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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Sep 03. 2020

주목받지 않아도 괜찮아요 근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들꽃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인간

         

40대에 들어서자마자 직장을 관두었다.


처음엔,

버릴까 말까 하던 물건들을  다 내다 버린 느낌이었다

넓고 안락해진 거실에 앉아 '이런 게 미니멀리즘이지'하며 흐뭇해했다.


다음엔,

그 내다 버린 물건들이 자꾸 생각났다.

'그 검은 정장은 조문 갈 때 입게 놔둘걸 그랬나?  그 가방이 얼마 짜린데 갖다 버린 거지? '

'다시 가져올까? 아이 어떻게 재활용품을 다시 뒤져?'


그다음엔.

버린 물건들을 다시 사기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든다는 걸 깨달았다.

후회도 했다가 애써 후회를 외면도 했다가 넓어진 거실을 만끽도 했다.

아무래도 버린 옷과 가방을 다시 사기엔 부담스러웠다.






그즈음 친정 가족 모임에 가면 언니도, 오빠도, 올케언니도, 형부도 다들 한창 잘 나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번에 승진했다며? 축하해."

"이번에 다른 대학으로 옮긴 것 축하해."

다들 돌아가며 축하 안부를 전하다가 나를 보고는

"00 이는 여전히 공부 잘하지?"하고 예의상 초점을 빗나가 주곤 했다.

갑자기  화제의 중심이 된 아이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모임을 마치고 나면

뜬금없게도 초등학교 교실에  앉아있는 내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줄 맞춰 서있는 입학식.

다들 이름표를 받아 든다.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서로 쳐다본다.

친구가 내 이름표를 보고 내 이름을 외워주길 바란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름표를 보지 않고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를 보면 안심이 되면

그 친구 이름은 더 잘 외우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상상 속 초등학교 교실에 갑자기 불이 꺼진다.

난 교실에 들어왔는데 교탁 앞에 내 이름표만 없다.

내 가슴에만 이름표가 안 붙어 있으니까 아이들은 나를 보고 못 본 척 지나친다.


내 이름 석자 000이 아닌.

"000애서 000을 하는 000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인 소속의 이름표가 없어진 느낌.

아무리 내 일상을 잘 가꿔나가도 그 느낌을 쉽게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 텅 빈 느낌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 고민은 어디 내놓기 하찮고 설득력이 없었다.

직장으로 인한 소속감은 없지만 난 남편과 두 아이가 있었고,

누가 뭐래도 그 이름표를 자발적으로 가슴에서 떼어낸 건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얼마나 우스운가.

고민이 하찮아 부끄럽다니.

누가 들으면 얼마나 재수 없을 일인가(달리 다른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그야말로 복에 겨운 이야기라고 할 게 뻔했다.

타인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만한 고민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은

괴로운 데다 외롭기까지 하다




가을이 시작되는 어느 날 오후, 무기력하게 있다가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서 동네 뒷산에 올랐다.

나지막한 길이라 부담이 없어서 가끔 들르곤 했다.


어딘가에도 털어놓을 수 없어

안으로 깊숙이 어둑해지던 날,


산골짜기에 수줍게 피어있는 들꽃을 만났다.

들꽃의 줄기는 여리다.

주변의 풀인지, 잡초인지, 들꽃 줄기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잡초 사이에 자신의 줄기가 묻혀 있는지도 몰랐던 들꽃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여기 나도 있었어.'


코가 시큰해져서 들꽃에게 말했다.

'거기에 네가 있는 것을 몰랐어. 미안해.'


그런데 들꽃은 개의치 않았다.

처음부터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피어있었다.

들꽃은  '나'가 아닌 '우리'로 산골짜기의 '일부'인 채, 버무려져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만으로 똘똘 뭉쳐있어서

갑갑했던 난,


산과 하나가 된 들꽃을 보고 나서

'이름을 몰라줘서 미안해'

'이름이 뭐니?' 물었다.


내 손은 휴대전화에 꽃 이름 검색을 치려고 했다.

그날따라 산속이라 그런지 휴대전화 인터넷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그때 들려왔다.

'내 이름 몰라도 돼, 네가 날 보고 받는 느낌이 바로 내 이름이야'


이름을 몰라도 돼.......

이름을 몰라도 돼.

이름표를 안 달아도 돼........

이름표를 안 달아도 돼.


나의 괴로움은  이름표로 '나'를 드러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름표가 나를 나타낼 수는 없는데 말이다.


마음속이 너무 나로 가득 차 있어서 버거울수록 허전했던 날.

들꽃은 내게 다가와 말해줬다.

"나는 그냥 이대로도 행복해"라고.


내가 들꽃을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 부끄러웠다.

들꽃은 굳이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충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들꽃은

장미처럼 가시를 돋아(장미야 만날 널 걸고넘어져 미안하다. 딱히 너한테 나쁜 감정은 없는데 왜 이러는지ㅜ)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의 경계를 허물고 살아간다.


장미의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꽃잎이 아프면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아 서글프다.

들꽃의 시들어가는 모습은 왠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꽃잎이 타들어가지도 않고 한 잎 한 잎 떨어져 조용히 사라진다.


들꽃은 꽃망울도 작아 화려하지 않다.

무대 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깝다.

아니 어찌 보면 무대 배경에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제자리에서 행복해한다


들꽃은 '보이는 나'를 내려놓고

세상을 '보는 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나'를 바람, 나무, 돌과 같이 '우리'로 버무리며

들판을, 바위를, 하늘을 보며 행복해한다.


어쩌면 20,30대가 주목받던 장미꽃 시대였다면,

50대인 지금 나의 위치는 저 들꽃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관객으로,

자리 이동하는 과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쉰 살을 넘은 나이,

이제는 들꽃이 되어 나무와 바위와 들판과 함께 바람을 맞고 싶다.




<'보이는 나'에서 '보는 나'로의 전환, '주연에서 조연으로의 전환'은

'쉰 즈음에 <2020.6.23 발행>'라는

제 에세이에도 나왔던

제 표현입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미지 출처:pixabay> <사진 속 들꽃 이름은 벌개미취>

 

이 글은 21.3월에 출간된 책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에 일부 수정돼 실려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게 창문을 열어주세요> 출간 이야기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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