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잔잔한 일상을 헤집는 일들에 대하여
살다보면 타인에 의해 마치 재난, 재해처럼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을 겪을 때가 있다. 예기치 않게 찾아와 온 일상을 헤집어 놓아버리는 그런 때가. 나름대로 열심히 콩콩 지어놓은 우리 집을 쿵쾅쿵쾅 부숴버리고 그 안의 집기들을 쓸 수 없을 만큼 망가뜨려 놓는 그런 때. 나랑 오빠랑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들어가서 지내는 다정다감하고 포근한 집이었는데.. 속상했다. 아치형 창문이 활짝 열린, 알록달록 맛나고 예쁜 과자집이기도 했다. 할퀴고 간 곳 마다 책이 찢어져 벌어지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동화 속 마을이 폐허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황량하고 적막한 마을이 된 것 같았다.
다음 집은 어떻게 지어야 할 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대비해 철근과 콘크리트로 무장한 집을 지어야 할지,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대비해 울타리도 세워놓고 아주 작은 창문만 두어개 내놓고 지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기뻐도 될지 웃어도 될지 분간이 안갔다.
조각나고 무너졌던 우리 집에 하나둘씩 손님이 찾아왔다. "똑똑. 괜찮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걱정돼."라거나 "너무 힘들었겠다. 내가 위로해 주러 왔어!"라고 말하는, 애정어린 마음을 품고 온 손님들이었다. 손님이 오니 나도 지저분한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벌떡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했다. 그리고 일부러라도 조금씩 웃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활짝 웃고 있었다. 자조적인 농담이라도 그것은 농담이었고, 자책이 담긴 후회나 걱정이라도 그것은 회복의 신호였다.
집이 처음 무너졌을 땐, 무너진 집을 보며 절망했다. 집을 다시 짓기 시작했을 땐, 집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집의 존재 유무나 내구성과 기능을 생각하기 보다, 다른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행복이 무럭무럭 자라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손님들이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강물에 휩쓸리든 바람에 날아가든 흔들림에 무너지든 불이 나서 재만 남든, 집이야 또 지으면 된다. 자꾸자꾸 지으면 된다. 다시, 예쁘고 튼튼한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