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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Dec 15. 2021

쓰레기 선물

1일 1드로잉, 씨앗

#151일차

*2021.12.14. 10분 글쓰기*

작은 것이 아름답다.


올해 학교와 아이들은 생태전환교육 활동이 많았다. 전교 어린이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안내하면서 줍깅(쓰레기 줍기+걷거나 뛰는 조깅의 조어)을 알려주었다. 늘 그렇듯 모르는 단어 뜻을 알려준 거라 잊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뒤 혼자 교실로 돌아왔는데 책상에 선물이 있었다. 선물은 쓰레기였다. 급식실 가서 점심 먹고 교실로 올라오기 전에 줍깅을 했다며 선생님 책상에 자랑스럽게 올려놓고 간 것이다. 청정구역인 줄 알았던 우리 학교에 소주병이 어디서 난 건지.. 학교 담 너머로 주민이 던진 것을 주워왔나 보다. 교실에서 맡을 수 없는 소주 냄새가 옅게 배어 나와서 색달랐다. 원래는 쓰레기가 더 많았는데 치우면서 하도 웃겨서 사진으로 남겼다. 어두운 교실에 형광등을 켜고 돌아서니 칠판에 이름까지 남겼다.


주인에게 선물로 쥐를 물어다 놓는 고양이처럼 쓰레기를 가져다 놓은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오늘도 바쁜 학년말 업무로 밤 10시까지 일하다 퇴근했다. 공문처리나 소모적인 전시 행정은 힘들어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수업시간은 행복하다. 아이들은 태양에너지처럼 짱짱한 힘을 준다.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해주어도 깔깔대며 웃고 지나가며 한 이야기를 간직해두었다가 고맙다는 말과 함께 돌려준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주어 자리에 집어넣을 것으로 제일 먼저 "아이들"이 떠올랐다. 초임교사 때는 아이들이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다. 선배 선생님들이 아직 모를 때라고 아이들 예쁜 거 아는 나이가 올 거라고 선인처럼 말할 때는 흘려 들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야만 보이고 들리는 경지가 있는 걸까? 나는 저절로 그런 눈과 귀를 획득한 것 같아서 아이들의 사랑이 과분하다.


돌멩이가 싹이 트는 씨앗이 되려면 제 껍질을 스스로 벗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나를 위해 만인의 따스한 힘이 닿아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눈과 귀가 생기면 돌멩이는 씨앗이 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자랄 수 있다.


1년짜리 시한부 사랑을 하는 게 담임선생님이라는 자조섞인 말이 있다. 어떤 교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잊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한때 열렬한 사이였던 우리는 서로 뒷모습을 남기며 가야 할 길로 떠나야 한다. 교실에서 주인공으로 살았던 좋은 기억만 성장의 밑거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잊히고 싶다고 먼저 말하면 잊히는 서운함을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선수 치는 소리였다. 더 많이 마음을 여는 쪽이 상처 받는다고 믿으며 혼자 남는 사랑을 하기 싫었다.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를 적당한 마음을 계산하는 사이 문은 점점 닫혀갔다.   


아이들은 단단하게 빗장을 걸어 잠근 선생님의 마음을 열어 나의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내고 나를 변화시켜 살아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수업시간에 우리끼리 통하는 유머의 흐름으로 다 같이 눈물 날 정도로 웃을 때 우리가 함께 따뜻하고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날 때까지 굳은 껍데기를 깎아준 우리 반이었던 많은 아이들이 생각난다. 지나간 아이들 모두 나의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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