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왜? 안 좋은 일만 일어날까?'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일주일 사이에 자동차 사고를 두 번을 겪었다. 불행히도 내가 다 가해자였다. 처음 사고는 주차장에서 벤츠를 긁었다. 피해자와 연락을 취하고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오는 동안 마음이 불안했다. '수리비는 얼마나 나올까?' 온통 이 생각이 날 휘어잡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두 번째 사고가 났다. 신호등에 서있는 뒤차를 내가 후진해서 충돌사고를 낸 것이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후진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20년간 안 하던 실수를 두 번이나.... 게다가 두 번째 차 역시 외제차였다. 불안의 끌어당김으로 인해 생각하지도 못한 실수를 만들어 냈다.
불안의 끌어당김은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무슨 걱정 있냐'며 물었다. 수리비 생각만 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멍청한 실수에 또 한 번 한숨이 나왔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내가 차키를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러 차문을 열었다. 느낌이 서늘했다.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작은 흰 알갱이들이 운전석이며 조수석, 뒷자리까지 온통 뒤덮였다. 소금이었다. 아내가 전날 불안한 나를 위해 내 차 안에 소금테러를 행했다. 나는 한동안 말없이 서있었다. 우선 출근을 해야 하니 손으로 운전석 소금을 대충 털어내고 앉잤다. 매장에 가는 내내 발이 거슬거렸다. 아내의 소금테러에 어처구니가 없어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날 저녁 나는 소금을 치우는데 4시간이 걸렸다.
옛말에 소금이 액운을 물리친다고 하지 않았는가? 불안의 끌어당김은 아내의 소금테러 덕분에 말끔히 지워졌다. 그 뒤 첫 번째 사고는 보험처리로, 두 번째 사고는 차주분이 괜찮다며 그냥 넘기셨다. 생각해 보면 첫 번째 사고나 두 번째 사고 다 사람은 다치치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불안의 끌어당김은 나를 수리비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사고를 낸 나에게 질책을 했던 못난이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끌어당김은 불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을 가다 때마침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 좋은 일이다. 버스나 지하철 또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탈 때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들을 그냥 요행이라 생각한다. 요행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라 끌어당김이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사소한 것이라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일을 끌어당길 수 있다.
며칠 전 일이다. 전원주택 여행을 하기 위해 잡은 숙소가 있었다. 급하게 잡은 터라 청결도를 중심으로 보았다. 그중 깔끔해 보이는 숙소로 예약을 했다. 다음날 우리 가족은 숙소에 도착했다. 1층 카페에서 호스트를 만나고 숙소 문을 열었다. 사진상으로는 넓어 보였는데 꽤나 작았다. 그리고 위에 복층은 가파른 계단과 천장이 낮아 서있을 수 없었다. 방은 몹시 추웠다. 1시간이 지나도 방의 온도는 13도였다.
나는 호스트에게 말했다.
'방이 너무 추워요' 그러자 호스트는 말했다.
'조금 있으면 따뜻할 거예요' 나는 호스트의 말에 화가 났다.
'1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13도예요'
투명스러운 나의 말에 호스트는 서둘러 온풍기를 틀었다.
'조금만 참으시면 찜질방처럼 뜨거워질 겁니다'
도착시간에 미리 보일러를 틀어 놓지 않은 주인의 마음에 나는 기분이 상했다. 무엇보다도 37만 원이나 되는 가격에 대한 가치에 불만이 가득하였다. 불만의 끌어당김이었다. 하나가 마음에 안 드니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다. 힐링하러 온 곳에 불만이 피워 올랐다.
'찜질방처럼 뜨거워질 겁니다.' 말은 정확히 5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불만의 끌어당김은 절정에 다 달랐다. 그대로 있다가는 여행은 불행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뜨거워진 방바닥에 누웠다. 몸속 구석구석 열기가 들어왔다. 노곤이 밀려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말 호스트의 말처럼 찜질방에 온 것 같았다. 옛날 구들장에 이불을 덮고 누워있던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나의 불만의 끌어당김은 돈의 가치였다. 만약 숙소가 10만 원이었더라면 그렇게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쓴 돈에 대한 가치에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불만의 끌어당김은 찜질방에 온 것 같은 만족에 사그라들었다. 그제야 창문 밖 풍경이 들어왔다. 계곡이 흐르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들과 산의 모습이 보였다. 밤이 되면 누워서 별까지 보일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니 더 이상 돈의 가치는 상관이 없었다.
열 가지가 싫어도 한 가지가 좋은 것을 느끼면 그 한 가지가 열 가지의 싫음을 상쇄시킨다. 나는 숙소에서 돈의 가치로 부정의 끌어당겼다. 모든 것을 나쁜 시야로 바라볼 때 찜질방 같은 방바닥이 나의 어릴 적 구들장에 누워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 후 좋은 시야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돈의 가치는 필요 없었다. 하나의 만족이 열 가지의 부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