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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그림 노운 Feb 06. 2024

무해하고 무용한


무해하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한다. 결국은 그런 것들을 모으고 수집하고 따라 하다 보니, 내 글도 비슷한 느낌이 되어가는 것 같다. 테니스 연재물인데도 정보 위주의 유용한 글을 쓰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유해한 글을 쓰지도 않는다. 원래 바라고 좋아하는 대로 뭐든 나아가기 마련이다. 나는 앞으로도 무해하고 무용한 것들을 읽고, 보고, 느끼며,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아이의 웃음, 앙상한 가지를 가진 겨울나무, 차가운 입김, 아이의 냄새, 마음에 닿는 단어, 예쁜 그림, 세상의 무용하지만 좋아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나열하며 지내게 되겠지.


월요일이 되면, 마음이 분주하다. 연재일인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올려야 하나. 써놓은 것은 없고, 레슨은 포핸드 백핸드의 소소한 변형만 이어지고 있는데. 발리는 시작도 못했고, 서브는 제대로 공이 들어가는 법이 없는데. 경기의 ㄱ도 해본 적이 없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나는 이 빈 백지를 무엇으로 가득 채우지? 테니스를 시작했으니 공부도 할 겸 써볼까 했던 '유용한 것'을 탐하려니 버겁다. 기실, 처음 막연히 시작할 때에는 테니스 경기 보는 법, 경기 규칙, 테니스 용어, 유명한 선수나 대표적인 경기들, 테니스와 관련한 그림이나 영화, 뭐 이런 것들을 찾아보고 정리해 볼까 싶었다. 이렇게만 해도 쓸 것이 무궁무진하겠구나. 10화는 쉬이 연재를 이어가겠구나.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나의 글 쓰는 재미는, 그런 '정보'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니었다. 테니스를 배우면서 느끼는 점이나, 발전해야 할 부분, 레슨에 대한 감상이나 소감 등도 남겨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초보 중의 초보인 내게 경기는커녕, 글로 남길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나타날 리 없다.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재미가 반감된다.





사람들은 언제나 쓸모를 찾는다. 글을 쓰더라도 그것이 경제적인 이득이 이어졌으면 바라고, 뭔가를 시작하면 1등 상을 타거나 상금을 타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최소의 노력으로 최고의 효과를 노린다. 세상의 쓸모를 위해, 최고가 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취미가 순수한 취미로 남지 못하고, 햇수를 따지고, 남과의 비교를 통해 1등을 탐하는 순간, 마음은 힘들어진다.


내게 도전을 시도조차 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순위권 안에 들지 못할 거 같으면, 아예 시작을 안 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점수를 깔아주는 사람이 되거나, 피라미드의 아래에 속해 있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너무 애살이 없어 (애살 : 경상도 방언, 잘하고 싶어 하는 욕심 정도의 뜻, 맞춤법 검사를 하니 '샘'으로 나오던데 어감이 좀 다른 느낌이다.) 걱정이 많았던 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알고 보면 욕심이 과했던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뭔가를 시도하는 기준으로 잘하는 것과 잘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어 왔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나의 첫째 딸은 꼴찌를 하더라도 하고 싶은 건 해본다.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할 수 없는 것으로 분류하던 나와는 달리, 좋은 것과 싫은 것으로 분류한다. 좋아하는 거니까 일단 시도해 보는 태도가, 내 눈에는 참으로 대견하다.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그 도전 정신이 쉬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싶다. 1등이라는 세상의 쓸모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다고 생각하니까. 중요한 것은 1등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끝끝내 이어갈 수 있는 끈기와 힘이 아닐까.






무용한 것들은 실제로 무용하지 않다. 효율만 쫓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책이 되어 준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미라클 모닝, 갓생 살기, 경제적 자유를 위한 여러 전략들, 그래, 다 좋다. 절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 그런 세속의 유용함이 어디, 위안이 되어주던가?


책, 책 냄새, 책이 많은 곳. 언제부터 나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내 기억은 아주 어린 시절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상 기억력이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라. 그저 기억나는 건, 혼자서도 20분 거리의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자주 도서관을 찾았다는 것뿐이다. 자유의지였는지, 누가 시킨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좋았다. 집에 위인전집이나 고전도서 전집 류가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독서를 아주 즐겨하는 아이도 아니었지만, 그냥 그 장소, '책이 많은 공간'이 좋았다. 거기서 낮잠도 자고, DVD도 보면서, '무용하고 무해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른이 되어서도, 심심하거나, 시간이 비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책이 많이 쌓여 있는 공간을 찾곤 한다.(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인근 서점이나 도서관에 있을 것이다.) 책은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책에 둘러싸여 있으면 평온과 안온한 느낌을 얻는다. 그래서 좋다. 위안이 되어 준다. 무용하고도 무해한 시간들을 쌓아온 나의 소중한 것들이 모여 있는 장소들은 내가 힘들 때면 나를 토닥여준다.


결국 브런치스토리의 응원하기도 결이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문을 닫았다. 몇 주의 경험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직하게 몸소 소처럼 일을 하며 은행에 이자를 따박따박 바쳐 가며 살아가게 될지언정, 그저 내가 마음 편안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쌓아가며 살아가기로 한다. 친구들이 주는 응원금도, 너무나 그 마음 다 알고 또 고맙지만, 세속의 가치로 전환이 되는 순간 불편해지는 내 마음이 문제다. 여전히 나는 무용하고 무해한 글을 양산하며 자기만족만 할 뿐, 전진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슬슬 마무리를 지어볼까. 스포츠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테니스를 치다 보면 아플 때도 있고, 잘 안쳐질 때도 있다.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치다 보면 잘 쳐져서 기분이 좋아질 때도 있다. 경기가 술술 잘만 풀릴 때도 있고, 영 풀리지 않아 화가 나기도 한다.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다.


주말 아침,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코트가 눈에 띄고, 그곳에서 복식경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진지하게 서브를 넣으며 기합 소리를 내고 공이 날아가면, 멀리 있는 사람이 포핸드로 받아낸다. 짧게 치기도 하고 길게 치기도 하면서 랠리는 이어진다. 새로운 세계의 시작은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한다. 쉬이 놓쳤던 것을 의미 있게 보기도 하고,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을 새로이 발견하기도 한다.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것. 어쩌면 시인의 시선과도 같은 그 시선은 익숙한 사물도 새롭게 보는 눈과 더불어 배우려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나의 테니스는 여러모로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도 계속 당분간 계속 이어지겠지. 이제 3개월 차에 접어든 햇병아리인 40대 여성으로서, 이 운동은 왠지 꽤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용하고도 무해한 것들을 사랑하는 내게, 이 유용하고도 장점이 다분한 이 스포츠가 꽤 마음에 든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미래의 나 자신을 응원한다.


연재는 여기서 끝냅니다. 지금까지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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