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의 깊이 있는 질문에 깜짝 놀라서 답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잊고 있는데 지성이가 그 새를 기다리지 못하고 날카롭게 또 묻는다.
“엄마. 제일 좋았던 기억이 뭐냐구요.”
“아, 제일 좋았던 기억. 글쎄... 지성이에게 제일 좋았던 일은 뭔데?”
내 살아온 인생이 삼십칠년. 이제 나도 결코 짧지 않은 세월과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왔기에 나에게 가장 좋았던 기억을 찾기 위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질문의 화살을 아들에게 돌려보았지만 머리가 커진 아들은 눈치를 채고 내 대답을 재촉한다.
“엄마 내가 먼저 질문했잖아요. 엄마 먼저 알려주세요. 뭐예요?”
그제야 내 머리는 아들 질문에 감동 그만하고 다시 질문에 답을 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길어질 줄 알았던 질문에 나의 뇌는 놀라우리만치 빠른 시간에 답을 내놓았다. 이렇게 어려운 질문에 결정장애가 심한 내가 이렇게 빨리 답을 생각하다니.
“지성이 채윤이가 태어난 일이지.
“진짜요? 내가 거짓말탐지기로 ‘심장박동수, 땀, 호흡’ 가지고 엄마 측정해도 진짜 거짓말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
최근에 책에서 거짓말 탐지기를 알게 된 지성이가 재밌어서 맨날 나에게 거짓말 탐지기 원리가 무엇인지 아냐고 이주일 내내 그렇게 혼자 묻고 혼자 답했는데, 이번에 매우 훌륭하고 매끄럽게 대화 속에 거짓말 탐지기를 집어넣었다. 하하하 정말 많이 컸다 내아들!
“그래! 진짜라니까 거짓말탐지기 가지고 와서 백번 검사해봐. 진실이라고 나올 테니까!”
정말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온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의미있고, 가장 행복한 기억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을 낳은 일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그리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아이들은 그런 존재이다. 나의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는 아이. 불안했던 내 미래를 행복한 청사진으로 바꾸어준 아이. 나중에 죽음을 문 앞에 두고도 나는 아마 단언컨대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이렇게 눈부신 아이들을 만나서 정말 행복하게 살아서 좋았다고.
너희가 태어나지 않은 세상은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너희들의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옆에서 잠들 때마다 생각한다. 너희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 얼마나 방황하고 있을까. 밤에 잘 때마다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며 얼마나 깊고 외로운 생각에 빠져있었을까. 마음껏 사랑할 사람이 없어서 얼마나 마음이 허전했을까.
얼마 전에 채윤이가 주차장에서 내 손을 놓고 막 뛰어가는데 옆에서 차가 들어왔다. 나도 채윤이도 깜짝 놀라서 서로를 쳐다보고는 채윤이가 나에게 겁에 질려 막 달려왔다. 그때 나도 모르게 채윤이에게 소리쳤다.
“야! 곽채윤! 나 너 없이는 못산단 말이야. 너는 절대 다치면 안 돼. 사라지면 더더욱 안되고! 나는 너 없이 하루도 못산다고. 알았어? 차 있는 곳에서는 엄마 손 꼭 잡고 있어!”
채윤이가 다치면 혹은 없어지면 안 되는 이유가 나를 위해서라니. 내가 말해놓고도 너무 어이가 없는 말이었지만 그게 이기적인 엄마의 속내인 걸 어찌하랴. 그런데 정말이지 채윤이가 없으면 나는 슬퍼하다가 땅으로 꺼져서 죽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