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에 젬병

by 이이름


아내가 모든 면에서 똑 부러지고 야무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아니다. 아니, 야무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아니고, 모든 면에서 그렇진 않다는 의미다. 특히 물건값을 깎거나 흥정하는 걸 엄청나게 못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당연히 아내가 그 방면으로도 선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판단한 건 내 잘못이지만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 아닌 건 아니다, 자기 할 말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니, 흥정 분야에서도 거침없으리라 생각했던 거다.


어느 날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문득 나는 아내가 단 한 번도 깎아달라거나 가격에 이의를 제기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가격을 깎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고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그런 분위기나 상황이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물건을 많이 샀을 때 덤을 요구한다거나, 상식보다 비싸게 부르는 가격에는 한 번 태클을 걸어볼 수도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걸 재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아내는 절대로 먼저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인들이 아내를 보고 싹싹하다며 먼저 몇천 원 빼주겠다 제안하는 경우는 있다. “만 이천 원인데, 그냥 만 원만 줘요.”


문제는 나 역시 그런 걸 못 한다는 거다. 못한다기보다는 하기 싫어한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한마디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못 견딘다. 더 문제는 그래 놓고 뭔가 손해 본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거다. 제 가격에 샀거니 믿고 넘어가면 될 걸, 뭔가 찝찝하다. 찝찝한 건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장면에서 우리 둘의 대응에는 차이점이 하나 있다. 아내는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거나 흥정의 여지가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면서도 돌아서 나가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사기로 결정하고 가격을 물었을 때는 그냥 사버린다. 나는 내 생각보다 가격이 높거나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발길을 돌려 버린다. 흥정하지 않고 그냥 다른 곳을 찾는다. 세상에 같은 물건은 널렸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주도권을 파는 사람에게 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나와 버리면 아내는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더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갈등이 생긴다. 각자 살아온 방법대로 사는 게 제일 편한데, 불편한 길로 가야 하니 불만이 싹튼다. 이렇게 되고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흥정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부르는 대로 주자니 속이 쓰리고 다른 대안을 찾으려니 아내의 짜증이 끓는 소리가 쿠르르, 하고 들린다.


한 번에 큰 액수의 거래가 이뤄지는 부동산 계약 시에도, 딱 한 마디면 비교적 소액인 몇만 원 정도는 깎을 수 있는데 아내는 입을 열지 않는다. 결국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넉살 좋은 척 너털웃음을 웃으며, “사장님, 우수리 떼고 어떻게 안 될까요?” 하면, 사장님은 인심 좋게, “뭐, 그럽시다.” 긍정적인 답이 나온다. 아내의 표정에도 살포시 웃음기가 어린다.


대개 아쉬운 소리 하기를 즐긴다기보다는, 손해 보기 싫은 마음, 나아가 약간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로 그런 말들이 오가는 걸 테다. 말 한마디 한다고 크게 밑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무조건 본전 이상의 효과는 본다는 믿음이 깔려있지 않은가. 천 냥 빚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다. 말 한마디가 별로 큰 타격이 아닌 사람의 경우에는 충분히 해 볼 만한 게임이다. 그렇지만 낯선 타인과 말로 맞서는 것이 감정적 소모로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섣불리 나섰다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몇 푼의 이득보다 상처가 더 쓰라린 전장이 되고 만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입을 다물게 된다. 나의 경우 이런 유형에 속한다. 모르는 사람과 말 섞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승강이하는 상황은 더 싫다. 아내는 나와는 다소 다른 유형이다. 아내는 낯선 사람과 말 섞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들에게 강아지가 몇 살이냐는 둥 언제 이사 왔냐는 둥 쉽게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간다. 스몰토크는 긴장을 풀어주고 분위기를 완화할 뿐 아니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무나와 아무 말이나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다. 그러니 말 섞기 싫어서 흥정을 피하는 게 아니다. 얼마 전에 변기가 막혀서 사람을 불렀는데 생각보다 가격을 높게 불렀다. 아내도 헉 소리를 낼 정도로 놀랐으면서도 깎아달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거였다. 내내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아내인데 말이다. 결국 한 마디 아쉬운 소리를 해서 2만 원을 깎은 건 이번에도 나다.


아내는 왜 이리 흥정에 젬병이 되었을까? 똑 부러지는 인상인데 왜 그 방면에만 소극적인 걸까? 골똘히 집중해 아내가 되어 본다.


우선 아내는 상대방이 제시한 가격이 합당한 가격이려니 믿는다. 사람을 무턱대고 믿는 사람이 아닌데도 이 문제에선 독특한 자세를 취한다. 잘 모르는 분야에서 더욱 그런 면이 보인다. 끈질기게 흥정해서 가격을 깎고야 마는 사람을 보면 욕심이 많다고 싫어한다. 구매자의 위치에서 판매자의 입장을 생각한다. 아내가 그럴 때 나는 답답하다고 느끼지만, 아내가 왜 그런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걸로 사람이 사람을 속이지 않는 세상은 얼마나 멋진가. 각자 자신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든든하겠나.


아내는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해서 하거나 듣는 걸 지극히 싫어한다. 그래서 흥정에 가담하지 않는 면도 있다. 흥정은 끈질기게 같은 말을 주장해야 한다. 끈기와 집념이 필요하고 피곤한 작업이다. 그러니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아내에게는 상책이다. 아예 입도 열지 않는 건 아니다. 혼잣말에 가깝지만 한 마디 꺼내 볼 때도 있다. “생각보다 조금 비싸네……. 어쩌지?” 꾹 참고 용기 낸 첫 시도에 상대방이 응답하지 않으면 거기서 끝. 두 번은 없고 흥정은 성립하지 않는다.


또, 깎아 달라는 말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구차하고 궁색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거다. 돈은 때로 사람을 구차하고 궁색하게 하므로, 한 발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을 이해한다. 누가 그렇지 않겠나. 쿨하고 시원하게, 자잘한 계산 없이 턱 하고 카드를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그러려면 얼마쯤 손해 봐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아야 한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둘 중에 하나만 탄탄해도 이 꿈은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작은 손해에도 타격을 입고 때때로 궁색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흥정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고 싶다. 가짜 웃음이 어색하다.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런 게 세상 사는 재미고 그 안에서 정을 나누거나 인간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텐데……. 똑 닮은 우리 부부는 같은 장면에서 같은 표정으로 찡그리고 같은 표정으로 웃는다.


주머니 사정이 좋아야만 여유가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들 각자가 큰 악의 없이, 성실하게 자신이 가져야 할 만큼의 몫을 챙기고 있다는, 세상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작든 크든, 이득에 즐거워하지 않으면 조바심도 근심도 사라진다. 설사 손해를 조금 본다 한들 마음까지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까짓 거 다 줘버리면 어떠냐! 하는 자세로 살 수 있다면. 흥정에는 젬병이어도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에게 이로운 것에만 야무지지 않을 수 있다면…….


아내도 같은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격을 깎지 않아도 되니 아마도 찬성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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