역할이 더 커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디자인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 생각이 달라지는 계기도 되었다. 



수익이 점점 줄고 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수익의 정체기가 생긴다. 수익이 많이 나는 상태에서 정체기가 오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 아직 만족할만한 상황이 아닌데 더 이상 수익이 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이유는 대부분 간단하다. 일을 처리하는 속도에 한계가 와서 더 이상의 일을 쳐낼 수가 없거나 일의 의뢰가 많지 않거나.


나는 요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딱 나 같은 디자이너 한명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하는 일이 다양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많이 하는데, 수익을 늘이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일의 범위를 넓여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디자이너들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한다. 필드에서 만난 디자이너 중에 영상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과 시공을 한꺼번에 하는 디자이너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나 같은 디자이너가 있다면 꼭 동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자주 한다. 더 많은 일을 해서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싶은데 시간과 체력이 모자라 포기하는 일들이 많을 때면 더 절실해진다.


디자인이라는 직업은 다양한 재화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용역서비스에 가깝다. 클라이언트로부터 내 인건비를 정산받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물가는 꾸준히 오르고 있는데, 디자이너의 인건비는 크게 오르지 못한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 디자인비를 팍팍 올려서 청구할 수 있는 몇몇 스타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디자인 비용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익이 늘지 않는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사실 디자인비를 올려서 청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가격이라는 것이 시장에서 디자이너를 선택할 때 기준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게 건드려야 한다. 기존 고객에게 디자인 비용이 인상되었음을 알리는 것은 (웬만한 친분이 아니고서는) 재의뢰를 받지 않겠다 라는 말과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창업을 컨설팅해준 카페 중 한 곳의 사장님이 창업 후 1년 정도 되었을 때 비슷한 고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원재료비가 상승했으니 음료의 가격을 올려야겠단다. 전체 음료의 가격을 원재료비가 오른 만큼 인상했다. 인상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인상 후 첫 달의 매출이 인상한 비율만큼 상승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후 조금씩 매출이 줄기 시작했고,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인상하기 전 매출로 돌아갔다. 카페처럼 가격경쟁이 심한 분야에서는 제품의 질이 아닌 가격으로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커피값 인상이 맘에 들지 않았던 고객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출근하지 않는 디자이너에서 몇 차례 언급했지만 나는 돈나올 구멍을 여러 개를 파서 수익 문제를 해결한다. 


수익 문제는 단순히 디자인 비용을 올려서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은 건데, 이는 미래설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디자인만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디자인 싱킹에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밖에서 봤을 땐 디자인과 전혀 상관없는 일 들이다. 처음에는 '해보고 싶다.'는 단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차곡차곡 전문성을 쌓아가며 돈이 되는 일로 바꿀 수 있었다.


한 예로 작년부터 합류한 팟캐스트 '나는 1인 기업가다'. 팟캐스트는 기본적으로 무료 서비스라 수익을 만들기가 까다롭다. 국내에서 제작되고 있는  팟캐스트 중 상위 10% 정도의 방송 빼고는 수익실현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이 방송에 참여하면서 수익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고, 제안했다. 


나는 이 팟캐스트에서도 수익이 충분히 실현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먹구구식으로 돌리던 광고영업과 광고 제작 시스템을 손보았고, 프로페셔널한 광고 제작과 장기계약을 통해 팟캐스트 자체에서도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로 바꾸었다. 


처음 제안했던 팟캐스트광고제작기획서


이처럼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수익을 조금씩이라도 만들어나간다면, 내 본업인 디자인의 수익이 조금씩 줄더라도, 그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먹거리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라고 꼭 디자인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웃풋이 디자인물이어야만 디자인이 아니다. 디자인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면 디자이너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디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말해보자면, 어차피 디자이너로 살 수 있는 수명은 정해져 있다. 그 이후를 생각해보며 차근차근 준비해보자.



고객사의 담당자가 퇴사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비중 있는 고객사의 담당자가 갑자기 퇴사했을 때 고객사가 더 이상 의뢰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컨택 포인트가 없어져버리면 사실상 다시 연결하기가 어렵다. 다행히 기존 담당자에게 인수받은 직원이 다시 연락을 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가 많지는 않다. 이럴 경우 신규 영업을 통해 고객사 이탈의 공백을 채워야 하는데, 고객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나는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것보다는 기존 고객사의 담당자, 즉 사람에 집중하는 편이다. 고객사의 담당자들은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퇴사를 한다 해도 결국 비슷한 분야의 다른 회사로 이직한다. 담당자가 퇴사했다면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해 어느 회사로 옮겼는지, 하는 일이 동일한지에 대해 묻는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만으로도 그 담당자는 디자인이 필요하면 나를 떠올리게 되어있다. 담당자가 이직한 회사에서도 하는 일이 동일하다면 언젠가는 나와 다시 일할 수 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이직한 회사도 나의 고객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 13년간 이런 방식으로 고객사를 관리해왔다. 고객사를 관리한다기보다는 고객사의 담당자를 관리한 것이다. 그래서 내 고객사는 동종 업계의 경쟁사들이 많다. 가끔 경쟁사들끼리 모여 컨소시엄을 맺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옛 동지들이 다른 명함을 들고 함께 일하는 진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퇴사한 담당자에게 관심을 끊지 말고, 꾸준히 연락하며 친분을 유지해야 한다. 그들이 퇴사해서 경쟁사로 갔다면? 그들은 단순히 경쟁사 직원이 아니라 아직도 나의 소중한 클라이언트이다.




세상에 리스크 없는 사업이 어디 있을까? 디자이너에게도 수많은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위기라는 큰 산을 넘으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 위기에 대해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내 사업을 위한, 내 미래를 위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꿋꿋이 돌파해보자. 




지난 글 보기

Part3-8. 인하우스 디자이너 때는 몰랐던 경영관리 업무

Part3-7. 1인 디자인 기업의 수익관리

Part3-6.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의 시간관리

Part3-5. 디자인 회사의 물리적 규모는 중요치 않다.

Part3-4. 공부하는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는다

Part3-3. 영업은 고객에게 맡겨라

Part3-2. 타짜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는다

Part3-1. 돈 잘 버는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Part2-5. 프로페셔널 디자이너로써의 마인드 세팅

Part2-4. 디자이너의 관계 관리

Part2-3. 디자이너의 셀프 브랜딩

Part2-2. 좋아하는 디자인과 잘하는 디자인

Part2-1. 디자이너의 퇴사력 키우기

Part1-5. 왜 독립하지 못하는가

Part1-4. 디자이너의 월급은 왜 이모양일까?

Part1-3. 디자이너의 본질은 무엇인가

Part1-2. 디자이너에게 출근은 어떤 의미일까?

Part1-1. 피 터지는 경쟁의 전쟁터 속으로

이전 18화 인하우스 디자이너 때는 몰랐던 경영관리업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