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상처
휘낭시에라는 디저트는 버터를 태워서 반죽과 함께 섞는다. 태운 버터를 헤이즐넛 버터 또는 프랑스어로 뵈르누아젯(beurre noisette=헤이즐넛버터)이라고도 하는데 태운 버터로 만든 디저트는 버터의 향과 풍미가 확 올라오며 티푸드로는 제격이다.
처음엔 경험이 없어서 마감시간이 끝난 뒤에 간판에 불을 꺼놓고 다음날 준비를 했었지만 요즘은 요령이 생겨 한가한 시간에 준비를 해둔다. 초반엔 9시 마감이니 다음날의 준비를 마치고 집에 가면 11시가 넘었다.
그날도 이것저것 준비하며 버터를 태우고 난 뒤 식히고 있는데 뜨거운 버터에 물이 들어갔다. 당황해서 냄비를 그대로 싱크대 쪽으로 가져갔다. 물이 아주 조금 들어갔던 것 같은데 가게 안에서 버터 폭죽이 터졌다. 커튼과 바닥 등등 온통 버터가 튀었고 손과 팔까지 화상을 입어 엉망이 되었다. 오픈 초기의 바보 같은 실수였다.
처음엔 아프지도 않았고 시간도 늦었기에 이 정도는 응급실까진 아닌 것 같은데? 라며 그저 벌게지는 손을 보면서 키친타월에 물을 적셔놓고 있다보니 약간씩 쓰라렸다. 별로 안 다친 줄 알았었다.
점점 얼얼해져 오는 탓에 손에 키친타월을 감은뒤 운전대를 잡고 늦은 시간까지 열려있는 병원을 찾았다. 급한 대로 늦게까지 문을 여는 병원을 갔더니 그곳은 사람이 많은 피부과였던지 저녁시간에도 20명 정도가 대기하고 계셨다. 간호사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화상을 입어서 드레싱만 먼저 좀 해주시면 안 될까 물어보았지만 상처부위를 확인하지 않은채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살짝 쓰라려오던 손이 점점 아프기 시작했고 손과 함께 얼굴도 빨개지고 있었다. 그때 다행히 병원과 먼저 오신 환자분들이 양해를 해주셔서 의사 선생님이 드레싱을 해주시고는 상처부위가 넓다며 2차 병원 진료 의뢰서를 써주셨다.
시간이 늦어서 결국은 응급실행이었다. 응급실에 가서 식염수와 얼음이 잔뜩 들어있는 대야에 손을 넣고 1시간 정도 있었다. 차디찬 대야 속에 담긴 내 손을 보다가 전화해서 투정 부릴 사람이 없는 것도 괜히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처치가 끝난후 내일 외래로 오라는 얘기를 들으며 응급실을 나왔다. 그리곤 그대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시 가게로 향했다.
이제 현실이다. 버터 천지의 가게를 치워야 한다. 손에 붕대를 잔뜩 감고 고무장갑을 끼고 커튼을 빨고 기름을 닦았다. 아픈데도 할 사람은 나뿐이니까 하면서도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당장 다음날 가게 오픈도 문제였다. 청소도 끝내지 못했지만 청소야 어떻게든 하면 되는데 디저트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고 손에 힘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그날은 대충 정리를 끝내고 다음날 외래로 방문했다. 드레싱을 받고 임시휴무를 걸어둔뒤에 천천히 청소를 했다. 그리고 붕대는 2주 정도 감고 병원 외래도 2주를 다니며 장갑을 끼고 일을 했다. 이것이 제빵일을 하시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영광의 상처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이렇게 서러운 날도 있다. 그 뒤로는 버터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다루게 되었다. 나의 소중한 버터.. 그리고 영광의 상처가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