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허씨의 취업 이후. 허씨는 26살에 취업 전선에 들어왔다. 남자로서는 스트레이트,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같이 일하는 동기들은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대부분 20대 후반이었다. 허씨는 회사 생활이 마치 군대의 연장선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 동료들도 있긴 하지만 주로 남자 동료들이 있는 회사였다. 회사에는 꼰대들도 적당히 있고 일 잘하는 상사들도 적당히 있었다. 그런 사람의 문제보다는 회사 자체에서 일이 많았다. 아침 일찍 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업무상 모르는 게 있으면 나머지 공부도 해야 했다. 물론, 그 시간은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도 필요하니까 했다. 그렇게 입사 초를 열심히 일에 몰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자친구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여자친구도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바빠 보였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났을까 간간히 보던 여자친구가 소원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느낌은 현실로 다가왔다. 여자친구는 새 직장 일이 너무 힘들다고, 이별을 통보했다. 자신도 여자친구에게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그렇게 책임감 없이 자신을 버리는 여자친구가 미웠다. 그러라고 했다. 헤어지자고 했다. 그 이후 허씨는 여자친구의 SNS를 몰래 염탐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올라오는 게시물을 통해 여자친구가 환승연애를 했을지 모른다는 정황을 알게 되었다. 상대는 같은 직장의 전문직인 것 같았다. 20대 중반에 접어든 여자친구가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이성은 생각했지만 감정은 무너져 내렸다. 나도 꽤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데, 배경이 없다고 날 무시하나. 허씨는 생각했다. 여자친구를 향한 마음은 증오로 남아 허씨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증오를 잊으려면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허씨는 다시 열심히 일했다. 챙겨야 할 여자친구도 없겠다 조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했다. 매일 집에 퇴근하면 10시에 가까워서 씻고 잠깐 유튜브 보다가 자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여서 다행이었다. 문득 출퇴근 시간이 아까웠다. 왔다 갔다 3시간은 되는 거리였다. 출퇴근 시간만 아껴도 뭔가 취미 생활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자취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모아둔 돈도 꽤 있는 터였다. 회사 근처 경기도 모처에 원룸을 잡았다. 한 달에 월세가 80만 원이나 했지만 그래도 월급을 받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취를 시작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월세 말고도 나가는 돈이 꽤 되었다. 지금껏 공짜라고 생각했던 밥, 생활도구, 관리비, 세금, 모두 다 돈이었다. 한 달에 나가는 고정비만 150만 원이 넘었다. 이것 내고 나머지 회사 생활 하면서 나가는 돈, 옷값이나 각종 경조사비 제하고 나니 월급에 200이 그냥 녹는 것이었다. 집에서 출퇴근할 때는 그래도 월 200은 모았는데, 이제 월 저축액이 반토막 났다. 그래도 회사에서 집이 가까워지니까 좋은 점도 있었다. 일단 지옥 같은 지하철 출퇴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국산 중고차를 마련했다. 유지비는 최소로 했다. 지방 살다 보니까 자차가 필요하긴 했다. 가끔 집에 갈 때도 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었다. 차를 몰고 다니는 자신이 가끔 멋져 보이기도 했다. 이럴 때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을 텐데. 예전 학생이었을 때 뚜벅이 연애가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연애 상대가 없었다.
가끔 주변에서 소개팅이 들어오기는 했다. 그런데 항상 돌아오는 피드백은 한결같았다. 남자로서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나?
남자로서의 매력이 뭔데?
허씨는 자신이 보통은 생겼다고 자부했다. 주변에서도 남자인 친구들이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니 그럼 난 여자란 말인가? 허씨는 이런 생각으로 공상을 하다가 잠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