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마철 여름휴가는 다소 갑자기 계획되었다. 신랑이 이직을 하게 되어 남은 연차를 소진해야 했는데 내가 7월 말부터 학원으로 출근을 하기로 하여 휴가를 갈 수 있는 날이 딱 집중호우가 예보된 기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행을 한다고 하면 설레고, 이것 저것 하고 싶고, 먹고 싶고, 다니고 싶고, 보고 싶지만 장맛비를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는 상황, 사고만 안 나면 다행으로 여기기로 하고, 숙소에서 하루 종일 있게 되어도 쉼으로 삼자고, 실내에 있는 시설로 구경을 다녀도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면, 또 일정을 조금 더 미룰 수 있었다면 해외여행도 생각했을 것이다. 신랑의 열흘이 넘는 휴가는 흔치 않은 일이니, 그런데 나의 출근과 겹치니 해외여행을 준비해서 다녀올 시간까지는 되지 않아서 국내여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남도 여행, 신혼 때에 한 번 가본 부산을 시작으로 근처 도시들을 돌자고 큰 틀만 짰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일정을 짜며 조율했다.
부산은 돌아가신 친정아빠의 고향이다. 아빠는 이런저런 가정사가 얽혀 몇십 년 동안 부산에 못 가보셨다. 그런 부산에 가게 되니, 나의 무의식은 항상 아빠를 떠올렸나 보다. 여행지에서 꿈에 두 번이나 아빠를 만났다. 젊고 건강한, 옛날 모습의 아빠를 만나 옛날에 같이 살았던 동네를 산책하는 꿈을 두 번이나 꾼 것이다. 문득 여행을 아빠가 같이 다녀 주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장맛비가 대차게 쏟아지는 이 계절, 우리 가족은 요리조리 비를 쏙쏙 피해 다녔다. 부산에서 2박 3일을 묶을 때에는 중부 지방에 비가 집중되어 부산에서는 보슬비 수준으로 관광 여행을 하는데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우리가 부산을 떠나자 부산 전역에 호우 경보가 내렸고 창원에 비가 쏟아지던 날은 선배 언니네 집에 방문하기로 되어있어 안전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산쪽을 여행할 때는 34도까지 치솟는 더위에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놀았는데 그곳과 30분 떨어진 선배 언니의 동네 쪽은 또 호우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바다에서 다 놀고 여수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비가 쏟아지더니 여수에 도착하자 차츰 개었고, 덕분에 배를 타고 섬 마을 구경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에도 여수에 머무를 때까지는 보슬비 수준이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집중 호우를 만났다.
아빠가 같이 다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마음속으로 아빠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고맙다고도 했고, 보고 싶다고도 했고, 옛날 부산의 모습은 어땠냐고 묻기도 했다. 대부분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냥 아빠가 같이 있다고 느껴지기만 할 뿐. 마지막 날, 집에 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집중 호우를 만나 아빠에게 말했다. 아니, 끝까지 좀 지켜주지 고속도로에서 비가 이렇게 오니 너무 무섭잖아. 하니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정도는 참아야지, 전국이 난리가 났는데 이 정도 비를 가지고 불평을 하냐 요 날강도 같은 년아, 하는 아빠의 음성 말이다. 맞다. 생전의 아빠는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마음으로 들은 그 음성도 분명 아빠의 소리가 맞을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되었는데도 아빠의 부재는 크다. 평소에도 상중에 그랬듯 울지는 않지만 가끔씩 몰려오는 그리움은 상중에 흘렸던 눈물의 양 못지않게 크다. 이번 여행은 갑자기 계획하는 바람에 준비가 조금 미흡했는데 아빠가 빈자리를, 빈 틈을 다 메워주신 느낌이다.
아빠와의 헤어짐은 아직도 어떨 땐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슬프기도 하며, 그리움이 크게 밀려오기도 하지만, 하늘나라에 이렇게 무조건 적인 내 편이 한 분 계시다는 게 이젠 조금 든든하기도 하다. 이번 여행도, 전국이 집중 호우로 시름을 앓았던 기간에 안전하게 재미있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빠의 보호라고 나는 믿는다.
엿새간의 여행을 무사히 보내고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아이들은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갔다. 그간 비가 그렇게 왔는데 오늘은 폭염특보이다. 이것도 직사광선 받으며 돌아다니면 딸내미 지쳐 쓰러질까 봐 아빠가 빽을 써준 것일까.
놀러 다니는 중간중간 뉴스를 볼 때마다 폭우 피해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이 죄송스러울 정도였다. 이번 비로 큰 피해를 입으신 분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