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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Nov 14. 2024

롤모델을 잃다

서로이웃 공개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급으로 휘갈겨 놓은 직장 상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사실 그는 3년 전만 해도 내 롤모델이었다. 우리 아빠가 저런 아빠였으면 할 정도로 좋은 분이셨고, 이 분과 오래도록 일하고 싶단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러나 사람은 오래 봐야 한다고 했던가. 그 기대와 존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망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오늘도, 책임자와 함께하는 회의에 두 번이나 참석하게 됐다. 첫 번째 회의에는 외부인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외부인은 쓸데없는 자기 얘기로 5~10분은 잡아먹었으나, 책임자는 거들기만 할 뿐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두 번째 회의에는 다른 부하 직원 한 명이 업무를 처리하며 겪은 고초를 털어놓았고, 책임자는 그에 공감하는 반응을 잠시 보였다. 그러나 직원분께서 관련된 이야기를 추가로 하니 몇 분도 채 듣지 않고 말을 가로막았다. "그건 좀 초점이 어긋난 이야기인 것 같다. 퇴근 시간도 가까워지고." 그럼 아까는 시간낭비가 아니었나? 사람에 따라 시간을 체감하는 속도가 달라지는 건지. 외부인에게는 극진한 대접을, 부하 직원에게는 시간을 따져가며 대하는 모습에 다시금 실망스러웠다. 시간으로 따지면 첫 번째 회의가 훨씬 아까웠는데. 물론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그 자그마한 일로도 평소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는 건 어렵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역시 위로하는 뉘앙스뿐이구나, 실질적인 해결책이나 지원은 없구나, 하는 답답함도 들었다.

퇴근길에 오빠에게 전활 걸어 이에 대한 이야기와 내 생각을 나눴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준비를 하는 오빠를 도왔다. 노릇하게 구워지는 양파를 바라보다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도 그렇게 변할 거야?"

"난 안 변할 거야. 뭐 높은 자리에 있다 보면 조금씩 바뀔 수도 있겠지만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야."

오빠다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속에서 이상한 물음이 떠올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그러면 안돼? 내가 힘들게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밑에 사람들 사정까지 일일이 헤아려야 돼?' 같은 싹퉁머리 없는 물음. 너무나 당연한 듯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에 나조차도 혼란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했다.

"근데 오빠, 이런 장면을 계속 보다 보니 '그러면 안돼?'이런 생각도 들어. 그냥 회사가 잘 굴러가게만 하면 되잖아. 직원들이 힘들든 말든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 월급 많이 받고 밑에 사람 부리려고 그 자리 간 걸 수도 있잖아."

"일단 우리 직장은 그래선 안돼. 어떤 이익을 창출하는 곳이 아니잖아. 우리 같은 직장일수록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렇긴 하네.."

"그리고, 어떤 조직이든 구성원의 민심을 잃는 곳은 망하게 돼있어."

구성원의 민심이라,, 나는 사람을 기민하게 느끼는 편이라 이번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아무래도 나 같은 사람들은 아직 소수인 것 같다. 언젠가 이 같은 판단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늘지는 몰라도, 현재로서는 책임자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성싶다. 하지만, 강릉 함씨 32대손인 나 함잇다는 가지지 못했지(함씨 아님, 32대손 아님). 아무튼 그렇게.. 나는 한때 롤모델이었던 한 사람을 천천히 지워나갔다. 

이런 걸 보면 오빠는 참 명료하다. 어느 상황이나 어떤 딜레마에도 명쾌한 사람. 오빠가 추구하는 절대적이고도 진리에 가까운 선이 있다. 언제나 본인만의 정답을 갖고 있는 듯하다. 몇 년 전 마트에서 장을 보다 오빠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이냐 물은 적이 있다. 마트 카트를 끌며 물을 법한, 아주 가볍고도 심오한 질문이었다. 오빠는 마치 준비라도 한 양 척수반사급 속도로 답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인지 다른 철학가인지 헷갈린다)가 말하길 진정한 행복을 위해선 이타심이 중요한 요소라며, 적극적으로 선을 추구해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그것이 곧 자기 행복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라며 거의 공자왈 맹자왈 같은 소릴 했다. 글쎄 아버님이 오빠를 이렇게 착하게 키우셨나? 이런 답을 하다니.. 신기했다. 놀랍고 대단해 보이는 한편, 지금 뭐라는 거지? 그냥 떠드는 건가? 하는 마음도 솔직히 들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 오빠의 삶과 가치관을 되짚어보면 오빠는 그 말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매일을 보내고 있다. 내게 딱히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 설파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묵묵히. 내가 본 오빠는 그런 어른이다. 내 인생의 지향점이자 나의 목표가 되는 사람. 나도 당신 같은 성인이 되고 싶다. 당신처럼 상황에 유연하고 신념에 강직한 어른이 되고 싶다. 복잡하고 어지러울 땐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해답을 얻는 지혜를 갖고 싶다. 롤모델 중 한 사람이 슥슥 지워져 나갔지만, 굳건히 메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빠라는 존재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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