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비행기를 타자

by 장용범

비행기 풍경

주말을 서울에서 보내고 다시 부산행이다. 이번에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했다. 평일 항공권은 기차보다 오히려 싼 편이다. 비행기 타러 가는 시간을 포함하면 기차나 비행기나 별 차이 없다지만 그래도 나는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한다. 하늘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즐기기 위함인데 나에겐 무척 매력적인 여행이다. 높은 산이나 고층 건물이 저 아래 내려다보이고 꼬물꼬물 애벌레처럼 기어가는 자동차를 보는 재미도 있다.

세상을 멀리서 떨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저 아래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해 본다. 작년 정점에서 샀으나 이번에 가격이 많이 떨어진 아파트로 근심하는 사람들, 경차 모닝을 추월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는 벤츠도 있으며 건물 안에는 서로 경쟁하는 급우나 동료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상상이 여기까지 미치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내가 신이라도 된 것 같다. 다만 그들의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들어 줄 수는 없으니 구경만 하는 신이다.


창백하고 푸른 점

이 지구를 좀 더 멀리서 본 경우가 있다. 70년대 쏘아 올린 보이저 호가 명왕성에서 탐사 임무를 다하고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카메라의 방향을 자신이 출발했던 지구를 촬영한 영상이 있다. 여기에 비친 희미하게 반짝이는 지구의 모습을 칼 세이건은 ‘창백하고 푸른 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글을 남겼다.

명왕성에서 바라본 지구

‘저 점을 다시 보라. 저 점이 여기다. 저 점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 점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한 번이라도 들어봤던 모든 사람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 점 위에서 살았다.’<중략>


명왕성 근처에 어느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은 저 희미한 창백하고 푸른 점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서로 사랑하고 다투고 포용도 하지만 증오도 하며 살고 있는지 상상이나 할까?

블랙박스로 바라본 사고 장면

2014년 11월 21일은 나에게 좀 특별한 날이다. 자동차를 몰고 사직단의 커브 길을 지날 무렵 왼쪽에서 급하게 핸들을 꺾은 소나타가 내 차를 들이받아 몇 바퀴나 구르는 사고를 당한 날이기 때문이다. 안전벨트와 에어백 덕분에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지만 지금도 조사계에서 봤던 뒤따라오던 택시에 찍힌 사고 영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기분이 참 묘했다. 저 영상에서 구르고 있는 차에는 분명 내가 타고 있는데 나는 그 광경을 전혀 다른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고 있었다. 불과 7초 정도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사람 사는 게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다. 7초 안에 나는 저세상 사람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지상으로

김포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40분 정도 지나자 곧 부산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하늘에서 바라본 부산의 바다가 정겹다. 고도가 점점 낮아짐에 따라 작은 점으로 보이던 육지의 사물들이 점점 크게 다가온다. 이제 다시 저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 할 시간이다. 가끔 내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을 벗어나 나의 세계를 바라본 그 느낌을 떠 올린다. 그것만으로도 좀 더 타인에게 관용적이 되고 힘든 일을 겪더라도 좀 더 수용적일 수 있으며 새로운 도전거리에 용기를 가지기도 한다. 멀리서 내려다보면 지구상의 존재나 인간이 산다는 게 참으로 미미하고 별것도 아닐 수 있는데 나는 나의 세계에서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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