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예 Sep 30. 2024

내려오는 돌, 그리고 올라가는 돌

넘어진 장소 부근. 다친 발목으로 저 머리 보이는 계곡을 넘어갔어야 했다.



산을 오르는 일은 언제나 도전적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길 위에서 작은 돌조차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특히 산을 내려올 때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나 역시 그 피해를 여러 번 겪었다. 20대에 왼쪽 발목을 접질린 이후, 등산할 때마다 발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늘 조심하려 애썼지만, 언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2022년 JMT 트레일 중반을 들어설 무렵, 전날  큰 산을 넘은 후인 그다음 날은 하루 종일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주먹만 한 돌들이 널린 길을 따라 내려가던 중,  돌에 걸려 무거운 배낭에 휘청이며 넘어지고 말았다. 바지가 찢기고 피가 났지만, 더 큰 문제는 발목이었다.  지나가던 다른 등산객들이 나보다 더 크게 놀라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괜찮다고 인사를 건넨 뒤 절뚝거리며 길을 비켜줬다. 발목이 시큰하고 이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곧 천둥이 치기 시작했고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두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빗속에서 눈물을 삼키며 네 시간이나 걸려 내려왔다.


더 이상 이동이 불가해져 어쩔 수 없이 근처 개울을 찾아 텐트를 폈다. 고도가 높아 개울물은 얼음같이 차가웠기에 비를 맞으며 발을 담갔다. 발이 얼어버릴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열을 식히길 반복한 뒤 잠에 들었다. 몇 킬로미터를 더 가면 레인저오피스가 있었기에 응급처치를 받기로 하고 다음날 부은 발을 얇은 내복으로 싸매고 천천히 이동하였다.


레인저가 발목을 살펴 봐준 뒤 반창고로 임시방편 조치를 취해 줬다. 발이 점점 부어올라 결국 얼마 못가 떼어내 다시 붙이기를 반복했다.


도착한 레인저오피스에서 응급처치를 받으며 이 지점을 넘어가면 산을 내려갈 방법이 없다고 산을 내려갈 것을 권고받았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 여행을 위해 왔는데 발목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니 속상하고 분통이 터졌다. 발목이 부러지지 않은 이상 속도가 느리더라도 여행을 계속하기로 하고 공원관리자로부터 어떻게 붕대를 사용해서 발목을 지지하는지를 배웠다.  사실 오피스에도 붕대는 없어서 급하게나마 의료용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여 산행을 계속했는데 탄력성이 좋은 붕대와는 다르게 반창고는 점점 부어오르는 다리를 더 옥죄어 와서 중간에 다시 풀고 붙이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그날의 산행을 마쳤다. 그렇게 며칠을 기어가다시피 걸으며 중간 음식픽업장소에 도착을 했고 그곳에서 붕대를 구입 후 여행을 마칠 때까지 밤마다 냉찜질과 붕대묶기를 반복하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귀국 후 각종 주사와 침치료를 병행하며 몇 달을 고생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계속 걷기로 했던 나 자신의 선택이 참으로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붕대 구입 전 끈이 될만한 게 없어서 얇은 내의를 이용해 레인저한테 배운 방법으로 발목을 묶어줬다.




이 경험 이후로는 돌의 크기나 모양에 상관없이, 발에 채이는 돌을 느끼면 자연스레 속도를 늦추고 신중하게 산을 오르는 습관이 생겼다. 이전에도 조심스러웠지만, 그때의 사고가 오히려 더 안전하고 현명한 산행 습관을 만들어준 셈이다.






돌들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굴러간다. 당연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인위적으로 옮기지 않는 한, 스스로 위로 올라가는 돌은 없다. 이 단순한 자연의 원리가 어쩌면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올라가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만나는 장애물들은 신중하게 넘어서야 하며,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라도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과 의지이며  그 의지에 따라 나아가는 방향이 결국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구르는 돌 위에서 의지가 중요하다는 걸 또 한 번 배운다.



이전 09화 롤러코스터 같은 트레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