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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노엘 Nov 02. 2017

청춘이다

청춘표류 - 다치바나 다카시 



 망설임과 방황은 청춘의 특징이자 특권이다. 그만큼 창피한 기억도 많고 실패도 많다.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라 이름할 수 없다. 자신에게 충실하고 대담한 삶을 꿈꿀수록 부끄러움도 실패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다행이다. 지금 나는 '충분히' 부끄럽다. 나의 어리석은 방황은 계속되고 있다.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원숭이 조련사, 레코딩 엔지니어, 정육 기술자, 프레임 빌더 등. 생소하고 낯선 직업이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고민 없이 따라가는 평범한 길을 과감히 포기했다. 무난한 직장이 주는 안정감을 기꺼이 버렸다. 대신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대담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자신만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들이 명성과 기술,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청춘도 지금의 나처럼 험난했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시간을 축내기도 했고 돈이 없어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하기도 했다. 딱 봐도 평범하지 않은 직업과 기술. 이 일을 계속해야 되나, 이걸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이들도 수없이 고민하고 매일 밤 머리를 굴렸을 게다. 불안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뜨거움과 열정으로, 꿋꿋한 뚝심으로 결국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나에게 과연 그런 뜨거움이 있는가. 아니,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뜨겁기만 한 사람이 아닐까 고민된다. 능력 없는 열정, 소질 없는 욕망, 대책 없는 이상. 초라하다. 나는 도대체 뭘 잘할 수 있을까. 이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노라 자신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있기는 있는 걸까. 아니, 지금 당장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없더라도 하루하루 연습하고 실력을 닦으면 나도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나만의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걸까.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웃기는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꿈을 계속 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청춘의 특권일까?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이 소망은 제대로 된 청춘의 시작점일까, 아니면 단순한 망상으로부터 연유하는 허망한 배짱일까. 



 청춘은 어쩌면 도박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인생 전체를 건 도박.  


 만일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청춘은 싱그럽게 빛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 도박에서 지더라도 ‘그래, 나는 내 청춘을 후회 없이 보냈어.'라고 자신할 수 있을지 나는 장담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청춘에는 모든 가능성이 있지만 실패의 가능성 또한 있으니까. 저자는 실패하지 않는 청춘, 즉 정해진 길만 무난히 걸어가는 젊은이들을 심하게 꾸짖고 있다. 


 육체는 젊지만 정신은 노화된 청년들. 그들은 세상의 상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말만 늘어놓는다. 또 그에 맞는 처세술이나 삶의 방식만을 추구하려 한다. 마치 그들은 무덤까지 일직선 코스를 향해 달리는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실패한 청춘이 방황 없던 청춘보다 가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데. 살벌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이상은 허무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가 힘이 빠지고 기력이 쇠한 노인이 됐다고 상상해 보자. 추운 방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쫄쫄 굶고 있는데도, 그래 실패한 청춘이야말로 진짜 청춘이었다며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아니 처음부터 정답이 없는 문제다. 도박을 할지 말지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오롯이 내 몫이다. 나의 선택, 나의 결정.


 인생에서 가장 큰 회환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때 생긴다. 얼핏 보면 대단히 성공하고, 무척 행복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바라던 인생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 또 이와는 반대로 비참한 인생으로 끝나버린다고 해도, 자신의 생각과 선택으로 초래된 결과라면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체념은 가능하리라. 


 후회냐, 체념이냐. 그렇다면. 계속 도박을 해보겠다. 내 인생 전체를 걸고. 이미 몇 번의 판이 돌고 돌았고 나는 내리 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다시 주사위를 던져보고 싶다. 아직은. 노력에 따른 보답이 나에게 돌아올지 아닐지, 도대체 나에게 재능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흔히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닌지, 지금도 머리가 복잡해 터질 것 같지만. 도대체 현실감각이 그렇게 없어서 어쩔 거냐고, 뜬구름만 잡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해도. 번듯한 타이틀이 없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비웃는 일도 종종 있다. 그래서 화가 많이 난다. 그래도, 조금 더 해봐야겠다. 


 오늘도 실패하고 있는 나는, 쥔 것이 없어 텅 빈 손을 가진 나는,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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