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기 싫은 것에 관하여, 2017
우리는 본래 단편적이지만, 끊임없이 단편적이지 않으려고 한다.
단편적임에도 무수한 조각인 단편의 기억을 타고 어디론가 가려한다. 최후에 남는 모든 개체, 형태가 고등한 것이라면 단편적인 것은 결코 열세가 아니다. 그 편견을 버렸을 때, 비로소 단편적인 무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형편이 된다. 아침이 이제 해가 밝았다고 말하지 않는 일은 많다. 침대 위에서 밤이 계속되길 바라며 시간을 죽이는 일이 다음 날을 벅차게 기대하는 일보다 훨씬 흔하기 때문인지, 아침은 별나게 외쳐대지 않는다. 새가 운다. 몸의 리듬이 이제 아닌 척 연기는 그만 하라고 한심한 듯 요동친다. 아침은 그저 해를 떠올렸고 그 안에서 새가 울고 잠이 깨는 것, 세상이 밝는 것은 그대로 모두 단편적이다. 연속된 시간 속에서, 행여 어떠한 관계가 그 사이에 생겨나더라도, 그들은 끝내 손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엄연히 다른 행태와 개체. 모든 복잡한 것이 엉키게 된 데에는 크던 작던 의도가 숨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기 위해 수많은 핑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은 의도가 소환한 또 하나의 개체다. 지금 침대를 떠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놓을 기세로.
마찬가지다. 서로 모르는 것을 덕지덕지 이어 붙여 놓고 예쁘지 않다고, 결국은 세상이 한탄스럽다고 울어대는 일이야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이러니한 콩트인 셈이다.
그러나 단편은 단편적이다. 그대로 일 때,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