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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Apr 27. 2017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박라연


박라연의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흩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새벽녘 우리 낮은 창문가엔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거나 별 두서넛이 다투어 빛나고 있었다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어도 좋았을 우리의 사랑방에서 꽃씨 봉지랑 청색 도포랑 한 땀 한 땀 땀흘려 깁고 있지만 우리 사랑 살아서 앞마당 대추나무에 뜨겁게 열리지만 장안의 앉은뱅이 저울은 꿈쩍도 않는다 오직 혼수며 가문이며 비단 금침만 뒤우뚱거릴 뿐 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서울의 산 일번지에 떠도는 옛날 이야기 그대 사랑할 온달이 없으므로 더 더욱


-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1990)





이 시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시다.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쓴 신혼일기. 실제로도 시인이 자신의 신혼을 떠올리며 쓴 시다. 12월 매서운 동짓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한켠에 환한 꽃물이 드는 것만 같다. 그때의 사랑, 그때의 젊음, 그 어여쁜 날들. 그날들은 치자꽃을 닮았다.


당신은 치자꽃을 본 적이 있는지. 치자꽃은 초여름에 피어나는 새하얀 순백의 꽃이다. 치자꽃에는 홑꽃과 겹꽃이 있는데 홑꽃은 싱그러우면서도 청초한 분위기를 지녔고, 겹꽃은 겹겹의 희고 보드라운 꽃잎을 가졌다. 특히 흰 장미처럼 아름다운 겹꽃의 치자꽃은 ‘꽃치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게다가 치자꽃은 유난히 향이 짙고 강해 지금까지도 샤넬을 비롯해 끊임없이 향수로 만들어지고 있다. ‘가드니아’라는 이름의 향수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그게 바로 치자꽃으로 만든 향기다.

치자꽃의 전설 역시 낭만적이다. 전설에 의하면 유달리 순백과 순결을 사랑하던 ‘가데니아’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천사에게 꽃씨를 선물 받은 후 새하얀 꽃들을 정성껏 피워낸다. 그리고 소녀는 항상 꿈꿔오던 순결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는 바로 그녀에게 꽃씨를 선물해준 천사였다. 소녀를 위해 천사에서 아름답고 늠름한 청년으로 변한 연인과 결혼하여 두 사람은 오래토록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렇듯 전설마저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향기를 지닌 치자꽃의 꽃말은 ‘한없는 즐거움’ 그리고 ‘순결’과 ‘행복’.


치자꽃만큼 막 사랑의 서약을 마친 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꽃이 또 있을까. 산동네에 신방을 차린 시인과 동갑내기 남편은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예로부터 3경 3보향으로 유명한 전남 보성. 산, 호수, 바다의 경치가 유달리 뛰어나고 의향(義鄕), 예향(藝鄕), 다향(茶鄕)으로 불리는 곳.

그래서 일까, 몸이 약해 주로 집안에서 지냈던 그녀는 시인 지망생이었던 큰오빠의 방에 있던 수많은 문예지를 읽으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남편 역시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예술가였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다 한 동안 서로 떨어져 각자의 삶을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을 싹틔운다. 그이의 남편은 가난했고, 앞으로도 험난한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지향했지만, 박라연 시인은 그저 쌀과 연탄만 안 떨어지면 족하다 라고 생각했단다. 그런 시인의 소박하고 부드러운 마음에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때 두 사람의 나이는 스물일곱, 지금 생각해보면 젊음과 동시에 세상에 대한 기록쯤은 여러 개의 지층으로 쌓여있을 그런 나이. 아니, 어쩌면 주로 집안에서 지냈을 그녀는 조금은 더 소녀다웠을지 모른다. 문인을 한번만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시절도 있었다는 시인은 등단 후 문인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았다.”라고 회고하게 된다. 어쨌거나, 그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여전히 여리고 가냘픈 체구의 스물일곱이었던 박라연 시인은 남편을 따라 작은 산동네에 신혼집을 얻는다. 그리고 결혼한 그해 1977년도에 남편은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남편이 83년도에 원광대 무용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두 사람의 삶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77년에 국립발레단에 입단해서 받은 월급은 4만 7천원. 그 당시 쌀 20kg가 6,500원. 전화기가 1만 7천 원대였던 걸 생각하면 두 사람의 넉넉하지 않는 신혼살림이 눈앞에 훤히 그려진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꽃씨를 모으는 흰 봉투]를 꿰매는 일을 통해 적은 돈이나마 보태야 했을 만큼 없는 살림이지만, 그래서 [더욱 따뜻한 아랫목]을 가졌다. 때때로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그녀는 [이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게 물든 한 그루 대추나무]이며 [밤마다 서로의 허물을 해진 사랑을 꿰맨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하고 환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꿰매었던 것은 가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서로의 허물을’ 덮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랑이었다.


……가끔……전기가……나가도……좋았다……우리는……


이 구절에 와서는 무엇을 덧붙이겠는가. 이따금 전기가 나갈 만큼 가난한 신혼이었지만, 그마저도 온달처럼 듬직하고 우직한 내 사랑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행복하고도 낭만적인 사랑의 힘이란. 사랑하는 이들의 달디단 꽃잠이란.


우리들의 신방은 비록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을 만큼 시린 [새벽녘]의 산동네 [낮은 창문가]지만, 그곳은 여전히 [별 두서넛이] [빛나고] 있는 곳.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어도 좋았을 우리의 사랑방에서] 여전히 우리의 사랑을 사랑하는 연인들은 서로를 위해 서로의 허물과 아픔과 상처들을 [한 땀 한 땀 땀흘려 깁고] 있다. 사랑이란 그렇게 서로를 위하는 것, 서로를 아껴주는 것. 그렇게  [우리 사랑]은 펄펄 [살아서 앞마당 대추나무에 뜨겁게] 열린다. 그런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체온을 마주하며 사는 곳은.


하지만 [장안의 앉은뱅이 저울은 꿈쩍도 않는다. 오직 혼수며 가문이며 비단 금침만] 필요할 뿐. 현대인들의 [뒤우뚱]거리는 삶은 이렇게 시 속에 짧고 강렬하게 드러난다. 1연에서의 [신방]이 가난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사랑의 가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면 [장안] 즉, ‘서울’로 대표되는 현대인의 욕망으로 가득 찬 속물적인 거리들에서는 이미 진정한 사랑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는 통렬한 말의 뼈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 옛날 명예와 부 대신에 진실한 사랑을 구했던 평강 [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기껏해야 [서울의 산 일번지에]서나 [떠도는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는, 그리고 [그대]는 [사랑할 온달이 없으므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사람마저 찾을 수 없으므로 [더 더욱] 이곳- 서울에서는 ‘평강 공주마저 없다.’는 비극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 시인은 우리에게 [장안의 앉은뱅이 저울]에 모든 것을 내맡기지 않고, 사람다움을 지켜나간다면, 가난한 산동네에서조차 치자꽃처럼 피어나던 아름답고 뜨거우며 순결한 사랑들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사랑의 역설’을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바로 그녀가 쌓아왔던 사랑의 역사들을 통해서 말이다. 시가 어떻게 시인에게 왔는가를 아는 것 또한 시를 읽는 즐거움을 한층 배가시키는 일이다.



조금만 더 깊게     


이 시가 세상에 오게 된 비밀을 들여다보자. 시인은 결혼 후 서른 즈음부터 신춘문예에 응모하기로 결심한다. 그때부터 독학으로 부지런히 시를 쓰고 신춘문예 당선작품집들을 들여다보았다. 얼마나 많이 들여다보았는지, 당선작뿐만 아니라 당선소감문, 심사평까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거의 외울 정도라 하니, 그녀로서는 매우 절실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신춘문예에서, 그것도 최종심에서 번번이 떨어지기를 거의 10년 가까이 반복한다. 결국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고 결심하고 시를 투고한다. 그 마지막에 당선된 시가 바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이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마흔, 늦깎이 시인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동아일보에 신춘문예로 당선되기까지 당선과 취소가 서로 번복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으나, 그건 생략하기로 한다.)


쉽게 써놓았다가도 다시 어려운 말로 고치곤 하는 시인에게 남편은 곧잘 “낙서처럼 있는 그대로 당신을 표현한 시가 더 좋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뒤로 시인은 좀 더 자신을 쉽게 풀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시인의 마음가짐은 “쉽게 이해하고 쉽게 감동하도록 쓰인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생각을 다듬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인터뷰에서도 잘 나타난다. 특히 등단작인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는 구상하는데 무려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조선일보에 실린 김선우 시인의 소개글을 인용해 밝히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박라연 시인이 비교적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시 공부에 매달리면서 온달 설화를 차용해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를 구상하던 즈음, 어느 날 친구가 정릉에 사는 어떤 시인의 집에 가보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인은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산동네에 자리한 ‘시인의 집’을.

시인의 집은 작고 작았으나, 햇살을 받아 환하게 피어난 넝쿨장미로 둘러싸인 낮은 담장이 있었고, 대추나무가 주렁주렁 열린- 바라보기만 해도 소박하고 정겨움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시인은 시인의 집을 마주 보았던 그날을 “감동적이었다.”라고 회상한다. 그 작고도 아늑한 곳을 보고 돌아온 날 밤, 시인은 2년이나 매달렸으나 여전히 선뜻 써내려갈 수 없었던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를 불과 30분 만에 써내려가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에는 시인 자신의 아무것도 없었지만 사랑 가득했던 신혼과, 평강공주와 온달의 사랑 이야기가, 그리고 대추나무가 작은 마당을 밝히던, 가난한 산동네를 따스하게 품어내던 시인의 집이 함께 어우러져 나타난다.


그 시인이 바로 <가난한 사랑 노래>의 시인 신경림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게 이렇게도 이어지는구나 싶었다. 내 삶의 흔적이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선한 영향력을 건네주는 삶. 작고 따뜻한 시인들의 삶의 조각들이 건네져오는 이 밤. 가슴 속에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진다.



그녀는 시를 쓰는 사람

    

시인은 인터넷신문인 <THE ASIAN>에서 2016년에 신춘문예 당선에 대한 뒷이야기를 밝힌 적이 있다. 그때 시인은 대학에서 십년 동안 시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무척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문학은 팔자여야 그 늪을 끝까지 건너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라고.


그녀는 등단 1년 만에 출간한 시집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이 한 달 만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나름 유명하고 인정받는 시인이 되었으며, 그 뒤로도 묵묵히 시인으로서의 행보를 걷는다. 이후 시인은 <생밤 까주는 사람>(1993),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1996), <공중 속의 내 정원>(2000), <빛의 사서함>(2009), <노랑나비로 번지는 오후>(2012) 등의 시집을 차례로 세상에 내보인다.


박라연 시인이 제3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과 제5회 박두진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긴 시간 동안 ‘시’를 놓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열정 어린 시인에게, “문학이라는 그 길고 긴 늪”을 길고 긴 세월 동안 결코 놓치 못한 채, 발목을 담그며 건너가는 시인에게 바치는 세상의 헌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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