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너를 너무 아끼는 아빠의 사촌 동생이(그래서 원래는 '당숙 아재'가 맞는 호칭이지만, '작은 아빠'라 불렀지) 뇌출혈로 쓰러진 일이 있었다. 기억나지? 안타깝게도 혼자 사무실에 남아 외장건축 설계를 마무리하다가 일이 터졌고, 너무 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오른쪽 전체가 마비되고 말았다. 평소에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담배도 피우는 데다, 혈압도 높았던 것을 생각하면 시한폭탄이 터진 것과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 일이 있기 몇 달 전, 아빠랑 저녁을 먹으면서 괜찮은 보험 하나 소개해 달라고 했었는데, 그러고마 하고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대수롭지 않게 했던 얘기다 보니 내일, 내일, 내일 하면서 잊고 있었는데 일이 터진 것이었다. 다행히 보험은 그전에 하나 들어 둔 게 있어서 어느 정도 걱정을 덜긴 했다. 보험이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그 녀석도 몸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사건이 나기 전부터 자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그래서 아빠한테 보험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문제는 늘 '이 프로젝트만 마무리하면', '오늘까지만 하고', '오늘만'... 그러면서 건강검진을 자꾸자꾸 미뤘던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우리는 일을 핑계로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을 자주 미룬다. 어쩌면 미루기 위해서 바쁘다. 미루기 위해서 뭔가 일을 벌인다. 실제로 건강검진 했을 때 나올 결과가 무서울 나이가 되면 그렇다.
'라마 왕의 일대기'라는 뜻의 <라마야나(Ramayana)>는 BC 2세기경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대서사시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비견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북부 인도의 코사라 국의 수도 아요디야는 다사라타 왕의 치하에서 번영하였는데, 그에게는 세 왕비에게서 태어난 네 명의 왕자가 있었다. 그중 비슈누 신의 아바타로 알려진 라마 왕자는 활을 쏘는 재주가 뛰어났으며 비레하 나라의 시타 공주를 아내로 맞아 국민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다사라타 왕은 연로했기 때문에 왕위를 라마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이에 관해 류시화 씨의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에 다음 이야기가 실려있다.
왕은 즉시 현자를 초청해 조언을 구했다.
"라마의 즉위식을 거행하기에 어느 날이 길일이고, 어느 시간이 길시인지 알려주시오."
"왕위를 물려주는 것 같은 중요한 일에는 길일이 따로 없습니다. 바로 오늘 왕위를 물려주십시오. 라마 왕자가 왕관을 쓰는 그 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고, 그날이 바로 길일입니다."
"그대의 말이 옳소. 라마가 왕이 되는 날이 바로 길일이고 최고의 순간이라는 말에 나도 동의하오. 하지만 아요디아 왕의 즉위식답게 성대하게 치를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오. 즉위식에 이웃 나라의 왕들을 초청하는 것은 내 의무이기 때문이오."
"길일이란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않도록 '오늘이 바로 그 일을 하기에 길일'이라고 해 온 것입니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곧 라마 왕자의 즉위식을 거행하십시오."
"무슨 말인지 이해하오. 그렇다면 하루만 시간을 주시오. 내일 즉위식을 거행하겠소."
드디어 날이 새면 라마 왕자의 태자 즉위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날 밤 바라타 왕자의 어머니인 셋째 왕비는 시녀의 충동을 받아 왕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약속을 들면서 억지를 부리게 되었다. 라마를 14년 동안 숲에 추방하고, 바라타 왕자를 황태자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루 미룬 것이 결국은 14년 만에 라마가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라마야나>는 이를 기록한 이야기다.
'아비 나히 카비 나히' 즉,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라는 힌디어 속담이 있다. 늘 '오늘이 그 일을 하기에 좋은 길일'이라는 말은 새겨들을 이야기다. 아빠도 내일 또는 다음으로 미뤘다가 하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삶이 어떻게 계획한 대로, 또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겠는가. 내가 미뤘기 때문에 가지 못한 길들, 전하지 못했던 진심은 늘 안타깝다. 그게 내 운명이었다고 말하면 좀 위로가 될까? 별로 그렇지 않다.
아빠가 후회가 되는 순간들은 다사라타 왕이 왕위를 양도하려 했던 것처럼 뭔가 거창한 계획을 미뤘던 것이 아니다. 사실 아빠에게 그런 거창한 일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안 하길 잘한 일인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작은 일들을 늘 후회한다. 그냥, 할머니한테 자주 전화할 걸, 그때 그 친구에게 힘내라고 위로의 한마디 건넬 걸,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할 걸, 갑자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진 친구에게 생각만 하지 말고 연락했더라면, 멀리 사는 친척 어른들에게 최소한 명절에라도 사과 한 상자 보내드릴 걸... 그런 것들이다. 그런 작은 것들을 미루지 않았다면 사는 게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아비 나히 카비 나히.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하는 게 맞다. (딸, 숙제는 좀 그만 미루지?) 엄마 아빠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기에도 오늘이 그 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날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도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다. 어쩌면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기에도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거절할 생각이면 오늘 해라. 도대체 내일로 미뤄서 도움되는 일이란 게 있을까?
이 힌디어 속담을 이용해서 '오늘 사고 싶은 것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사겠는가' 생각하며 갖고 싶었던 옷을 오늘 질러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네 성격 상 그전에 수 없이 많이 고민할 것이라는 것을 아빠가 모르지는 않아.) 아빠가 이 글에서 의도하는 바와는 다르지만 '카르페디엠carpe diem'도 그렇게 자주 해석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작은 행복을 위해 내일을 희생하지 말라'고들 말하지만, 아빠도 이 주장이 지닌 폭력적인 현실복종 요구를 경계한다. 오늘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내일 행복할 수 있겠는가. 내일은 늘 불확실하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명심하자, '화살이 꽂힌 곳에 과녁을 그리면' 언제나 정확히 명중이다. 어떻게든 갖고 싶은 물질적 욕망이 화살처럼 마음에 꽂힌 상태에서 거기에 맞게 논리의 과녁을 그리며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인가'는 이야기 속의 현자가 말했듯이 중요한 일, 해야 할 일에 쓰도록 하렴. '오늘만 사는 것처럼' 또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아 보는 것도 필요는 하겠지만, 그 말을 오늘이 아니면 그 일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그래서 중요한 일, 마음을 전하는 일을 꼭 오늘 하기 위한 해석으로 받아들이길 희망해 본다.
우리 딸, 네가 서른이 되었다면 아마 늘 바쁠 것이다. 아빠는 그 시절에 자주 부모님께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연락하지 않는 죄책감을 일로써 만회하려고 했다. 마치 바쁘기라도 해야 덜 미안하다고 느꼈었다. 사실, 아무리 바빠도 짧은 1분의 통화면 족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당장 엄마한테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보렴.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단다. 그렇게 하고 살아도 많은 후회가 남는 인생인데, 더 큰 후회를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설날 너와 같이 병문안을 다녀온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코로나 19) 때문에 한동안 병원에 가보질 못했다. 어제 네 작은 아빠한테 전화를 했었다. 아직도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발음이 많이 좋아졌다. 오늘은 제수씨가 동영상을 보내왔는데, 그동안 열심히 재활한 결과, 드디어 지팡이를 짚기는 했지만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더구나. 정말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