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알아보다가 지도에서 기이할 정도로 높은 평점을 얻은 독립서점을 발견했다. 깐깐한 독일인을 사로잡은 서점의 비결은 무엇일지 직접 확인해야겠다.
서점 내부는 지나가려면 서로 책장에 붙어 잔뜩 몸을 움츠리거나 한 사람이 양보해줘야 가능할 정도로 좁았다. 다만 독일어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꽤 신경 쓴 듯한 책의 진열과 손님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연륜있는 사장님을 보니 별점이 어느 정도 납득됐다. 그때, 3.8이 아니라 만점에 가까운 이유를 구석에 놓인 의자를 보고 알았다. 보는 것만으로 나른해지는 털이 부숭한 고양이가 몸을 둥그렇게 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손님은 사장님과 얘길 나누면서 의자에 앉은 고양이를 무심하게 쓱쓱 어루만졌다. 지적인 대화로 정신을 고양하면서 손으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심리적안정까지 찾다니. 저 사람은 책값을 두 배로 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살 만한 책은 없었다. 모두 독어로 된 서적이고 문구류나 기념품보단 정말 책을 판매하기 위한 서점이었다. 그냥 나가기 아쉬워 둘러보던 중 이 서점을 그린 그림이 보였다. 서점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한 아티스트가 그린 것으로, 5회 미만으로 실크스크린 작업을 했기에 한정판이란 마케팅 같은 이야길 사장님은 덧붙였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했지만 반려인은 박스에 그림들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고 나즈막이 말했다.
그림을 조심스럽게 꺼내 신문지로 감싸고 둘둘 말아 통에 넣는 사장님의 움직임은 영화 <주토피아>의 나무늘보처럼 한장면 한장면을 캡쳐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유순하고 느렸다. 오랜만에 보는 느림이 편안함을 주었고 덕분에 의자에 앉은 고양이를 마음 놓고 쓰다듬을 수 있었다. 모질이 조금 좋지 않고 활동성이 떨어지는 걸 보아 너도 서점만큼 나이를 먹은 노묘겠구나. 내게도 그런 고양이가 둘이 있거든. 두고 온 냥이들이 보고 싶어 조금 코가 시큰해졌다.
그때 포장을 마친 사장님이 말했다. 고양이는 이제 한 살됐다고. 그저 빗질을 잘 안 해주고 천성이 잠이 많은 아이였던 것이다. 섣부른 동정을 거두고 그림을 건네 받았다. 집엔 이렇게 여행지의 미술관이나 서점 등에서 사온 그림이 많다. 그림의 사이즈에 맞게 액자로 만들어 두고 때에 따라 그 시기에 걸맞는 그림으로 바꿔 건다. 모든 계절의 풍경에 서로 다른 그림이 함께 한다. 그림을 보며 저걸 사왔던 여행지의 시간을 함께 복기한다. 아르헨티나에서 사온 프리다칼로의 그림, 바르셀로나에서 들여온 호안미로의 그림 등 그림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때의 시간을 회상할 수 있다.
거실 벽에 걸릴 때까지 관문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그림을 손에 넣은 순간부터 한국, 우리집에 올 때까지 어딘가에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가져와야 한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여행 기간이 길어질 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 그림 대부분이 가방에 넣기 힘든 크기이고 구겨질까봐 원통지에 넣고 직접 들고 다녀야 하기에 잘 가지고 다녔더라도 자칫하면 공항에서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림을 손에 들고 드레스덴 신시가지를 돌아다녔다. 맥주도 마시고 거리의 포토 자판기에서 사진도 찍고 그러다가 잡화점에서 드레스덴을 그린 그림을 구경하다가 반려인이 외쳤다. “우리 그림!!”
사족. 그날 방문한 모든 곳을 다 역주행하다가 맥줏집에서 찾아와 지금은 거실에 잘 걸려있다.
10월 26일, 드레스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