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넘은 소녀, 오래된 꿈,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 김금원
독서 후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게시판이 있다.
행복이 넝쿨째 독서토론 이후 동화를 읽고 종종 올리기도 했고 읽은 책을 올린 친구님의 글에 댓글로 좋았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분이 조선 여성에 대한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책을 나도 빌려 읽었는데 특히 김금원이라는 사람이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된 연유로 이 책들을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 '김금원'이라는 이름을 입력하고 검색하니 동화는 많이 나오지 않았다.
동화로 보이는 책, 청소년소설로 보이는 책, 지식정보책으로 보이는 책 이렇게 세 권을 골랐다.
세 권의 책을 모두 읽어보니 비슷한 듯 다른 면이 보였다.
예전 판본이라 그런지 지명에 오타도 있었으나 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강민경작가의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 김금원]과 홍경의 작가의 [오래된 꿈]은 동화로, 김미승작가의 [담장을 넘은 소녀]는 청소년문학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세 권의 책은 출판사도 다르고, 지은이도 다르고 그림을 그린이도 다르다.
하지만 금강산 유람을 떠난 남장 시인 김금원의 여행기라는 것은 같다.
이 세 권의 책을 놓고 어떻게 다른 지 한 번 간단히 써보았다.
경로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
이 책들 모두 바로 김금원의 금강산 기행문 <호동서락기>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이다.
충청도 지방 - 호, 금강산과 동해안 - 동, 관서지방 - 서, 서울 - 낙으로 '호동서락'을 여행하였다.
시간순으로 보면 '호-동-낙-서'의 여정이다.
먼저 김미승작가의 [담장을 넘은 소녀]를 살펴보았다.
김금원은 기생인 어미, 소실의 딸이다. 어머니와 똑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인이다.
그 여인이 금강산으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다행히 허락을 해주었고 남장을 한 채로 여행을 떠난다.
이 소설에서는 제천 의림지를 첫 여행지로 삼아 떠나 주막에서 등짐장수 천수를 만나는 것으로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등짐장수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방법은 바로 암행어사라는 말을 흘리는 것이었다. 재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으로 따지만 감사실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이닥치는 게 암행어사 아닌가?
덕분에 폭력은 여기서 멈추게 된다.
어머니의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의림지를 방문한 금원의 마음은 어땠을까?
단양팔경을 거쳐 금강산 여정에 오른다. 단발령을 지나고 만폭동 골짜기를 올라간다.
이곳에서 다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는 데 금원은 쉽게 그리하지 못한다. 자칫하면 남장한 것이 들통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허투루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어.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그 쓰임이 있다는데,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왜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할 수 없을까? 나는 진짜 나일까? p107
이 시대의 여성들은 집안일을 배우다 시집을 가는 것이 대부분의 흐름이었다.
몸이 약했던 금원은 바느질 대신 글을 읽었고 세상을 일찍 배우게 된 것이다.
지금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멋진 여성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지 않을까?
다음 행선지로 '정양사 헐성루'라는 곳으로 간다. 세 권의 책 중 어떤 책은 '혈성루'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최근 판본에는 어떻게 인쇄가 되었을지 궁금하다.
이 책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공 패랭이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진경산수화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같은 것을 보아도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른 법이지. p112
마음이 동해야 그림을 그린다는 패랭이의 말에 금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이 동하고 동하지 않는 것은 자유니까. 누구든지 생각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피맛골에 대해 나온다.
지금은 없어진 거리 광화문의 피맛골의 생선구이가 생각났다.
유람을 마치고 돌아온 금원은 시회를 만들기로 한다.
세 소녀의 가슴속에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다음 책은 강민경작가의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 김금원]이다.
동화이기 때문에 쉽게 잘 읽히는 편이다.
위의 소설과는 다르게 진행되어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또 새롭다.
여기서는 금원이 남장을 하고 어머니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아버지도 금원을 손님이라고 착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선했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순채'에 대해 나오는데 이 나물이 의림지에서만 난다고 한다.
이 동화에서는 '순채'를 소재로 삼았다.
고기 잡는 배의 할아버지를 따라 가 그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다.
할머니는 순채 화채와 저녁상을 금원 앞에 내놓는다.
입이 짧아 평소에 많이 먹지 못하고 잘 체하는 금원이었지만 숭늉까지 부어 싹싹 긁어먹는다.
음식의 정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금원은 단양으로 향했다.
상선암 주변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공을 만나는데 그의 입담이 대단하다.
붓질을 하며 이야기도 함께 하니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화공이 그린 그림은 신선들의 바둑판이라 불리는 바위, 선암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큰 수확일 것이다.
옥항아리에 산호로 만든 붓을 꽂은 듯한 산봉우리들의 모습이 기이하고 아름다워 추운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문득 보니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둥지를 찾아온 새들이 날개를 접고, 달빛에 바람까지 불자 그제야 빗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달았다. p59
여행을 하다 보면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것이 제 몸이다. 조금만 더를 외치다 결국 무리가 가 병을 얻기도 한다.
금원은 몸을 추스르고 단발령에 오른다.
그러댜 멧돼지에게 쫓기며 쓰러진다. 이를 동자승이 부축해 장안사로 데려온다.
위의 책 [담장을 넘은 소녀]에서는 장안사에 기거하던 궁녀들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어떤 것이 사실에 기반을 했던 작가의 상상력은 대단해 보인다.
동자승 유누가 돌아갈 곳이 없어 절에 남는다는 말을 하자 금원은 생각에 빠진다. 자신이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돌아갈 집이 있어서다.
남길 것이 없다는 유누에게 금원은 이렇게 말한다.
남길 것은 지금부터 만들면 되지요.
누가 아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자기 길을 자기가 갈 뿐이지요. p89
내가 남길 것을 지금부터 만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남기고 싶으면 지금 이 순간부터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정양사의 '혈성루'로 표기되어 있다. 찾아보니 '헐성루(歇惺樓)'가 맞다.
집으로 돌아온 금원은 시 모임을 만들어 시를 쓰다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다. 남편을 따라 의주로 갔다가 용산에 터를 잡아 '삼호정'이라는 별장을 짓고 그곳에서 글을 쓴다.
마지막으로 읽은 홍경의 작가의 [오래된 꿈]은 지식정보책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논문과 책을 토대로 이 작품을 썼다. 책의 맨 뒤에 실린 참고한 책 리스트가 말해준다.
앞의 책들과 조금 다른 것은 시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다가 잠들기도 하고, 고모인 기각에 대한 내용도 실려 있다.
그대가 규중에서 글과 재주를 사랑하니
반소와 채문희 두 여류 대가 못지않다.
새로 보내준 시 모두 가히 놀랄 만하고
한번 읊으니 꽃향기가 뺨과 입안에 가득하다. - 기각, <금원에게>
기각은 금원의 재주와 지적호기심을 존중하고 이해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 주위에 한 명만 있어도 글 쓰는 것이 행복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헐성루'와 '혈성루'가 둘 다 있다. ㅋㅋ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은 이야기 중심이 아닌 지역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시와 그림과 글이 골고루 배치되어 어른이 봐도 참 좋을 책이다.
오랜만에 '관동별곡'도 보고 허난설헌의 시도 함께 읽었다.
금원의 글벗인 운초와 경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삼호정에서 글을 쓰던 벗들은 모두 기생이 되었다.
양반가에 태어났지만 기생이 되어 살아가는 세월이 한스럽지만 삼호정에서 벗들과 글을 쓰면서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곤 했다는 그녀들의 말이 애달팠다.
세 권의 책 중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 김금원]을, 고학년 및 중학생들에게는 [담장을 넘은 소녀], 그 이상에게는 쉽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오래된 꿈]을 추천하고 싶다.
나도 남길 것을 지금부터 만들어 가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