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틀었더니 1번 채널이 축구다. 옛날 휴대전화에 단축번호라는 기능이 있었는데, 소중한 사람을 1번으로 설정해두곤 했다. 이런 기준이라면 독일인에게 축구란 매우 중요한 존재라 볼 수 있다. 야구 방송이 리모컨 채널 버튼을 한참 눌러서 200번 대쯤에 나오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이여, 야구 강국이 되고 싶은가? 1번에 야구 채널을 넣어보자.
베를린에서의 첫 끼는 비건 커리부어스트와 감자샐러드. 양념의 자극적인 맛과 대체육의 쫄깃한 식감이 느껴진다. 베를린엔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다.
안식월을 독일에서 보낸다고 하니 지인들이 이유를 물었다. 대답을 듣기 전 “베를린 힙하잖아요” 한 이도 있다. 나는 힙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을 담배연기처럼 멀리한다. 소위 힙하다는 것은 하나도 힙해보이지 않고 힙한 것을 좇는 사람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왜 독일에 왔는가.
어릴 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봤다. 그 잔상은 오래도록 높은 해상도로 남아 당시 어린이에게 내가 굉장히 중요한 순간을 목도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중에 커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연도를 보니 비상한 머리를 가진 아기가 아닌 이상 기억할 수 없는 나이였다.
국경을 벽으로 막는다? 베를린에 오기 전까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철근으로 표시한 장벽의 흔적과 당시 사진을 보니 중학교 때 지각을 걸리고 싶지 않아 뛰어넘었던 그런 담장의 높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벽에 대한 공포는 높이나 모양새로 연유한 게 아니다. 벽을 넘는 순간 동독에선 반역자로 찍히고 넘다가 총살되거나 부상당한 이도 적지 않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의 국민으로 동질감과 호기심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 무렵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를 했다. 나처럼 워홀 비자를 가진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대화가 편하고 성향이 잘 맞아 어울려 다닌 친구들은 대부분 독일인이었다. 그중 한 친구는 이후에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알고 보니 독일인 친구 또한 워홀하며 좋은 한국인을 만났고 한국이 궁금해져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고 한다. 나와 잘 맞는 친구들의 나라와 그들이 자란 환경이 궁금했다.
한국에선 벌새 같은 녹색당이 독일에선 정치의 중심에 있다. 탄소 발생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저렴한 월간 티켓을 도입하고, 탈원전의 시대를 여는 등 환경 이슈에 가장 적극적이다. 한편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러 평생 사죄하고 반성해야 할, 전범국가라는 이름표를 가진 나라기도 하다. 독일이란 나라를 떠올릴 때 드는 이런 생각이 나를 이곳에 오게 했다. 실은 이런 걸 다 일일이 말할 수 없어서 그저 채식 식당을 많이 가보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지만.
9월 27일,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