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되지 않는 인생

by 이이름


구립여성문화센터 개설 과목을 훑어보던 아내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을 난 보았다. 목소리에도 생기가 넘쳤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의욕과 기대가 거실을 채워갔다. 신나서 수강 신청을 한 후에 재잘대는 아내를 보며 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금 불안했다. 그러나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재미있겠네, 드디어 소원 풀었네, 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모처럼 아내에게서 피어나는 설렘을 시들게 할 순 없었다. 가끔 논리에 닿지 않는 계획을 밑도 끝도 없이 꺼내는 아내에게 정색하고 태클을 걸었다가, 재미없고 부정적이며 기운을 꺾는 사람으로 찍혀있던 터라 이런 순간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아내를 사귀고 1년이 되어갈 즈음 본가에 갔을 때, 곧 다가오는 추석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 인사시켜 드리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나를 조심스레 방으로 잡아끌었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용하다는 역술인을 찾아 오이도까지 가서 내 사주를 보고 왔는데, 그 역술인은 올해 결혼 운이 들어왔다며 추석 때쯤에는 짝을 데리고 올 것 같다고 말했다는 거였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 말을 전하며 사주팔자라는 게 있긴 있다고 신기해하셨다. 나이가 차고도 넘쳤는데 연애를 하는지 마는지 단 한 번도 여자 얘기를 꺼낸 적 없던 아들이 느닷없이 역술인 말마따나 추석에 며느리 될 사람을 소개하겠다니 놀랄 법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당시 여자친구)의 얼굴에 놀라움과 확신이 떠올랐다. 그걸 딱 맞힌 역술인의 실력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우리는 역시 ‘운명’이라는 확신이었다.


그즈음 아내는 우리 두 사람이 만난 건 운명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할 법한 우연이 우리 사이에 몇 가지 있긴 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어쩌다 겹친 신기한 우연일 뿐이었다. 그때 나는 아내가 흥분하는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를 확신하기까지의 과정이 납득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그건 다소 비이성적으로 보였고 조금 위험한 비약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 우연 : 어느 날 아내는 우연히 자신의 휴대폰에 있는 사진이 나에게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조카(누나의 딸)와 어떤 여자아이가 놀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아내가 친하게 지내는 언니의 딸이었다. 아내의 친한 언니와 나의 누나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거다. 그 친구와 나의 누나는 졸업 후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고 아이들이 또래라서 만나서 놀게 됐는데, 그때 찍은 사진을 우리는 각자 저장해 놓고 있었던 거다. 아내와 그 언니가 알게 된 계기, 누나가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 계기, 내가 아내를 만나게 된 계기를 이어가다 보면, 어찌 된 영문인지, 어디쯤에서 이 우연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생겨나기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꽤 확률 낮은 우연이랄 순 있어도 기함할 정도로 놀라 일은 아니다.


두 번째 우연 : 어느 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어머니와 예비 장모님의 휴대전화 뒷번호 네 자리가 똑같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번호는 집에 전화기가 있던 시절 우리 집 전화번호 뒷자리였는데, 어머니와 누나는 그 번호를 휴대전화에도 이어서 쓰고 있다. 그건 아내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 번호는 아내의 집 전화번호 뒷자리였고, 장모님은 여전히 그 번호를 휴대전화에 쓰고 있다. 그러니 우리 양가 어머니와 누나의 휴대폰 뒷자리는 짠 듯이 같은 번호다. 가족이 될 걸 예견이라도 한 건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우연이긴 하다. 그러나 이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앞번호까지 같았다면 몰라도….


세 번째 우연 : 당시 내가 설정해 놓은 도어록 비밀번호 네 자리와 아내의 자동차 번호판 네 자리가 숫자는 같고 배치만 한 자리 달랐다. 아내는 이것도 굉장한 우연이라며 신기해했지만, 나는 이쯤 되면 억지가 아닌가 싶었다. 내가 설정한 도어록 번호는 사실 내 친구 휴대폰 뒷자리 번호였다. 이사한 날에, 내가 외우는 몇 안 되는 휴대폰 번호 중에 막 떠오른 것을 그냥 번호로 설정한 것. 숫자가 완전히 일치했대도 그냥 흔한 일이려니 했을 텐데, 배치가 다르니 더더욱 아무 일도 아니다.


그 외에도 아내는 우리가 운명이라는 계시를 몇 가지 더 찾아냈지만, 나는 그걸 여기에 쓸 수 없다.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로또에 여러 번 당첨되는 사람도, 번개에 수차례 맞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일도 기적이라고 할 수 없다. 확률이 매우 낮을 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지 차갑게 증명하는 책(예: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을 읽다 보면 저절로 머리가 끄덕여진다. 그러니 우리에게 있었던 몇 가지 우연의 확률을 계산하면 그리 대단치 않은 숫자가 나올지 모른다. 우리가 만난 걸 ‘운명’으로 믿고 싶은 마음이 그 대단치 않은 확률을 대단히 희귀한 확률로 오해하게 만들었던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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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운명 혹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자못 불안했다. 그즈음 아내가 휴대폰에 운세 앱을 깔고 하루에 한 번씩 거기서 들려주는 오늘의 운세를 읽고, 나의 운세도 확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앱에서는 (맙소사) 그날 잘 맞는 음식, 입어야 할 옷 색상까지 일러주었다. 그걸 아내가 모두 따르는 건 아니라고는 해도, 그걸 매일 보는 것만으로도 꽤 깊게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말릴 수는 없었다. 그저 나의 운세나 운명을 읽어주면 “하나도 안 맞는데” 하고 전혀 관심 없다는 투로 넘겼다.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는데도 일부러 더 관심이 없는 척했다. 불이 붙어 버릴까 봐서였다.


그랬던 아내가 퇴사 후 뭘 배워볼까, 여성문화센터 강의계획표를 보다가 그 과정을 발견하게 된 거였다. 강의명은 ‘사주팔자와 명리 초급’. 부제는 ‘명리의 생활화’.


처음에 아내는 정말로 재밌어했다. TV를 보는 내 옆에 앉아서 종이에 적어놓은 여덟 자의 한자와 교재를 번갈아 보며 쉼 없이 중얼거렸다. 이 글자는 어떤 의미라는 둥, 이 글자 아래 있으면 어떻게 해석이 된다는 둥 대상도 없이 강의를 했다. 화살표와 동그라미가 종이에 어지럽게 오갔다.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며 교재를 폈다 접었다 했다. 아무래도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백 년 누적되어 온 원리와 해석이 몇 시간 수업으로 이해된다면 그 ‘학문’이 얼마나 엉터리라는 뜻이겠나. 아내가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명리학에 신뢰가 생겼다.


나와 가족들의 생년월일시는 아내의 연습문제로 매일 되풀이해서 풀이되었다. 내가 듣기에는 지극히 일반적이어서 누구에게나 갖다 붙여도 다 말이 될 것 같은 해석인데 아내는 정말 그런 면이 있다면서 자신의 풀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얇고 넓은 유리를 들고 이동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고 위태로운 마음이었지만 티 내지 않았고, 대신 손에 힘을 꽉 주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하루는 수업을 듣고 온 아내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나의 의견을 구했다. 문화센터의 강사가 아내에게 실력이 있고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자신의 사무실로 한 번 찾아오라 했다는 거였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했다. 맨 앞줄에 앉아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젊은 학생(평일 오전 여성문화회관의 수강생 중 아내는 상당히 젊은 층에 속한다)이 오죽 대견했을까. 한자도 제법 하는 아내를 제자로 맞으려는가 싶었다. 나는 아내가 본격적으로 그 세계로 들어간다고 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고, 십중팔구 돈을 요구할 게 뻔하지만 궁금하면 가보라고 했다. 아내는 “내가 제대로 배워서 부업으로 사주 봐주고 당신 용돈도 줄게.”라며 벌써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결혼 전에 재미로 궁합을 보러 가서 역술인의 말에 아내보다 더 놀라고 신기해한 건 나였다. 나와 아내의 성향이나 성격, 잘 맞는 직업 따위를 줄줄 말하는데 딱딱 맞아떨어졌다. 얼마나 잘 맞히나 어디 한번 보자, 하고 도끼눈을 뜨지는 않았다. 재미로 듣자고 마음먹으니 더 잘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니 그때 들은 말은 구체성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 말들 속에서 나와 아내는 흐릿한 물감으로 대충 칠한 낙서처럼 보였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가치관,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저 우리가 가진 기운이 어떻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 기운이라는 것이 하도 다양한 것에 기원하다 보니, 그냥 모든 기원에서 연원한 기운들이 다 조금씩 우리 안에 들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됐다. 한 마디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말처럼 느껴지더라는 얘기다. 게다가 역술인들은 그 기운에 근거해서 어떻게 살라고 훈계하듯 말했다. 심지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좋은 말씀이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운명의 책에 그런 것까지 쓰여 있을 리 만무하므로 내 놀라움은 어느덧 차갑게 식었다.


강사의 사무실에 다녀온 아내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겸연쩍어 보이기도 하고 어딘가 아쉬운 듯도 한. 그런 아내의 표정을 보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아내는 몇백만 원을 내고 2년 정도 자기에게 배우면 직업 역술인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강사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자기 사주를 보고 왔다. 사주를 볼 때마다 들었던 비슷한 말을 그 강사 역시 해주었다. 아내는 이번에는 놀라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아내의 사주에 역술인이 된다는 말은 없었으니 그 제안을 거절하는 것 역시 ‘운명적’이지 않은가 싶었다. 거절당할 제안을 하는 역술인에게 배우는 것 역시 마땅치는 않은 것 같고.


아내는 그날 이후로도 얼마간은 여덟 개 한자를 적어놓고 이리저리 궁리하고는 했다. 그러나 조금씩 그 열기가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사주는 없다’라는 제목의 사주명리학 비판서를 한 권 빌려왔다. 그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아내는 여성문화센터의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사주에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다른 경로로 사주에 흥미를 잃게 됐다. 아내는 가볍게 재미 삼아 배워보려던 것이었는데 강사한테 찍히는(?) 바람에 잠깐이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미지의 길이 펼쳐지려 할 때의 설렘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렇다고 그 길이 길이 아니었음을 안 후에 아내가 실망하거나 아쉬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배우면 즐거운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을 뿐. 인생은 해독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을 뿐. 답안지에 쓰여있는 번호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설 정도는 슬쩍 엿보고 싶은 마음으로 길을 찾고 있을 뿐.


아내가 설레면 덩달아서 떨리는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더듬거리며 길을 찾아가는 것이 재미있다. 운명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재미있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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