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기간 4
아직 겨울에게 춥기 이를 데 없는 날씨여도 다음 달인 5월 말이면 모든 시험과 과제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될 것이다. 스웨덴 대학은 3년제. 휴학 한번 없이 학교를 마치고 바로 대학원에 온 아이는 겨우 23살밖에 되지 않았다. 일해본 적 없는 동기들에게 이번 여름방학은 졸업 후 취업을 위해서 경력을 쌓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여름방학 인턴을 위해 방학이 시작되기 서너 달 전부터 동기들은 수없이 많은 원서를 내고 인터뷰를 보고 있었던 듯했다.
“이제까지 몇 개나 지원했어?”
“이제까지? 그건 셀 수도 없지. 이번 달에만 열개는 쓴 거 같아. 이번주에 잡힌 인터뷰만 두 개야. 이번엔 잘 되어야 할 텐데, 너는 지난번에 인터뷰 본 거 잘 되었어?”
“그중에 한 군데에서 오라고 연락 오긴 했는데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야. ”
“왜?”
“페이가 없거든. 뭐 아무것도 안 되면 이거라도 해야 하긴 하지만, 일단은 좀 더 써보려고.”
“그래 무급은 좀 힘들지.”
“그러니까.. 8시간 근무라 따로 아르바이트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쨌든 방학 동안 집세도 내고 생활비도 내야 하니까 쉽지 않지.”
가만히 듣고 있던 겨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급 인턴이라고? 여기 한국보다 선진국 아니었나? 자기도 모르게 눈이 커져서 물었다.
“돈을 안 주고 인턴을 시킬 수 있어? 불법 아니야?”
“뭐 다 그런 건 아닌데, 불법은 아니야. 물론 돈을 주면 좋지만, 안 되면 무급이라도 경력 쌓는 게 우리에겐 좋으니까 그냥 하는 거지.”
겨울이 경험했던 인턴은 정규직 채용을 위한 입사전형의 하나로 시행된 한 달짜리 짧은 인턴이었다.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었고, 월급도 나쁘지 않았다. 미래의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대우도 괜찮았다. 하지만 취업을 핑계로 몇 개월씩 최저 시급으로 주며 인턴으로 쓰다가 계약직으로 돌린다는 이야기도 괴담처럼 전해왔다. 정규직전환이라는 희망고문으로 경력란에 쓰기도 뭐 한 일들을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시키며 취준생의 시간을 빼앗아 버리는 악덕 기업들. 아직도 개발도상국 마인드에서 못 벗어난 한국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여기는 아예 돈도 안 준다니.
“그럼 점심이나 교통비는 어떻게 해? 점심은 줘?”
“그런 용도로 한 이삼십만 원 정도 주는 곳들도 있긴 한데, 다 주는 건 아니더라고.”
13년 동안 쉼 없이 일했었고, 처음 맞는 여름방학이었다. 아무리 경력이 있어도 현지 취업을 하려면 인턴을 해두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두 달 넘게 쉬는 건 십여 년만이었다. 그 꿀 같은 시간을 일하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인턴 월급이라 쳐도 겨울이 한국에서 받는 월급의 절반밖에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무급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 관심이 떨어졌다. 이미 일이라면 이제까지 할 만큼 충분히 하지 않았는가. 겨울은 더 이상 노동력을 값싸게 팔고 싶지 않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인턴 얘기가 끝나자, 화제는 3학기때 뭐 할 건지로 넘어갔다. 다른 대학들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대한은 모든 수업을 같이 듣던 1, 2학기가 지나고 3학기는 원하는 수업은 무엇이든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3학기때는 교환학생을 가거나 인턴쉽으로 대체했다. 대학원생이 교환학생이라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원생은 담당교수님의 수족이 아니었는가. 교수의 안위와 평안이 곧 나의 안위를 결정하기에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운명공동체 말이다. 하지만, 대학이 3년제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유럽의 대학원은 대학원이라기보다는 졸업논문을 쓰고 수업시간에 논문을 쓸 뿐이지 대학 같은 느낌이었다. 딱 정해진 지도교수 없이 수업을 듣고 세미나를 듣는 게 말이다. 그래서 교환학생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이 가기로 한 나라도 다양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미국 심지어 한국까지. 입학설명회 때부터 이런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회를 몇 번이나 했었다.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 종류와 각 프로그램에서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 리스트. 그리고 지원 방법까지. 십여 년 전 겨울이 그렇게 부러워마지 않았던 교환학생의 기회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었다. 그렇다고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 때문에 스웨덴을 떠날 수도 없었지만, 사실 겨울에게는 이미 이곳이 교환학생을 온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교환학생을 택한 동기들이 취업 전 마지막 자유를 외국에서 보내겠다면, 인턴십을 하기로 한 동기들은 좀 더 취업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이미 외국에서 유학을 온 아이들은 스웨덴 출신과 달리 취업에 더 제약이 있기에 더 적극적으로 인턴십을 찾았고, 여름방학뿐 아니라 3학기까지 이어서 회사를 다니며 정규직 제안을 받길 기대하였다.
겨울은 이래저래 다음학기 준비에 바쁜 아이들 사이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채, 남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1학년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영어로 수많은 논문을 읽고 수십 번의 토론, 십여 번의 발표를 해냈다. 하루종일 고치며 연습한 스크립트도 제대로 못 읽어서 중간중간에 버벅거리고, 질문이 오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못 해 가슴이 미친 듯 뛰었다. 번역기의 도움으로 논문을 읽고 보고서를 썼지만, 자신이 읽어도 뭔가 어색했다. 이상한 번역투의 문장일 망정 그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필기시험은 겨울에게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4시간이나 시험을 본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겨울의 영작실력으론 정해진 글자수를 채워 답안을 내기 위해선 4시간도 모자랐다. 늘 이제 시험 끝납니다. 빨리 제출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컴퓨터를 붙잡고 앉아있었다.
영어로 수업을 듣고 세미나를 하고 과제를 내면 영어가 늘 것 같았지만 여전히 겨울은 자신의 영어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영어를 읽는 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고, 여전히 모르는 단어들이 많았으며 자신의 글은 자기가 봐도 제대로 된 영어문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모든 과제를 강의계획표에 나온 요건을 맞춰 제때내고 발표도 무사히 마친 다른 동기들처럼 대부분 B를 받았다. 이 학교 성적에는 +나 -느 없었다. 오로지 A, B, C, D, E 뿐이었다.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성적표에 B+라도 나오면 입이 삐죽 나왔던 겨울이었지만, 스웨덴에서는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가 이내 억지 웃음을 짓듯 입꼬리를 올렸다.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는 대학생 때처럼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까. 아이들도 돌보고 저녁에는 스웨덴어를 배우러 갔고 게다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하는 거니까. 애써 성에 차지 않는 점수를 보고 속상한 마음을 다독거렸다. 사실 엄청나게 열심히 했다고 느끼진 않았지만, 가끔 과제를 써내고 스스로 이건 좀 잘 썼는데 하는 순간도 있긴 했다. 하지만, 배운 이론에 다른 학생들은 절대 모를 다년간 쌓아온 실무 경험을 잘 녹여낸 수작이라고 생각했던 과제가 뚜껑을 열어보니 되레 C가 나오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대학교 때는 분명 잘했다고 생각하면 점수도 예상과 다르지 않았는데.. 이건 문화적 차이인가? 아니면 평가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게 다른 걸까? 영어 글쓰기는 한글 글쓰기와 형식이 다른 건가 아니면 실무를 너무 알아서 학교에서 원하는 답을 내지 못하는 건가? 이 나라와 핀트가 안 맞는 건 아닐까.. 겨울은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