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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호 Oct 26. 2017

공부하는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는다

Part3. 1인 디자인 기업으로 10년 먹고살기-4

우리는 참 공부를 많이 한다. 기본적인 공교육 외에도 학원도 다니고 대학에 대학원까지. 짧게는 몇 년부터 길게는 십 년이 훌쩍 넘도록 공부를 한 후 디자이너가 된다. 가까스로 디자인 회사에 합격해 디자이너가 되면 선배들한테 꾸중을 듣는다. 학교에서 이런 것도 안 배워 왔느냐고...


도대체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뭘 배운 것일까. 옛 선인들은 배움엔 끝이 없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도 끝없이 배워야 한다. 공부하는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HOW TO STUDY가 아니다. 독서를 하라던지, 학원을 다니라고 하는 것처럼 실질적으로 어떻게 공부하라고 말하는 내용은 없다. WHY, 즉, 디자이너가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다. 공부의 방법은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디자이너라면 어떻게든 찾아서 하리라고 본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도 계속 변한다.


나는 2003년에 광고디자인을 하는 디자인 부띠끄에 입사하며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 인쇄나 CTP인쇄가 활성화되기 전이라 포스터나 브로슈어 등 인쇄물을 인쇄하려면 분판 작업을 통해 필름으로 만들고 재판, 소부, 인쇄의 과정을 통해 제작했다. 공정별로 생산되는 산출물을 들고 다음 단계를 진행하는 공장으로 뛰어다니기도 했다.


PS판에 직접 출력하는 방식인 CTP방식이 막 도입되던 시기였지만 우리 회사 사장님은 옛날 방식인 필름 출력-소부 방식을 선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시간낭비인가 싶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도 없는 경험을 한 샘이니 나름 값진 경험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인디고라는 디지털 인쇄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저렴한 소량 인쇄라는 개념도 생겨나고 인쇄 작업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혁신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내가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분야에서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금방 도태되는 게 디자인판이다. 예시로 들은 것이 인쇄 쪽 이야기이지만, 웹디자인이나 영상디자인 등 대부분의 디자인 분야가 지난 10년간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었다.


디자이너가 민감하게 주시해야 하는 것은 디자인적 트렌드뿐만이 아니다. 제작방식에 따른 시장 수요의 변화도 항상 주시하고 있어야만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디자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알게 된 디자인 스터디그룹이 있다. 디자이너나 디자인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디자인 트렌드나 업에 관해 연구하고 공부하는데, 구성원들의 면면이 다들 뛰어났다. 1년 차 디자이너부터 10년 차가 넘은 디자이너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나누고 모르는 것은 서로에게 질문해 가며 자신을 갈고닦는다. 처음 소개받았을 때는 디자이너들끼리 모여서 무슨 스터디를 하는지 궁금했는데, 서로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공부가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주니어 디자이너 때 이들 만큼 열심히 했던가?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 대한 공부


일하다 보면 다른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한다던가 팀을 이뤄 투입되기도 한다. 내가 만든 팀이 아니고 클라이언트가 만들어준 팀일 경우 가끔 만나는 디자이너의 유형이 있는데 바로 디자인'만' 하려는 디자이너다.


원고의 내용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디자인만 입힌다. 원고에 원형 도형이 들어가 있으면 산출물도 원형 도형을 넣어 디자인한다. 원고에 오타가 있으면 산출물에도 오타가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디자이너에게 물어봤다.


'이거 원고는 읽어보셨나요? 무슨 내용인지 알아요?'


그러자 아주 해맑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요. 어차피 읽어봤자 뭔 말인지 알지도 못해요.'


애초에 원고를 파악할 생각조차 없던 것이었다. 도대체 어느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이렇게 망가뜨려서 필드로 내보냈는지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저런 디자이너가 있으니 나처럼 공부하는 디자이너가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이겠지.


디자이너는 분명 기획자나 마케터가 아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적어도 그 프로젝트의 기획자나 마케터 급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옳다. 프로젝트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어떻게 디자인 콘셉트가 나올 것이며, 어떻게 디자인이 완성될 수 있단 말인가.


기획자의 기획이 디자인을 만나면 엉망이 될 수도 있고 ×2가 될 수도 있다. 기획자와 협업하다 보면 종종 있는 일이다. 엉망이 될 경우 디자이너와 기획자는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한다. 엉망이 된 디자인을 그대로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회사에서 비딩을 준비할 때도 기획자 혼자 머리 싸매고 만들어내지 않는다. 기획자는 물론, 해당 제품이나 분야의 실무자,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등 각자가 맡은 분야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 하나의 크리에이티브를 완성시킨다. 이 모든 과정이 프로젝트에 대한 스터디라는 베이스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기획과 디자인이 따로 놀게 될 것이다.


프로젝트를 의뢰받으면 일단 그 프로젝트에 대해 스터디를 하자. 공부하고 질문하고 파고들자. 그렇게 해서 그 프로젝트에서 강조할 부분과 감춰야 할 부분을 찾고 그것을 디자인으로 표현하자. 클라이언트는 디자인'만' 하는 디자이너가 아닌 공부하는 디자이너에게 재의뢰를 할 것이다. 



시장에 대한 공부


시장은 변한다. 내가 군대에 가려고 휴학했던 1998년, 인터넷의 출현과 함께 웹디자인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인터렉티브 저작도구인 플래시는 기본만 알아도 디자인 회사에 그냥 입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만인 2008년.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웹 생태계는 급속하게 모바일로 옮겨갔고 그 많던 웹디자이너들은 모바일 최적화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시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오늘 흥했던 디자인 분야가 내일 시들해지고 모레 없어져버린다. 지난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없어지지 않을 시장의 디자인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시장은 수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수요가 생겨나면 시장이 만들어지고 디자이너가 뛰어들어 한 자리씩 차지하고 돈을 벌어간다. 수요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 계속 같은 디자인을 팔고 있는 디자이너도 있을 것이고 수요가 많은 시장에 대해 받아들이고 공부해 넘어가는 디자이너도 있을 것이다. 누가 오래 살아남을까? 


또한 시장의 활성화가 오래 지속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경쟁자는 많아지고 시장 단가는 떨어지게 돼있다. 디자인의 단가를 유지하고 싶어도 의뢰하는 사람들이 시장 단가를 알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낮은 단가를 부르는 디자이너에게 넘어간다. 어쩔 수 없는 시장의 이치다.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되는 이론 - 시간이 흐르면 경쟁자는 많아지고, 수익은 줄어든다.


이 같은 시장의 변화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공부를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장에 대한 공부는 10년이 아니라 20년, 아니 평생 디자이너로 살 수 있는 베이스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었는데도, 난 공부 그딴 거 모르겠고 그냥 시키는 대로 디자인만 할래..라고 생각하는 디자이너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일 당장 명함부터 바꾸길 바란다. 디자이너가 아닌 오퍼레이터로.



지난 글 보기

Part3-3. 영업은 고객에게 맡겨라

Part3-2. 타짜 디자이너가 오래 살아남는다

Part3-1. 돈 잘 버는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Part2-4. 디자이너의 관계 관리

Part2-3. 디자이너의 셀프 브랜딩

Part2-2. 좋아하는 디자인과 잘하는 디자인

Part2-1. 디자이너의 퇴사력 키우기

Part1-5. 왜 독립하지 못하는가

Part1-4. 디자이너의 월급은 왜 이모양일까?

Part1-3. 디자이너의 본질은 무엇인가

Part1-2. 디자이너에게 출근은 어떤 의미일까?

Part1-1. 피 터지는 경쟁의 전쟁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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