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하는데 아버지가 얼른 오란다. 내가 젤 편하기에 병원 진료를 맡기신다. 엄마 때도 그러셨는데 내가 움직이면 딸내미 둘도 차례로 운전을 보태준다. 마차를 미리 마시고 출발했기에 시장기는 없었는데 반나절을 더 입원시켜 드린 병원에서 지체하게 됐다. 기침을 많이 하셔서 검사를 왔다갔다 미로같은 복도를 다녀야 했으며 첫 번째로 코로나 검사를 하러 외부 문으로 나가는데 환자복 입은 아버지 같으신 분이 “따님이네! 눈매가 닮았어. 딸이 맞아.” 얼핏 그러신다. 아마도 부러우셨나보다.
마스크를 했어도 눈매가 많이 비슷하니 도둑놈도 잡을 수 있다네.
맞는 말씀에 휘익 웃었지만 자식들이 다들 닮았다는 건 외모에서 보이는 것뿐이지. 안의 성질은 제각각이라. 오늘 병원도 내가 먼저 달려와서 접수를 잽싸게 하는 바람에 그나마 환자인 아버지도 덜 지치게 됐다.
나도 나이가 한 해 한 해 틀려서 엄마 봐 드릴 때랑은 버팅기는 힘이 다르다. 그래도 나를 의지하는 아버지를 나 몰라라 내칠 수 없잖은가.
애초에 엄마한테 좀 잘해드리지. 속에선 엄마 먼저 떠오르게 해도 맏이의 편함을 다 내드렸다.
지팡이 짚고 걸으실 수 있으시니 옆에서 간병을 안 해도 되어 진짜 다행이다.
엊그제 가져간 샤인머스켓을 막내는 아버지 혼자 6송이 다 드셨다 하고 아버진 막내가 다 먹었다고 이른다. 아 뭐야 누구 말이 맞냐고. 이럴 때는 중립이다.
더 사오라는 얘기,큰아이가한 박스 들고 왔다.
사무실로 직행하렸더니 두 딸내미가 통화를 주고받으면서 날 챙김해준다.
“엄마 이러다 병나면 고생해. 병원일 끝났으면 엄마 바로 집으로 가게 해야 해. 알겠지.”
정말 집으로 오길 잘했다. 입맛 없는 점심으로 돈가스 반을 남기고 집에 오니 오후 4시다.
많이들 겪어봤겠지만 병원에 가면 하루가 간 거고 보호자도 병이 생겨서 오게 될 지경이라고 힘들어한다.
난 너무나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고 맏이의 직분을 놓지 못하며내 손님들의 고인 속사정도 다 어루만져준다. 그래서 고정손님들이 늘기 시작했다. 내 사무실에 오시면 먹을 것도 싸 오시고 속상한 우울 얘기도 다 풀어낸다며 항상들 고맙다 하시고 집에 있어도 각각 전화를 원한다.
소개로 왔어도 비밀 절대 보장이며 다독임을 따뜻하게 내밀어준다. 그들에게 내 가족한테,43킬로 아버지와 똑같은 몸무게의 나는 큰 어른 같다. 다 보듬어주면 나도 좋다. 이겨낼 수 있도록 진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준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면 병원 치료 받아보라 또는 성경책 의지 삼아 종교를 가져 보라고 권해준다.
내 손이 약손인가보다. 내 마음에서 활성산소를 빼내게 해주는 전지가 있나 보다.
어깨를 내어주고 쉼이 될 수 있는 빈 의자인가 보다.
회사로 간 막내가 연락이 왔다.
센터장도 아버지가 아파서 입원 시켜드렸고 여직원 한 명은 시아버지 아파서 지방 내려간다며 다들 아버지들이 오늘 아픈 날이냐며 의아해했다.
아까 막냇동생 팔에 끼어있던 은팔찌는 내 예전 전화번호로 엄마가 차고 계셨던 것이다. 지가 손목에 걸고 다니는데 내 새 연락처로 번호만 다시 찍어 넣을 거라고한 수 떠서 말한다.
그래, 다들 내게 의지해. 괜찮아. 내 몸만 부서지지 않으면 다 받아줄 수 있어. 누구든지 간에 편하게 대해 줄 수 있어. 이젠 고되고 생계유지에 관한 힘든 일을 접었으니 난 시간이 잘 허락된다.
아까 코로나 검사하러 갈 때 만난 아저씨가 아버지를 부러운 눈으로 지그시 웃으며 바라봤듯이 난 되도록 어떤 상처든 아무는데 약손이 되어주고 보드라운 마음씀씀이를 내 줄 것이야. 오지랖이 닿는 그 경계선까지는 마음을 열어줄 수 있어.
나도 덩달아 건강을 찾아야 함을 숙지하며 긍정적으로의 마지막 삶을 살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관조하고 홀로 가는 길이 아름답게 비춰지길 큰 바램이다.
난! 긍정적으로 살아갈 거야!
도움을 주고 안아줄 거야!
그런데 문제는 살이 안 찐다는 것이지. 내게 살이 붙게끔 밝게, 꽃처럼 예쁜 마음을 더 많이 가지게끔 살이 올라서 신체적으로 덜 피로를 느끼게 하려고 노력 중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