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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즘 언니 Oct 28. 2024

외할머니와 엄마의 맛대맛!

난 누군가에게 '그리움'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엄마의 엄마는 손맛이 좋은 편이다.

고로 내 엄마도 손맛이 아주 좋은 편이다.


맛의 고장 광주로 장가 온 우리 남편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광주 맛집이 어디야?"란다.


신랑은 기계처럼 대답이 자동반사로 튀어나온다.

"수완동 ㅇㅇ아파트 ㅇㅇㅇ동 ㅇㅇㅇ호, 거기가 찐 주민 맛집이야!"


물론 우리 엄마네 주소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신 친정부모님은

사위들이 올 때면 그들의 입맛을 고려하고,

전라도 전통 음식 레시피에,

제철 재료를 한데 그러모아 최고의 밥상을 준비하셨다.


하지만 손주들이 태어난 후부터 귀빈은 바뀌었다.

손주들이 방문하는 주간은 매번 명절보다 더 화려한 잔칫상이 차려지곤 한다.

귀빈들께서 꼽으신 외할머니표 최애메뉴인 LA갈비, 소고기 뭇국, 새우튀김, 김치찜까지!


잔치 같았던 외가 나들이를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 손주들은 당장 다음 끼니부터 피치 못하게

엄마 vs 외할머니의 맛대결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 집 저녁 메뉴 중 오늘 밤 대결을 펼칠 메뉴는 바로 소고기 뭇국이다.

아무래도 자주 하는 메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할머니의 손맛과 비교가 되나 보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오늘은 내가 너희 외할머니 뭇국 맛을 구현해 내리라’ 다짐해 보지만 음식 간을 보고 또 보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네, 넣는 재료도 똑같고 조리 순서도 같은 거 같구만 맛이 안 나네."


엄마가 보내 준 국간장과 천일염으로 간을 하니,

기본양념 바탕이 똑같은데 왜 그 맛이 안 날까?


물론 내 방식의 소고기 뭇국도 맛있다!!

한~ 냄비를 끓여놓으면 두 번, 세 번 고기 리필과 국물 리필을 외치며 흡입하는 가족들을 보면 

분명 그렇다.


국물 간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며 아들이 말한다.


"엄마 꺼도 맛있어~ 근데 할머니 국이랑 느낌이 달라."

"느낌? 어떻게 다른데?"


"엄마 뭇국이 따듯한 맛이라면,

외할머니 뭇국은 그리운 맛이야."


찡... 그래, 그래.

나도 엄마의 뭇국이 그리운 날이 많았어.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고 우울했던 날,

수험생활 하면서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 초라했던 날,

회사에서 왕창 깨지고 바보 같은 내 모습에 어깨가 처졌던 날,

서툰 육아에 빵으로 끼니를 때우다 속이 쓰렸던 날,

손이 오그라들게 너무 추워서 콧물 훌쩍이며 현관문을 열었던 그 날.


그 모든 날에 엄마가 정성과 시간을 들여 뜨끈하게 끓여 준 뭇국이 그리웠어.


엄마는 겨울 무가 맛있다며, 모아두셨다. 

가을 도토리를 모아 겨우내 꺼내먹는 다람쥐처럼 겨울 무를 신문지에 돌돌 말아 김치냉장고에 저장해두곤 했었다. 가을 무와 겨울 무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구분할 방도가 없었지만, 엄마가 신문지를 헤치고 꺼낸 무를 나박나박 썰기 시작하면 나는 벌써 설레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뭇국을 끓여주고 싶었던 엄마는 옆동네 정육점까지 치마양지를 구해오셨고,

직접 농사지어 짠 참기름에 고기를 달달 볶아 국물이 잘 우러나도록 정성을 들이셨다.


엄마표 국간장, 

시간의 힘으로 간수를 빼내 쓴맛 쏘~옥 빠진 천일염, 

그 자리에서 바로 다지는 생마늘의 향까지

모두 엄마의 소고기 뭇국을 완성시키는 주인공들이다.


침샘이 아릿아릿하게 자극이 되는 걸 보니 국이 다 끓여졌나 보다.

잘게 썬 파를 향긋하게 고명으로 얹어

후춧가루를 무심하게 톡톡 뿌리고는 내 앞으로 밀어주던 엄마의 손길과,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삼키기도 전에 콧소리 가득한 감탄을 내뱉는 나를 보며 '으이그~' 하고 웃어주던 엄마의 눈길이 그립고 또 그립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음식으로 날 그리워하게 될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엔 물어본다.

닭곰탕, 엄마표 파스타, 김밥, 소고기 뭇국이란다.


유후~ 소고기 뭇국이 들어갔잖아?!!

지금 너희가 느끼는 그 '따뜻한 맛'이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면 '그리운 맛'이 될 거라 생각하니, 

오늘 끓여내는 소고기 뭇국의 마지막 레시피는 아무래도 사랑을 가득 담은 엄마표 뽀뽀 공격이 될 것 같다.


오늘은 내 그리움을 뒷배 삼아 엄마에게 오랜만에 사랑 가득 애교 가득 막내딸로 분해 전화드려야겠다.

”엄마~ 나 소고기 뭇국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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