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영화 '액트 오브 킬링'

by wanderer

굳이 영상으로 풀어내지 않았어도 이 영화는 충분했을 것이다. 글이 되었든, 뮤지컬이 되었든 그랬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기획 자체로 사람을 압도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수없이 많이 봐왔던 '고발'의 자세를 취하는 영화와 소설들과 이 다큐멘터리의 차이점은 그 기획에 있었다. '상식적인 판단' 아래에서 본인이 저질렀던 고문 행위들을 영화로 재현해내는 일을 반길 사람은 없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차분하게 감정들을 곱씹어보는 중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게 내가 생각을 그렇게 하고 싶어서 내가 '믿고 싶어서' 그렇게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와르 콩고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거나 후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연히 범죄자라면, 일말의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고방식은 그의 당당함 앞에서 박살 났다.


그는 스스로를 '범죄자'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 것처럼 행동했고, 그는 '빨갱이 척결'이라는 임무에 충실했다. 죄는 커녕 공을 세웠다 생각하며 지냈을 텐데 그에게 '죄'를 묻는 일은 무의미했다. 죄가 없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 믿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를 '죄의식'으로 구속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매번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고문 방식과 살해의 수단을 웃으며 고백한다. 웃으며 '이렇게 하면 피가 덜 튀어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학살극의 재연을 하면서 안와르 콩고와 패거리는 즐거워했다. 옛날 일을 추억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누군가에게 추억이 사랑의 기억, 학창 시절의 일화로 기억되는 것처럼 그들에게 학살의 역사는 일상이고 추억이었다. 그들의 행동을 저지할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백만 명이라는 사람이 희생되었다. 억측만으로 죽기도, 운이 없어 죽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른 무슨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남는다. 마음 한 구석에 묵직하게 자리한다.


악마를 보게 되었다 말할 줄 알았지만 그저 다른 인간 하나를 봤다는 데에서 더 충격을 받았다. 어떤 형태의 선행과 올바름, 정의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처럼 느껴졌다. 인류가 그동안 짧지 않은 세월을 고민하고 발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건 아닐까. 이건 안와르 콩고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도네시아라는 한 나라에서 발생했던 사건만으로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다수의 신념을 위해 적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들의 죽음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되물어본다 한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의 행동이 정당하다 믿는 이에게 잘못을 납득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일은 설득이 불가능하다. 평범한 말다툼도 결국 한쪽의 논리를 믿지 않으려 한다면 설득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렇다. 20세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다퉜던 이념과 사상은 이런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섰는데 어떤 형태로 후대 사람들은 이 시대를 기억하게 될까. 야만의 역사를 끝장 지은 세대와 시대로 기록된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의 믿음을 두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일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말은 사소한 내가 지킬 수 없는 말이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기억하고 기록할 수는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어찌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빠진 피해자들의 얼굴들이 잡히는 때였다. 감정을 빼앗긴 것처럼 사람들이 지었던 허탈한 웃음이 잊히질 않는다. 화를 낼 수도, 슬퍼할 수도 없던 그 사람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표정을 빼앗긴 얼굴을 그 허무한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고스란히 남은 그 표정은 기록되었다. 지워지지 않는다. 잊지 않고, 잊히지 않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액트 오브 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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