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윤이는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노란빛의 섬들 중 가장 큰 섬에는 붉은 달 밖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다만 이 통로를 열기 위해서는 두 영물이 한데 모여야한다. 두 영물은 붉은 달이 바깥세상으로 떨어뜨려 보낸 조각인데 이들은 떨어지며 닿은 무언가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의 정체에 대한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어도 무엇이 진짜인지 알 길은 없다. 어떠한 형태로든 조각들이 수명을 다하게 되면 바깥섬과의 통로를 영영 닫고 다월도로 돌아와 붉은달의 빈 공간을 다시 채운다. 바깥 세계 차귀는 달이 가까운 날이면 두 영물이 자신들의 세상 다월도가 안녕하기를 바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울릴 때면 붉은 달의 차귀에는 푸른 띠의 해무가 피어오르곤 한다.
자구내포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이곳에서는 낮과 밤이 없어 하루를 셈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반나절은 훌쩍 지나가버린 듯했다. 윤이가 앞에 펼쳐진 노란 섬을 바라보며 잠시 고심하던 찰나에 도가 저만치 앞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는 한참을 대화하다가 윤이를 돌아보며 외쳤다.
“쉬어 가자. 돌고래가 휴식처를 알려줬어. 인사해.”
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반가워. 나는 윤이라고 해. 바깥섬에서 왔어.”
돌고래는 환하게 웃으며 빠르게 대답했다.
“알아 알아. 다 들었어. 오래 걸어왔겠네. 차귀가 보이는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불어. 하지만 그에 걸맞는 튼튼한 집을 가진 이가 근처에 있어. 내가 부탁해봤는데 괜찮다더라고. 가까운 곳이니 한번 가봐.”
도는 고맙다는 듯 인사를 했다.
“덕분에 좀 쉬어갈 수 있겠어. 혹시 필요한 거 있어?”
돌고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이곳으로 들어오는 배들이 가끔 있어. 우리 서식지로 너무 가까이 오지 않게 말 좀 전해줘.”
“내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전해볼게.”
도가 대답했다.
윤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돌고래에게 물었다.
“혹시 너, 그 두 영물 중 하나야?”
돌고래는 싱긋 웃으며 노란 섬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윤이와 도는 튼튼한 집의 주인을 만나러 언덕 위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는 지층이 구불구불 여러 겹 쌓여 있었고 멀리서 흘러온 지하수가 그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덕 위에는 흡사 소나무 같은 식물들 사이로 짙은 날개를 가진 녀석이 바쁘게 오갔다. 도는 성큼성큼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잘 지냈어? 머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바다직박구리는 윤이를 살짝 바라보며 도에게 말했다.
“안녕. 돌고래에게 들었어. 여기는 바람이 잘 가려져 있어서 편히 잠들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오늘은 바람도 강하지 않으니 운이 좋네.”
윤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자구도래지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다음엔 휴대용 집을 가져올게. 그리고 우리 마을의 열매도 좀 가져다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바다직박구리는 즐거운 듯 말했다.
“좋지. 그럼 푹 쉬어. 나는 아랫마을에 다녀올 예정이니까 가야 할 때 그냥 떠나면 돼.”
휘파람 소리와 함께 바다직박구리는 멀리 날아갔다. 윤이와 도는 그의 보금자리로 들어가 차귀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 윤이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바다직박구리가 영물 중 하나야?”
도는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윤이는 한참을 푸른 해무가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다 차귀의 노래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피로도 해무도 노래도 모두 지나간 후였다. 도는 이미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온 듯 몸에 여러 씨앗을 묻히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가 저렇게 묻히고 돌아다니는 덕에 다월도 바깥섬에도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난다. 도는 바람을 읽을 줄 아는 녀석이었다. 평소 바깥섬에서 그가 바람을 타며 다닐 때엔 발걸음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방향에도 일가견이 있다. 커다란 길의 방향표는 윤이도 볼 수 있었지만 도는 식물들 사이에 숨겨진 이정표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도와의 이번 동행으로 윤이는 다월도의 복잡하고 특별한 법칙이나 아름다운 지식을 배우는 중이었다. 도가 말하는 다월도는 상상 이상으로 훨씬 다채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