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시 맥주를 마시러 가펠 쾰시에 왔다. 가펠 쾰시는 뮌헨의 호프브로이 같은 곳인데 다른 점은 뮌헨은 1리터잔이 기본인데 여긴 200ml의 작은 잔으로 맥주를 마신다. 200ml 잔으로 마신다고 했지 한 잔만 마시진 않는 게 함정이다.
손님이 빈자리를 찾아 앉으면, 직원이 다가와 200ml 잔에 야무지게 담은 쾰시 맥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코스터 위에 연필로 진한 선을 툭 그은 후 떠난다. 1리터를 마시면 네 개의 짧은 세로선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긴 선이 생긴다.
어제는 가펠쾰시와 양대산맥인 프뤼Früh 펍에 갔는데 주문 받는 직원 모두 연륜이 있어 보였다. 혼돈 가득한 공간에서 실수하지 않고 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오래도록 성실히 일한 사람이 응당 일자리 유지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렇게 유추해보니 쾰른을 상징하는 두 맥줏집 직원들의 모습이 납득된다. 아득할 정도로 거대한 홀을 가득 채운 인파 속에서 당황하거나 힘든 기색 없이 주문받고 맥주를 내오며 자리를 치운다. 그들의 움직임은 훌륭한 서예가가 일필휘지한 글씨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다. 맥주를 홀짝이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문받는 직원의 인상이 좋아 얼마나 여기서 일했는지 물어보니 15년이라고 한다. 여러 의미로 경이로웠다. 나가고 싶지 않은 날, 일을 그만둘까 생각했던 날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섰던 날들이 쌓이면서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도 올해 14년차다. 언제인지 후배가 회사를 오래 다니는 비결을 물었다.
글쎄요, 그냥 눈을 뜨면 일어나서 회사를 갔어요.
입사 초기엔 이 일이 나한테 맞는지 잘 성장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뭔지 질문했다. 그런 질문을 던지고 꾸준히 일하며 답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부턴가 그런 질문 대신 내 업무에 최선을 다하되 효율적으로 일하고 업무가 끝나면 남은 시간을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일은 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다. 일은 일이고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목표나 계획 보다는 - 그런 걸 지켰는지 여부를 대차대조표 보듯 살 필요가 없기에 - 힘껏 산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듯 매일 충실히 보내면 전체적으로 괜찮은 삶을 살게 되지 않나 생각한다.
독일은 오늘 새벽 3시를 기점으로 한 시간 앞당겨졌다. 서머타임이 끝났기 때문이다. "fall back, winter time"
10월 29일, 쾰른