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차 Feb 12. 2023

산을 오르며 골짜기를 바라보다

결혼식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승기씨

 어디에서든 배울 곳을 찾으면 두다리를 뻗고 앉았다. 좋은 스승이다 싶은 사람을 발견하면 눈빛을 빛내며 맘에 새겼다. 늘 곁에 두고 싶었다. 인생의 새로운 부분을 알려주며 나를 키우고 사랑해줄 사람.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결혼식, 이제는 구식이 된 그 의식을 바랐던 것도 믿고 존경할 새로운 사람의 손을 잡을 때 지금까지의 스승, 승기씨가 곁에 있어주길 바라서 였을 것이다.

 결혼 전날, 나와 부모는 손 편지로 마음을 전한 후 덕담을 나누었다. 내일 이 시간이면 우리 손을 잡고 입장하겠네, 멋쩍고 달뜬 맘으로 웨딩 슈즈를 꺼내어 신고 거실을 오가며 자연스러운 속도와 자세로 나란히 걷는 연습을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밤, 와인잔 앞에 앉은 우리. 모든 것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할 것 같은 그 특별한 날에 어울릴 법한 추억들만 골라 나누다 그가 말했다.

 “차차야, 아빠는 차차가 결혼 하지 않고 살아도 좋다고 생각해.”

내일 결혼하는 애한테 무슨 소리냐며 손사레를 치는 아내 두리씨 곁에서 그는 말을 이었다.

”읽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는 너의 삶, 잘 누리고 있잖니? 아빤 결혼 전 너희 엄마를 떠올리면 참 고맙고 미안해. 너무 많은 시간을 자식을 키우고 나를 돌보는 데 썼지. 너는 자립하였으며 행복하니 꼭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엇보다 너희 곁엔 우리가 있잖아?”

 상견례 날, 선하면서도 단단한 눈 빛의 사위에게 “오늘은 데이트 후 늦게 집에 와도 된다.”고 화끈하게 흡족했던 승기씨는 이제 딸의 결혼을 앞둔 아비가 아니라 삶을 온 몸으로 사랑한 그 자신, 혹은 자신을 꼭 닮게 키워낸 그의 딸이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지금의 삶이 행여나 무거워질까 두려워 하는.

 그 모든 맘을 읽은 나는 정작 승기씨가 열어 준 쪽 문이 너무나 든든하여 맘껏 웃으며 말했다. 이런 승기씨가 있어 나는 용감히 결혼할 수 있다고. 승기씨의 물음으로 나의 결혼은 오직 나만을 위해 기꺼이 내가 선택한 일이 되었다고.

 그렇게 신혼과 출산, 육아. 깊고 험준하지만 아름다운 그 산을 넘으며 나는 숨이 차, 자주 멈추어 땀을 닦는다. 문득 내려다 본 골짜기, 그 곳에 승기씨가 열어둔 쪽문이 있다.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했을 아늑하고 신비로운 그 곳. 그 열린 문을 믿기에 나는 다른 쪽으로 계속 걷는다. 그 존재를 알고 존중해주는 선한 눈빛의 남편과 함께. 그리고 오늘도 자신의 아름다운 봉우리와 골짜기를 만들어 낸 두 딸과 함께.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는 나의 신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