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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Feb 17. 2023

블루스 브라더스

인생을 바꾼 영화

한국 개봉 전부터 무척 보고 싶은 영화였다.

단 한 장의 사진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검은 중절모, 검은 선글라스, 검은 넥타이에

검은 양복

흰 와이셔츠, 흰 양말

희망 따위 관심 없다는 심드렁한 표정

Blues Brothers!


드디어 그 영화가 개봉한단다.


서대문의 푸른 극장이었다. 재 개봉 극장이었는데 개봉관으로 승격했나?

당시는 개봉관, 재 개봉관, 동시 상영까지 하는

삼류 극장으로 나뉘었다.

기다리다 보면 한 편 값으로 두 편을 볼 수도 있었다.


푸른 극장은 후미진 극장이었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무슨 핑계로 극장을 갈 것이냐? 였다.

그냥 흔한 핑계.. 독서실 다녀오겠습니다.

영화에 별 관심 없는 동원이를 꼬셨다.

단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 때문에..

중학생이었던 나 혼자 서대문 뒷골목의 극장을

가는 건 지나친 모험이었다.

나보다 덩치가 작았던 동원이가 무슨 도움이

됐겠냐마는..


버스에서 내려 걷고 걸어 뒷골목의 극장을 찾았다.

매표소를 지나 1층에 들어서니 미국 경찰차가

멋있게 전시돼 있었다.

그때로서는 획기적 발상이었다.

자동차 앞에는 퀴즈 팻말이 있었다.

영화 속 부서진 차는 모두 몇 대일까요? 

정답을 맞히는

분에게는 상품을 증정하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차가 부서지길래 숫자를 맞추라지?

아무튼 동원이와 숫자를 세어 보기로 했다.


힘을 써야 할 정도로 두꺼운 암막 커튼을 밀어내고 극장에 진입했다.

일요일 첫 시간이라 극장 안은 한산하기만 했다.

나와 동원이는 지정된 좌석을 무시하고 아무 데나 편한 곳에 앉았다.


지루한 기다림이 끝나고 영화가 시작됐다.

첫 장면부터 나를 압도했다.

거대한 감옥의 문이 열리며 나타난 존 벨루시

그리고 록앤롤

바로 시작된 경찰차와 경찰차의 추격신이 이 영화의 기대감을 높였다.

그리고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한다.



영화의 내용은 고아원 출신 두 형제가 온갖 적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어려움에 처한 고아원을 돕는다는 이야기다.

유명인들의 카메오 출연을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 하고

역대 최고라 할 수 있는 자동차 추격신은 상상 이상이다.


신파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다.

대신 액션, 노래, 춤 그리고 철학이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외로운 사람들이 빠져 들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영화에 담겨있다.



잊지 못할 장면이 무척 많은 영화인데 그중,

주인공 존 벨루시가 교회에서 신의 계시를 받는

장면이 있다.

묘하게도 그 장면을 보던 나도 어떤 계시를 받았다.


영화를 해라!


그때 결심했다. 영화를 하겠다.

영화를 만들겠다.


안타깝게도 계시를 받은 그날 이후로

엄마의 기대와는 멀어져만 갔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가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동원아 한 번 더 보자!"


텅 빈 극장이라 화장실에 잠깐 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될 일이었다.

동원이는 거절했다. 이런 명작을 보고도 감흥이

없는 놈이었다.

그렇다고 물러 날 내가 아니다.

"너 먼저 가! 난 한 번 더 볼래."


멍청히 망설이는 감흥 없는 놈. 내 이럴 줄 알았지.

서대문 뒷골목을 어떻게 혼자 나서겠어..

그런데 그놈은 혼자 집으로 갔다.


나는 화장실에 몸을 잠시 숨겼다가 보는 눈 없는

3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입을 벌린 채 영화에 몰두했다. 단언컨대,

단 한순간도 영화에서 눈을 안 뗐다.

아니 뗄 수 없었다. 바로 다시 보는 영화인데도

음악과 액션이 새롭기만 했다.

부서져 나가는 자동차 숫자를 세는 건

잊은 지 오래였다.


영화는 또 끝나고 말았다. 아쉽기만 했다.

또 한 번 봐?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극장을 나서며,

영화를 만들겠다! 결심만 굳어졌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이었다.


그리고 40년이 흘렀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만

바람 앞 호롱불처럼 남아있다.

꿈? 객기? 호기? 정신병? 

여보세요! 지금 뭘 상상하시나요! 


그때 좀 더 자세한 계시를 받았다면 인생 낭비를

줄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영화를 보게 됐고

뉴욕에서 영화 공부를 하게 됐고

가정을 꾸리고 지금은 꿈꾸며 늙고 있다.

이 정도면 영화 한 편이 인생을 바꿨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들에게 영화는 골라봐야 한다는

교훈을 줬습니다.


영화 속 부서진 차의 개수는?.. 직접 세어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Blues Brothers (1980)

Director: John Landis

Cast: John Belushi, Dan Aykroyd, James Brown,

         Carrie Fisher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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