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졸리는 그림
잡생각이란 '쓸데없는 여러 가지 생각'을 말한다. 특정한 주제를 가진 생각은 능동적으로 떠올리는 것이라면, 잡생각은 '떠올려진다'에 가깝다. 팝업창처럼 마구잡이로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잡생각은 의도치 않은 아이디어로 창의적인 생각을 이끌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할 일을 방해하기도 한다. 잡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창의성과 생산성을 한꺼번에 얻게 된다. 그런 방법이 있는 걸까. 약간의 원리와 개념만 이해한다면 간단히 얻을 수 있다.
잡생각이 가장 활발할 때는 휴식 시, 즉 뇌가 DMN일 때이다. DMN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의 약자로 뇌가 휴식할 때 활성화 되는 영역이다. 워싱턴대 의대의 뇌과학자 마커스 레이클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휴식할 때는 뇌도 같이 쉰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뇌에는 쉬지 않고 활발해지는 특정 영역이 있다. 그것이 바로 DMN이다. DMN은 내측 전전두엽피질, 후방 대상피질, 하두정소엽 등의 뇌 구조가 상호 연결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네트워크라는 말을 사용한다.
DMN가 활성화되면 방향성이 없고 무질서한 생각이 쏟아진다. DMN 생각의 특징은 자아, 기억, 의사결정이다. DMN상태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생각하고 기억을 토대로 경험을 반추하고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며 자아감을 형성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 가면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한다. 또 맥락 없는 기억들을 문득 꺼내놓기도 하고 미해결 된 사안에 대해서 해결하도록 알람을 울려준다. 우리가 왜 쉬려고 할 때 마음이 소란해지며, 잠이 쉽게 들지 못했는지, 왜 가만히 있는 게 힘든지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잡생각을 끄는 방법은 간단하다. 디폴트 모드를 끄면 된다. DMN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혹은 집중을 하지 않을 때 불이 켜진다. 몸을 움직이거나 무언가에 몰입을 하면 자연스럽게 꺼지게 된다. '잡생각이 왜 없어지지 않냐'라고 괴로워하며 끄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명상도 이런 의미에서 도움을 준다. 굳이 몸을 움직이지 않고 들숨 날숨을 지켜보는 것도 집중이므로 DMN을 끄고 몸은 쉬는 진정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물론 휴식하거나 잠들기 전, 편하게 쉬는 시간에 갑자기 무언가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추천하는 방법은 '단어 집중'이다. 한 단어를 되뇌는 방법인데 거부감이 없고 추가 생각을 만들지 않는 단어면 어떤 단어든 상관없다. 잠들기 전에 내가 찾은 단어는 '매우 졸림'이었다. '매우졸림매우졸림매우졸림'을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속도로 집중하다 보면 수월하게 잠에 빠진다. 물론 이런 방법은 양이나 숫자를 세는 등 전통적인 방법과 같지만 DMN의 원리를 알면 원하는 스타일로 응용이 가능하다. 자다가 중간에 깼을 때도 단어 집중 방법은 유용하다. 잠이 깸과 동시에 DMN은 바로 활성화되어 생각을 쏟으며 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때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잠이 달아나기 전에 '매우졸림매우졸림'을 되뇌어 DMN을 닫는다. 단어 이외에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잠을 부를 때는 빙글빙글, 느릿느릿한 이미지가 도움이 된다.
잡생각을 없애는 건 그 자체로도 생산성에 많은 영향을 주지만 더 큰 효과는 '생각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이다. 떠오르는 생각 사이를 비집고 의도적으로 단어를 배치하려면 생각을 인지해야 한다. 또 생각이 떠오르는 시점을 파악하게 되고 무슨 생각이 오가는지를 나와 분리해서 보는 연습이 된다. 잠들기 전에 생각을 인지하고 차단하는 연습이 잘되면 아침에 일어나 의식이 깨자마자 쏟아지는 생각도 잘 지켜보게 된다. 이것은 로봇이 프로그래밍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행동 전에 스스로 명령값을 분석하는 것과 같다. 모든 행동의 출발점은 감정을 정리하고 생각에 끌려다니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구름이 걷히고 새파란 하늘을 보듯 청명한 판단력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