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미수(88세)에 혼자서 밥도 차려 드시고 손수 의복도 빨아서 다림질하여 입으시는 분이다. 엄마가 안 계시고 가족 중 제일 편한 나를 의지 하시다 보니 입원실에서 나를 전화로 하루 한 번 호출하신다. 아니 어제는 면도기였는데 오늘은 손톱깎이를 갖고 오란다. 갑갑하니 사람 구경 좀 하시려고 시간 좀 때우려고 그러심이 확 표시 난다.
기침이 많이 가라앉았는데도 일반병실이 아닌 독방에 계셔서 면회도 삼가 된다. 그럼에도 나를 호출하신다. 만만하고 편하시다니 해야지.
이런 날을 대비하여 우리 4형제도 여럿 형제가 친목모임처럼 만나고 회비를 걷듯이 우리도 그리하자고 제안했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쟁쟁하실 이순 때, 그래서 월 삼만 원씩 막내한테 내자고 건의했으나 나 혼자서만 1년 이상을 지키니 총무역이었던 막내가 파투를 선언했다. 아버지 병원비는 아직 손수 지불하시지만 병원 모시고 다니는 일이 예사롭진 않다. 나도 곧 이런 길을 택해지겠지만. 쯥 쯥 입맛 다심을 한다.
엄마집에 먼저 둘러서 손톱깎이랑 면도기 추가로 가져가야 하므로 간석동으로 발걸음했다.
십여년은 못 뵀던 생선 파는 아줌니가 나를 먼저 알은체하신다. 살이 두둑이 오른 이분은 심심해서 생선구루마를 놓을 수 없다신다. 추가로 남편이 50세도 못 채우고 교통사고로 젊은 나의 곁을 떠났다며 건강이 최고임을 일침해 주셨다. 엄마 동네서 만나는 이들은 내가 인사를 해야 한다. 먼저들 인사 하려고 하셔서 어떨 때 내가 이 자릴 놓치게 되면 대개 민망하다.
* 생선 좌판을 보니 내 엄니가 쥐고기를 전으로 바쁜 아침마다 잔뜩 부쳐주셔서 입 호강을 했는데 학교 파하고 오면 할머니가 동네 영감탱이 다 퍼주고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소쿠리 통째로 노상 비어 있었다 *
냥이 집사, 두부차, 아래 골목 학생엄마 등등 나를 알아보신다. 엄마가 안 계셔도.
그런데 인사를 하면 복이 들어오는 것 같다. 종일 기분이 널럴해진다. 이 생선 수레의 좌판처럼 생선들이 말라가도 자기 자리 지키듯이 나는 이들을 비켜나며 엄마 생각을 더 안아보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