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오후 3시, 11월 합동월례회 겸 단우총회 개최
서울흥사단이 지난 11월 19일, 11월 합동월례회 겸 단우총회를 열고 2023년 흥사단 운동을 이끌 신임 대표와 평의원, 감사를 선출했다.
서울흥사단은 전국 흥사단 조직의 서울지부로 지부장을 단우들이 직접 선출해 오고 있다. 평의원은 일종의 의회 기능을 가진 기구로 서울흥사단의 집행부와 양대 조직을 이루는 임원 기구다.
대표와 평의원으로 출마한 단우들이 각각 자신의 공약과 정견을 발표했다. 각 후보들은 단우들에게 자신의 공약을 밝히고 지지를 요청했다. 서울흥사단 이무언 선출은 전자 투표와 직접 투표가 병행됐다.
이번 단우총회에서 대표로 황평주씨가 선출됐다. 황평주(69)씨는 서울우유협동조합에서 32년간 근무해 오며 수십년간 서울흥사단의 단우로 활동해 왔다. 최근까지는 흥사단본부 공의원, 서울흥사단 예술문화분회장과 감사를 맡아왔다.
신임 서울흥사단 대표는 이후 부대표와 위원장단을 구성해 서울흥사단 단무를 맡는다.
이번 단우총회에는 흥사단 서울지역 단우 7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집행부 선출에 앞서 흥사단본부 공의원 당선증 수여식과 창립 109주년 기념 흥사단대회 포상자 시상 및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장 상 수여식이 각각 거행됐다. 흥사단대회 포상자로는 서울흥사단 단우들로 구성된 ‘좋은환경지킴이’가 선정됐다.
흥사단은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산 안창호 주도로 경기도 홍언(洪焉), 강원도 염만석(廉萬石), 충청도 조병옥(趙炳玉), 황해도 민찬호(閔燦鎬), 경상도 송종익(宋鍾翊), 평안도 강영소(姜永韶), 함경도 김종림(金宗林), 전라도 정원도(鄭源道) 등 8도 대표에 의하여 창립됐다.
창립 당시 교포 및 유학생을 중심으로 인격수양, 생활개선, 경제력 증진에 주력하다가 1919년 3·1운동으로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상해에 흥사단 원동위원부를 조직했다.
또한 서울에 수양동맹회(1922), 평양에 동우구락부(1923)를 결성하여 국내에서 일제치하의 합법적인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내의 두 단체는 수양동우회(1925)로 통합되었고, 그 뒤 동우회로 개칭하였다가 이른바 동우회사건(1937)으로 안창호를 비롯한 200여명의 회원이 검거, 투옥된 가운데 강제 해산 당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1946년에 국내위원부를 조직했고 1948년 8월 15일 본부를 국내로 이전했다. 당시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에 감명받은 청년들이 대거 흥사단에 입단해 활동했고 민족운동단체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이후 1991년 2월에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를 결성한 것을 기점으로 다양한 시민사회운동과 특히 교육청소년운동, 통일운동, 투명사회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