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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글로 Jul 22. 2022

5-2. 교육정보의 해석

다섯 번째 부모교양 : 교육정보가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기 싫은 마음보다 목표를 달성하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앨버트 E. 그레이)




교육정보대로 실천했는데 

결과가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


두 번째 이유는 교육정보가 의도하는 바를 부모가 실생활에서 자녀에게 적절하게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책대로, 강의대로, 교육정보가 지향하는 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노력을 통해 얻은 교육정보처럼 다른 아이들에게는 잘 적용되는 것이 우리 아이에게는 잘 적용이 안될까?


그에 대한 첫 번째 이유로 

교육정보가 사회과학의 이론적 성격을 지닌 탓에 

우리 아이가 그 교육정보의 예외상황, 즉 아이와 맞지 않는 정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이나 교육학에서 "이러이러하면 이러저러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라고 일반적으로 인정이 되는 교육 방식이나 심리학 원리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어느 정도 인정이 되는 이론입니다. 


이 뜻은 그래도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실천한다면 그 이론에 따른 결과가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A교수법(가르치는 방법)의 경우 참여자의 70%가 기준에 도달하는 성취도를 보였습니다. 

B교수법의 경우 10%가 기준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런 공인된 결과 자료가 있다면 학교에서는 당연히 A교수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학교는 다수의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하지만 학교에서마저도 실제 결과는 상당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같은 A교수법을 완전히 구조화(실시하는 방법과 내용이 매우 자세히 단계적으로 제시된)되어 있는 않은 경우 000 교사가 적용하는 것과 ***교사가 적용하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그 결과는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더 큰 차이는 교사뿐 아니라 수업을 받는 학생 집단에서도 나타납니다. 

학생에 따라 A교수법은 그 효과적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학생에게, 고등학생에게 적용한 결과치는 또 다르겠죠? 

중등학교의 경우 한 선생님이 여러 반을 수업을 합니다. 

중고교 선생님들이 증언합니다. "아~~~~ 똑같은 내가 가르치는데 왜 이리 반마다 다를까?"라고요. 


정리하면 

교사에게 A교수법을 제공하더라도 

실제 적용하는 교실에게서는 각 교사의 특성에 따라 

A교수법이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학급의 특성에 따라  A교수법이 나타나는 효과가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즉, A교수법이 교육이론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효과가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대부분 교실 현장에서는 실험이나 연구를 통해 발표된 A교수법과는 조금씩 다르게 적용됩니다. 

실험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연구와는 다른 모양으로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행하는 교사들에게 질문하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어떤 교수법을 사용하여 수업을 진행하셨나요?"

"네, 저는 A교수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책대로 했다는 착각


요즘은 교육정보도 절대적으로 많은 양을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좋은 양질의 정보는 책을 통해 들어옵니다. 

이것은 영상을 통한 강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책을 통해 교육정보를 얻을 때 읽는 독자인 

엄마, 아빠의 생각의 그물을 거쳐서 정보가 형성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강의나 영상 교육정보도 흘려듣지 않고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 같은 효과를 볼 수는 있습니다. 


교육정보를 책에서 얻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많은 양육서를 읽고 부모들이 그 원리를 잘 적용하여 활용하려면

해당 내용, 즉 정보를 저자의 의도나 이론이 추구하는 방법으로 

적절한 시간을 들여서 시행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도 자주 그렇습니다. 

정작 부모는 책이 의도한 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본인은 책대로 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책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먼저 예를 들었던 A교수법 사례에서 각 선생님이 자신의 해석대로 진행한 A교수법 수업을 한 것을 A교수법으로 수업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면서 '난 책대로 했는데... 왜 안되지... 이거 뭐야? 엉터리 아냐?'

대체로 엉터리가 아니랍니다....  뭐가 어디서 틀 어긋난 것일까요?




왜 실제로 책(교육정보)대로 하지 못하고도 책(교육정보)대로 했다고 착각할까?


첫째, 책이 의도하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적 행동만 반복하면 의도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초등학생의 학습법에 대한 책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구체적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부모가 어떤 한 가지 학습방법에 꽂히면 자녀에게 그 방법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걱정스러운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떤 책이나 학습 관련 이론은 다음을 전제로 합니다. 

책에서 어떤 학습방법을 제시했을 때 본절적 전제는 '주도성'에 있습니다. 

즉, 아이가 하는 것이라는 거죠. 

그 '주도성'은 아동 개인의 '즐거움'이 기반이 되었을 때 또는 '동기화'되었을  때 촉발되는 역량입니다. 

그래서 자기 주도적 학습 역량이 있는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주도적 학습 역량이 있는 아이는 학습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체로 싫어하지 않는 범주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초등 부모들은 아이가 4학년을 넘어 고학년에 진입하면 

 "아이를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라는 생각의 강박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이 학습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우리 아이 학습 결과에 개의치 않거나, 전혀 관심이 없는 분들은 예외겠지요) 

이런 강박은 약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부모라면 생기는 일반적인 현상이니 본인이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그래서 다양한 학습지도 방법들을 부모교육 강좌 및 책에서 섭렵하고 

집에 와서 그 결과를 자녀에게 시도해서 뭔가를 아이가 실행하도록 합니다.


초등학생들의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뭘까요?

위에서 언급한 바로 '주도성'입니다.


그러면 즐겁게 하거나 잘할 수 있습니다.


하루 2시간 이상 꾸준히 학습하는 태도를 기르면 우등생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맞습니다. 이 문장처럼 2시간 이상 꾸준히 '주도적으로' 학습을 한다면 초등학생 정도면 좋은 학업성취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학습의 양상과 내용은 또 개인마다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렇습니다. 


2시간에는 어떤 아이는 독서도 포함할 수 있는 것이고요. 

엄마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시간도 학습의 일부로 포함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바는 없다는 것을 꼭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이마다 그 2시간의 실제적 모습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2시간'의 의미는 수능을 앞둔 고3 학생의 2시간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2시간을 학습하려면 그 학습의 모양은 놀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우리 아이에게 적합한 그리고 아이가 실행하는데 적절한 정도여야 합니다. 


그 '2시간 학습'은 누군가의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의 제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모님들은 대체로 '학습하는 태도'보다는 '2시간 이상'에 꽂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달성하려고 아이와 함께 노력하다 보면(그런데 이 노력이 때로 아이가 도외시된 엄마만의 노력일 수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하루 2시간 이상 꾸준히 학습하는 태도를 기르면 우등생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는 '2시간'이 핵심이 아니라 '학습하는 태도'가 핵심입니다. 

학습하는 태도만 형성된다면 '30분'도 어떤 아이에게는 충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양에 집착하게 되면 대체로 그 핵심인 '학습하는 태도'가 망가지기 십상입니다. 


위 문장은 기업으로 비유하면, 

'우리는 뭘, 어떻게 해서 이익을 얻을까?'


라는 질문에 가까운 질문입니다.


뭔가를 해서 이윤을 남기는 것, 즉 그 '뭔가'와 '어떻게'는 기업 활의 본질이 됩니다. 


그 본질을 바탕으로 기업의 핵심 활동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 활동을 중심으로 연결된 작고 세부적인 기업활동이 생깁니다. 

그 기업의 직원들의 구체적인 업무는 그 '작고 세부적 기업 활동'과 연관된 활동이 됩니다. 


최 말단의 직원들의 업무가 얼마나 그 기업의 본질과 연결되는가에 따라 

그 기업의 흥망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등 학습의 핵심은 즐겁게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부모님들은 '잘하기'에 매몰되어 시간에 집착하여 좀 더 본질적이고 선행적인 '즐겁게'를 통해 '학습하는 태도 형성하기'를 놓치는 경우가 다수입니


즉, 내가 지금 뭐하는 기업인지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공부하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초등 시기에는 공부하는 질이 매우 중요합니다. 질이 좋으면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어나 어느 순간 2시간에도 도달하게 됩니다. 


또는 어떤 아이에게는 초등학교의 교과 내용은 매일 2시간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프로젝트형 학습 체험이 학습과 탐구심을 증폭시켜 주는 아이의 성장 경험이 됩니다. 


아이의 초등교육에 있어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의 범주이지 '무엇'의 범주라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은 학교에서 제공되는 교과이고 

그것을 효율성 있게 내면화하는 것이 '어떻게'이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학교 학습의 내용은 그렇게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 '내용을 얼마나 아느냐?'에 집중하고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우리 아이가 내면화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초점을 두는 교육방법이

아이가 오래 그리고 잘 학습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불리면서도

별명이 있습니다. 바로 '학습의 시대', '배움의 시대'입니다. 

계속해서 학습하고 배움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상이 21세기 변혁의 시대에 온전히 적응하고 개척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입시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학습 자체에 대한 거부가 생기지 않도록

학습의 양과 방법을 적절히 아이에게 적합하게 조절하는 것이


"하루 2시간 이상 꾸준히 학습하는 태도를 기르면 우등생으로 성장할 수 있다."

라는 명제에 매달리는 것보다 상당히 현명한 교육의 방법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교육정보입니다. 

적용할 때 늘 부모인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적절한지에 대한 여부를 늘 판단해야 합니다. 


유초등 및 청소년 시기에게도 이렇게 학교 학습에만 매몰되기보다는 

책을 통해 간접 경험, 

할 수 있는 한 가능하다면 직접 경험의 범주를 늘려서 다양한 체험의 영역을 넓혀나갈 때,

'무엇'도 확장이 되면서 '어떻게'의 방법도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성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교육 또는 학원 학습 등을 통해 교과 학습을 할 때 

'학습하는 즐거움'을 배워야지 잃어버리게 하면 그것은 아이에게 해악을 끼치는 일입니다. 


잘하기에 매몰되어 아이를 부모가 지도하면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학습을 싫어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지금보다 더욱더 학습의 시대가 됩니다. 

지금 배운 것으로는 얼마 써먹지 못하고 사장되는 지식들이 많습니다. 

그때그때 배우고 익혀 기존의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통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성해내는 것에 익숙해지려면 

어릴 때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인간', 즉 '학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학습과 배움이 고통스러우면 삶이 그만큼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하루 2시간 이상 꾸준히 학습하는 태도를 기르면 우등생으로 성장할 수 있다'라는 문장에서 

그 의미 속에 있는 핵심을 잘못 해석하게 되면 정말 이 문장이 의도하는 바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멈추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학습에서 멀어지게 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 2시간 이상 꾸준히 학습하는 태도를 기르면 우등생으로 성장할 수 있다'라는 교육정보의 오류가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읽지 못한 '교육정보 해석의 오류'입니다. 


초등 학령기, 학습이 나아가야 할 바는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노는 게 공부를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공부를 하면서 그렇 싫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공부가 늘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하다 보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흥미를 가끔 느끼고, 수학 문제를 풀었을 때의 쾌감도 경험하고, 뭔가를 다해냈을 때 인정받는 것도 좋은 것이지요이런 상태를 보통 '공부가 즐겁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너무 학습을 노는 것처럼 즐기는 아이는 매우 드뭅니다.

이런 '싫지 않음', '때때로 흥미로움', 가끔의 성취에서 오는 쾌감, 성취 결과에 따른 주변의 인정 등이 바로 즐겁게 학습하는 것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학습에서 오는 '즐거움'은 놀이에서 느끼는 즐거움과는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그 경로가 다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즐겁게 학습을 한다고 해서 노는 것처럼 재미있게 공부하는 형상을 떠올리면 현실화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가끔 학습 주제가 놀이와 가까워서 노는 것처럼 공부할 수 있기는 합니다.  

선생님들은 수업을 주제에 따라 재미있게 구성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수업의 주제는 처음부터 아이들이 하겠다고 정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에서 그것들을 가르치도록 규정된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학교 공부는 태생적으로 싫어하기 딱 알맞습니다. 

공부하는 분야를 자신이 정해서 하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모든 학습활동, 특히 유초등 단계에서 모든 학습 내용과 방식을 아이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는 것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상식선에서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직장인이 일을 하면 월급을 받는데 일하기 싫어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원래 일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직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일은 회사에서 저절로 나옵니다. 

학교에 오면 공부가 저절로 나오듯. ^^ 

그래서 싫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싫은 업무 덕분에 먹고살듯 아이들도 덕분에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갑니다.


그런 싫은 공부를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원래부터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 어른들은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싫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스스로 창의성을 엄청나게 발휘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 정말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체 직장인을 생각하면 그래도 매우 소수입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학생은 매우 소수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학업성취도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기 싫은 마음보다
목표를 달성하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앨버트 E. 그레이)


하지만 일이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공부가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싫은 측면이 좀 더 강한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초등 시기에 공부에 대한 아이의 인식이 긍정적이기 어럽다면 최소한 부정적이지는 않아야 한다. 그래야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학습 과정에서의 소소한 즐거움을 우리 아이들이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아기부터, 또는 초등 저학년부터 학습지 형태의 문제풀이 공부로 강압적으로 일정량을 풀게 하는 부모들이 생각보다(정말 예상을 뛰어넘는다) 많~~~~~~~~~~습니다.

그렇게 하는 부모님들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잃는 것이 많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즐겁게'가 아닌 '잘하기'에 생각의 초점이 꽂혀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식은 결국은 '즐겁게' 뿐만 아니라 '잘하기'도 놓치는 결과를 낳게 되기 십상입니다.

아이가 학습을 싫어하면 평생 잃는 것이 너무 많아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즐겁게'를 놓치면 결국 '잘하기'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초등학생의 학습 방법을 다룬 책(정보)들의 핵심은 어떤 방법을 그대로 강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에서 제시한 방법을 학생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초등 시기의 학습법 책들의 핵심은
'잘하기'가 아닌 '즐겁게'에 있다.
그래야 오래 공부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이 시대에는 평생 학습의 시대라서
더욱 그렇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법 책이 안내하는 방법 자체에 매몰되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은 

각론을 실행하고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방법의 토대인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육정보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행하기


정리하면 

어쩌면 부모인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는 교육정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교육정보가 의도하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실천은 오히려 아이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정보를 해석할 때는 결과적 행동에 대해서만 반응할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내 아이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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