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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aveller Hoony Feb 07. 2021

Canada

dream

아이가 자라면서 서로 장래의 꿈에 대해 묻곤 한다. 아이의 꿈은 계속 변해왔고 또 변할 것이다. 지금은 마카롱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냥 그렇게 얘기한다. 마카롱이 맛있고 좋아서 마카롱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깜찍하게 표현한다.


아빠의 어렸을 적 꿈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솔직하게 나의 어렸을 적 꿈은 없었던 것 같다고 얘기한다. 생각이 안 나는 것도 있지만, 딱히 꿈이 없었던 게 맞는 거 같다.





언젠가 아이가 자기의 소원 중 하나가 오로라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래 캐나다에 놀러 가자고 제안했다. 옆에 있는 아내는 실소했다.


2002년 월드컵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을 때 나는 캐나다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학연수의 명목이었지만, 미지의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예상했지만, 영어 실력은 많이 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넓어졌고 그만큼 허파에 바람도 많이 들어갔다.


중학교 때부터 들어온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 덕분에 영어에 관심은 많았고 시험영어는 썩 잘하는 편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외국 사람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려고 노력했으니, 그때를 생각하니 어이없으면서도 내가 기특하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보니 나의 시골 수준 영어는 나의 성격과 하나 되어 퇴보하기 시작했다. 각지에서 상경한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내 수준 이상이었다.


외국인을 좀처럼 보기 힘든 시골에서 자란 나는 , 중2 때 소풍 간 대전 엑스포 꿈돌이 동산에서 외국인과 대화를 시도해 본 것이 생각난다.  하지만 한 마디를 말하기 위해 여러 번 머릿속에서 반복 연습을 해야 했다.

 what brought you to korea? 이게 나의 필살기였다.  

왜 한국에 왔어? 번역하자면 이런 말이다.  생판 처음 보는 어린놈이 이런 질문을 했으니 외국인들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사스케추원 주  사스카툰


토론토에 있는 작은 칼리지에서 영어 수업을 받았다. 남는 시간엔 여행을 다녔다. 세인트로렌스 강에 놓인 퀘벡 브리지를 건너며 본 바다는 너무 아름다워서 퀘벡에 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랍스터로 유명한 노바스코샤를 지나고, 페기스 코브의 등대를 보기 위해 밤새 운전한 기억들,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나이아가라 폭포, 캐나다 록키산맥에 가기 위해 들렀던 재스퍼와 밴프는 사진의 선명한 날짜만큼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캐나다 로키산 밴프 국립공원


그 후로 미국의 로키산과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처음 갔었던 캐나다의 시간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갈 생각이다. 그리고 아이 손의 온기를 느끼며 밤하늘의 오로라를 볼 것이다. 그때 나의 말에 웃었던 아내도 옆에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 장래의 꿈은 원하는 곳에 살면서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을 살고 싶다고...

자뭇 진지하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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