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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Nov 25. 2021

정신의 나무

1일 1드로잉, 김우창

#131일차

*2021.11.24. 10분 글쓰기*

우리 동네, 내 나무(드로잉하고 글쓰기)


전면등교 이후 곳곳의 학교들이 정신없이 바쁘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확진자와 같은 시간에 머물러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었다고 지역아동센터나 학원의 연락을 받고 학부모에게 전화가 오는 것이다. 호출된 아이들은 불안감이 가득한 얼굴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간다. 뒤숭숭한 얼굴의 아이들을 다독여 보내고 돌아서니 교실에 남은 아이들의 얼굴도 말이 아니다. 지금 마음이 어떤지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추슬러보고 한껏 명랑한 톤으로 수업을 이끌었지만 뭔가 한 움큼 빠져나간 허전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어느 반에 확진자가 생기면 그 반은 모두 귀가 조치되고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다. 그 반에 수업을 들어간 선생님들도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해서 다른 반 수업 일정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이런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밀접접촉자의 접촉자, 자가격리 통보자의 동거가족, 능동 감시자 기타 등등 학교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며 등교중지 기간을 정해서 통보해야 했다. 보건소는 역학조사 건수가 폭발하고 있어서 음성결과받고 등교한 아이가 뒤늦게 자가격리 통보 문자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몇 분의 몇 이하 등교, 전면 등교, 말만 던지면 나머지는 현장에서 알아서 수습해야 하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안정적으로 따지면 차라리 원격수업과 등교를 병행하던 때가 좋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밀접 접촉자의 접촉자처럼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존경하는 분을 만나러 삼청동에 갔다. 김우창 교수님이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대단한 석학임을 나는 몰랐다. 지식인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어 괴어 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분이므로 사상가들의 나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것이다.


구경하러만 가봤던 삼청동 꼭대기에는 좁은 골목길과 단독 주택들이 즐비했다. 비좁은 주택가 사이에 목적지인 영화 시월이 있었다. 그곳에서 영화 촬영 겸 김우창 전집 읽기 독서모임의 오픈 세미나 형식의 모임이 이뤄졌다. 김우창 교수님의 다큐를 17년째 찍고 있다는 대표님도 만났다. 대중적 성공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 영화를, 그것도 17년간 한 사람만 파고드는 집념에 그 자체로 경탄했다.


오직 김우창 교수님을 매개로 나처럼 존경하는 분이 존경해서 온 사람, 그분을 만나고 싶어 온 사람, 기존 독서 모임 멤버, 촬영 스태프 등 낯사람들이 한 공간에 얽혀 묘한 분위기였다. 스태프들이 바빠지며 주변이 웅성대기 시작했고 그 틈에 김우창 교수님이 등장했다. 책으로 읽을 때는 어려웠는데 강의로 들으니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갈색 바바리코트를 입은 80대 백발노인이 나직한 목소리로 BTS, 푸코와 자기 돌봄 등을 언급했다. 강의 내용을 기록해서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경청하면서 그 순간에 존재하려고 노력했다. 앉을자리가 부족해 내내 서서 들었지만 삼청동 꼭대기까지 찾아간 보람이 있어 스스로 만족했다.  


내가 80대가 되어서 내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고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김우창 교수님은 처음부터 대단했을까? 지식의 최전선에서 물러나도 이토록 많은 사람이 흠모하며 찾는다는 것은 자신이 쓴 책과 분리되지 않은 삶의 행보를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사 대표처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분야에서 17년 동안 한 길만 걸어가는 사람의 열정과 꾸준함으로 매일 살다 보면 언젠가 거대한 산을 이룰 수 있을까? 산이 아니라 동네의 나무만 되어도 좋겠다.


김우창 교수님은 최신작도 많이 읽고 하루에 1권씩 책을 읽어낸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정신의 근력이 창창한 젊은 이보다 탄탄했다. 닮고 싶은 노년의 모습을 눈에 담고 돌아오는 길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춥지 않았다. 늙어 허물어지며 과거만 붙잡고 현재를 부인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타인과 비교하며 신세 한탄하는 어리석음, 꿈만 꾸면 어느 날 이루어져 있을 거라는 게으른 낭만을 피우지 않겠다. 시작은 미약한 풀이지만 끝에는 무성한 가지를 뻗어 다양한 생물의 삶터와 쉼터가 될 수 있는 나무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지금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매진한다면.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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