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준비를 하며 음악을 들을 겸 방에 있는 스피커를 켰다. 라디오에 맞춰져 있었는지 틀자마자 나온 클래식이 좋아 홀린 듯 계속 들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이다. 전에 있던 투숙객이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들었던 걸까.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감읍했다.
건물 전체가 서점인 곳에 들어갔는데 지하 1층에 "NOTE" 라고 되어있다. 노트 구경이나 할까 내려갔더니 그 노트가 아니라 악보였다. 악보와 음악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악기에 앨범, 클래식 음악가들 굿즈까지 실로 광막한 음악의 성지였다. 폴 매카트니와 슈베르트, BTS를 아우르는 국경도 세월도 없는 대통합 음악의 장이 바로 이곳이다. 교보문고와 낙원상가, 음악계의 호미화방까지 합쳐진 공간이라 보면 된다. 창고 문처럼 보이는 게시판엔 합주 단원을 구하거나 악기 중고 거래를 희망하는 메모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굿즈는 또 어떤가. 베토벤과 말러, 그리고 범 독일인으로 초콜릿 모델까지 섭렵한 옆 동네 모차르트까지, 과연 음악계의 최고 인플루언서들을 배출한 독일답다. 독일이 아니면 대체 어느 나라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음악가들의 리즈시절만을 정교하게 담아낸 작은 흉상을 감탄하며 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연주 소리가 들린다. 구석구석 음표가 가득하다.
저녁이 되어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를 즐기기 위해 공연장에 왔다. 목요일 저녁 8시인데 사람이 상당히 많다. 공연 시작 전, 사람들은 로비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시장기를 속일 겸 프레첼을 먹는다. 예술의전당에선 커피나 무알콜음료를 마시는 게 전부인데, 여기는 가볍게 술을 마시며 흥을 돋우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한쪽엔 아우터를 맡기느라 북적인다. 판매대의 직원들도 모두 흰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는 등 격식을 갖춰 주문을 받는다. 자율복장이라고 하나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본인이 가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와 오늘 하루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마음이 울렁거린다.
알렉산더 칸토로프Alexandre Kantorow의 피아노 연주는 세탁한 후 잘 말려 넣어두었다가 꺼낸 폭신한 이불 위에서 샤워를 막 마친 뽀송한 몸을 부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군가 잠시 누워 체온이 남아있는 이불 보다 장롱에서 꺼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불의 시원한 기운을 좋아한다. 그의 연주는 그런 이불처럼 상쾌하기도 했다. 어떤 순간엔 감촉이 너무 부드러워 조금만 움직여도 스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실크 잠옷을 입은 것 같았다.
공연은 응당 연주자의 실력이 중요하다. 다른 곳도 아닌 베를린 필인데 의심할 필요가 없다. 다만 야구를 보면 국내 각지의 내로라하는 프로 선수들이 모여도 잘하는 팀과 못하는 팀이 있듯이 잘하는 연주자들이 모인다고 좋은 공연이 당연스레 따라오진 않는다. 그래서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곡을 해석하고 모든 연주자들의 소리를 듣고 그것들이 잘 어우러지게 강약과 빠르기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조절한다.
나는 지휘자의 미세한 표정 변화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덕분에 그의 손끝에서 소리가 피어나고 부서지는 것을 생생히 보았다. 단순히 손으로 박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표정과 손, 팔 등 온 몸을 다해 함께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에만 몰입해 혼자 튀는 대신, 다른 연주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울려서 좋은 음악을 만든다. 높은 타율의 3할 타자도 지금 필요한 1점을 위해 희생번트를 치는 것처럼 연주자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허투루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는 넘길 페이지가 없는 악보, 곡이 점점 장대한 선율로 가득하고 맨 뒤쪽에 있는 큰 심벌즈(죄송합니다 악기 이름을 잘 모릅니다)를 치는 연주자가 일어날 때 이 여정의 끝이 보이는 순간, 연주자들의 표정을 살핀다. 그 환희로 가득한 얼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공연장에 온다. 그들은 그저 최선을 다해 연주할 뿐인데 나는 내 삶을 더 힘껏 긍정하게 된다.
9월 28일, 베를린
99월 28일, 베를린9월 28일,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