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남병철과 조두순
2016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대결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미 오래전에 인공지능은 모든 고전 게임에서 인간을 정복했다. 1997년 IBM의 ‘딥블루’가 체스 세계챔피언을 꺾었고, 슈퍼컴퓨터 ‘왓슨’은 2011년 미국의 TV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인공지능 ‘알파고’가 유럽바둑 챔피언 판후이 2단을 5:0으로 완승한 후 세계 최강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애초부터 이 대결은 갑옷도 입지 않은 이세돌에게 1202마리의 맹수(컴퓨터)가 달려드는 격의 불공정한 대결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돌은 값진 1승을 따내며 인류의 대표로서 자존심을 지켜냈다.
요즘 사람들이 게임이나 스포츠를 좋아하듯이 옛사람들은 바둑을 좋아했다. 《고려사》 악지樂誌에는 송나라 상인 하두강에게 속은 고려 상인이 내기 바둑으로 아내를 잃을 뻔했다는 설화가 실려 있을 정도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근무시간에 바둑을 두었다가 쫓겨난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조선의 바둑 고수 김종귀와 정운창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김종귀는 땀이 흘러 이마를 적셨지만 정운창을 당해낼 수 없었다. 내리 세 판을 지자 김종귀는 뒷간에 가려고 일어서며 정운창에게 따라오라고 눈짓을 했다. 한참 있다 들어와 둘이 바둑을 두는데 정운창이 가끔 실수를 했다. 김종귀가 봐달라고 빌었기 때문이다." 《정운창전》중에서
또한 바둑 실력이 국수급이었다고 전해지는 서애 유성룡은 선조 임금과 명나라 이여송이 역사적 대국을 벌일 때, 임금의 햇빛 가리개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햇살을 비춰 훈수를 하는 것으로 교묘하게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다.
조선 후기의 과학자 남병철(1817∼1863)은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바둑을 보는 나름의 관점을 고진풍 국수에게 써서 주었다.
바둑은 작은 기예에 불과하지만 그 기술은 대단히 깊고 섬세하다. 천하의 고요한 사람이 아니면 심오한 경지에 이룰 수 없다....기술은 재주에서 나오고 품격은 성정에서 나온다. 규모가 큰 사람은 자잘한 기술을 놓치기 쉽고, 잔재주가 번득이는 사람은 대세에 어두운 경우가 많다....바둑을 두는 당사자는 헤매지 않는 이가 드물어 길을 가까이에 두고도 멀리서 찾는다. 바둑판 밖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저들이 바둑돌을 쥔 자보다 다들 실력이 좋아서 그럴까? 그들의 가슴 속에는 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수를 보면 바로 깨닫는다.
이러한 남병철의 '바둑 이야기'에 영의정과 대제학을 지낸 경력이 있는 조두순은 다음과 같이 반론을 펼친다.
남병철 학사의 글 가운데 '오직 천하에 지극히 고요한 사람만이 바둑을 잘 둘 수 있다.'라는 말이 들어 있다. 학사처럼 바둑을 잘 아는 이가 담장을 더듬고 촛불을 문지르는 식으로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고요함의 묘를 구경꾼에게만 돌렸다. 그렇다면 바둑을 직접 두는 당사자가 모두 제2수第二手가 된다는 말인데, 단지 한발 앞서기를 다투느라 구경꾼보다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덧붙여서 조두순은 '문장은 천고의 일이지만 득실은 내 마음이 안다.'라는 두보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문장의 진정한 평가는 독자나 비평가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대국하는 당사자와 훈수꾼 중에서 누가 더 바둑의 묘를 잘 아는가를 두고 토론한 것이 학문과 덕성에 대한 논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바둑을 오래 두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입증되었다. 2014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팀이 ‘바둑을 두면 집중력과 기억력, 시공간 감각 등을 담당하는 뇌의 오른쪽 전두엽 부위가 일반인보다 훨씬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을 끝낸 후 이세돌 9단은 기자회견에서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심리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는 것이 난제’라고 말했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에게는 없는 뜨거운 심장이 있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종종 기적을 만들어 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