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목격한 자
편두통으로 약물 투약 중이던 20대 여자. 예방약을 잘 복용해왔고, 한 달에 3번 정도 빈도로 많이 줄어들어 편두통은 잘 관리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아플 때 필요시 먹는 약은 거의 남아 있으니 예방약만 처방해주면 된다고 하였고, 처방이 끝나고 나가기 직전, 혹시 좀 더 물어봐도 될까요?로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저희 외할머니가 자살을 하셨는데, 제가 처음 그 광경을 봤어요. 자꾸만 그게 머릿속에 이미지로 떠올라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어쩔 줄 몰라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지만, 말을 전하는 여자는 유달리 평온한 얼굴이었다. 스스로도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것 같다며 남의 집 개 이야기하듯, 덤덤하게 본인이 앞으로 어떻게 예방하면 좋을지를 물었다. 일시적인 공포와 충격은 정상적인 반응이며, 정신과 면담이나 약물 치료, 노출 요법 등의 치료를 권했다.
몇 달 전 입원 중이던 투석 환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생각이 났다. 내과 병동의 환자였고, 정신과 진료를 보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우울감이 몰아친 것인지, 투석실에 있는 각종 줄 중 하나에 목을 감고 자살했다. 나도 사실 들은 이야기라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지만,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안 좋았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 했을까 아이고야, 정도에서 생각이 그쳤던 것 같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내과 병동에서 처음 그녀를 목격했던 신규 간호사가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치료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꾸만 그 장면이 떠올라 힘들다고 했다. 처음 간호사 일을 하는데, 정신과 병동도 아닌데 자살 후 광경을 처음으로 목격하다니. 자살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힘든 줄만 알았지, 본인을 처음 발견한 사람의 공포감이라든지 이후의 상황은 아마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겉으로 너무 덤덤해서, 노출 요법을 조금씩 시작했는데, 하자마자 눈물을 계속 뚝뚝 흘리더란다. 겉으로만 덤덤할 뿐이었다.
자살을 목격한 자는 결국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철로에 뛰어드는 자살자를 목격한 기관사들끼리 술을 마시는 날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경찰, 소방 공무원들도 가끔 접하는 간접 죽음에 얼마나 많은 황망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지. 강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유가족들도 오랜 기간 죄책감과, 불안, 우울에 시달리며, 자살을 또 다른 창구로 여기게 될 수도 있어 연달아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죽음을 그냥 겪는 것과는 아마 다른 차원이겠지. 스스로 만들어 낸 죽음을 목격한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의도치 않은 광경을 보고, 원치 않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